내 여동생이 엄마 뱃속에서 엄마 배를 발로 찼을 때, 엄마는 당연히 여동생이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낳아보니 딸이었다. 엄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년생으로 막내아들을 낳았다.
내 여동생은 어릴 때 진짜 장군감이었다. 발차기 힘이 남달랐고, 토실토실했다. 무엇보다 성격이 좋았다. 여자애들처럼 삐치고 그런 게 없었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어릴 때 쌍둥이처럼 자랐다. 엄마는 동생들을 한꺼번에 등에 업고 방청소를 했다.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하지만, 동생들이 8살, 9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동생들은 엄마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한다. 자기들은 스스로 자란 것 같다고 한다.(나하고 네다섯 살 차이가 난다)
내가 스무 살이 넘었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된다는 걸.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에 사람마다 자기 안에 어떤 논리적인 틀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논리를 만들었다. 내가 무능력해서 동생들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가지 않고 일을 했으면 동생들 대학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 여동생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해서 삼성에 들어갔다. 그 회사에 15년을 다니는 동안 결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았고 아파트 대출금을 다 갚았다. 몇 년 전 희망퇴직하고 나서 아빠 차를 한 대 뽑아드렸다. 내 여동생만큼 아빠한테 잘하는 사람이 없다. 엄마가 여동생을 안 낳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자기를 꼭 낳으라고 엄마 배를 그렇게 세게 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