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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밑 Oct 27. 2024

절망과 낮잠

우울을 견디기

  10시 16분에서 11시 48분. 햇볕의 손길이 따뜻했다. 한 손으로 가장 강렬한 빛줄기를 가리고 온몸으로 나머지의 따뜻함을 받아냈다. 오가는 사람 몇만 있을 뿐인 늦은 아침의 공원 벤치. 잊히지 않는 평화. 규칙적인 호흡. 벅차는 기분. 행복했다.


  세상의 요소를 다면체로 보는 습관이 강한 나로서는 단면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사람을 대하기 힘들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나와 동등한 위치가 아닌, 권력을 갖고 있는 주체라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런 일이 1년 내내 있었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무너져내려 지난 몇 달간 죽었다. 여름 열기의 찐득함이 침대 위로 흘러다녔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아 누운 침대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았다. 내일이라는 날에 내가 없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날은 수없이 많았다.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얼마간은 울었고 얼마간은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 동안 시들었다. 다만 아무런 의지도 없이, 어떤 희망조차 내버린 채로 나는 나에 의해 구석으로 내몰렸다. 발악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덜 비참하게 망가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아플 거라면 덜 아픈 쪽을 택하고 싶었다. 어차피 망가질 거라면 내 손으로 망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책임조차 알지 못할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오롯이 나만 탓할 수 있었다.


  절망에 빠지기 싫어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먼저 절망했다. 밤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운동을 관뒀고 청소를 등한시 했으며, 늦게 잘 수 있을만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날 수 있을 만큼 늦게 일어났다. 할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때가 되면 그 일에 노력을 아주 아주 작게 들였다. 그것들이 낳은 결과들은 나의 모든 사랑과 열정이 들어간 절망에 비해 절망스럽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게 해서 괜찮고 싶었다. 스스로 만들어 낸 작은 절망은 좋은 변명거리가 돼 주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 공원에 가게 된 것은 아니다. 글쎄, 더 이상 내가 미워지기 전에 어디론가 가야 했을 뿐이다. 절망 가득한 공간에서 언제까지 지금처럼 유영만 할 수 있을까. 분명 나는 두 다리를 묶고 두 손을 묶고 돌이라도 달아 가라앉으려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그렇게 떠다니다간 눈물로 불어나는 절망을 감지할 수 조차 없게 되었을 것이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시원함이 느껴졌다. 방 안을 채우는 차가운 공기에 가끔씩 소름이 돋았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겨울이 되어서,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던 것 같다.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맑아서, 덥지 않아서, 대신 춥지도 않아서, 얼굴에 스치는 바람에 겨울 냄새가 나서, 나는 공원에 갔고 누구도 없었다. 햇빛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고 바람이 있었으며 잔디가 있었다. 목줄기로 흐르는 땀이나 눈가를 어지럽히는 벌레 하나 없이 벤치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한 시간 반의 햇살. 그 짧은 시간은 아마 몇 년간 잊지 못할 오래된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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