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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 May 20. 2024

멍냥토크회_봄소풍

2023.04.22, 2024.04.13

  나에게 봄에 관련된 이미지를 꼽으라고 하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벚꽃을 꼽겠다. 하지만 벚꽃에 추가할 이미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나와 함께 살았던 시츄 국희다.

  국희는 친구의 강아지였다가, 내 강아지가 되었다. 3개월이 조금 지나서 나에게 왔고 십년을 같이 살았다.  국희는 떠나기 전에 많이 아팠다. 조금만 신경써서 관찰했더라면 몇 해는 더 곁에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아마 지금도 그럴 것 같지만;;;) 그리 세심한 보호자가 아니어서 국희가 기절 직전까지 가서야 심장병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았다.



  진단을 받고 반년 정도 같이 살았다. 국희는 언제든 소풍-반려동물이 죽는 것을 '소풍'간다고 표현한다- 떠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헤어질 시간이 멀지 않았기에 국희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건강할 때의 국희는 산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심장병으로 운동능력이 떨어진 후부터는 걷는 걸 힘들어했다. 나는 그런 국희를 애견가방에 넣어 품에 안고서 매일 산책을 나갔다. 집 근처에 근사한 벚꽃길이 있었다. 나는 벚꽃이 질 때까지 국희를 안고 그 길을 매일 걸었다. 국희는 내 품에서, 벚꽃 속에서 함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봄은 머리 위 벚꽃과 함께 내 품에 안겨있던 국희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아마 그런 무의식 때문인지 나는 멍냥토크회가 봄소풍을 가길 바랬다. 그리고 꿈결처럼 그런 곳이 아파트 근처에 있었다. 차로 5분 거리인데 근사한 벗꽃길이 천변 옆에 있다. 그 천변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넓은 운동장을 갖춘 애견동반카페도 있다. 시간 순서상으론 회원들의 추천으로 카페를 먼저 발견하고, 그 다음에 근사한 벚꽃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맞겠다. 여하튼 내가 가진 봄의 이미지와 잘 들어맞았다.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과 벚꽃길이라니!

  그래서 작년에 이어 올해, 우리 멍냥토크회는 봄소풍을 떠났다. 작년은 비가 오는 바람에 예정일에서 한주 미뤘더니 벚꽃이 져버렸다. 하지만 올해 비록 끝물이었지만 꽃비가 내리는 벚꽃길을 즐길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더웠다는 것! 낮 최고 기온이 26도까지 올라가서 야외에서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땀이 흘렀다.

  작년 소풍을 기획하고 준비할 때는 이런저런 걱정들이 있었다. 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가, 반려인이라는 걸 제외하면 딱히 어떤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도 아니고 서로가 아주 가깝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다행스러운 건 나는 뻔뻔한 편이고, 뭔가를 시작할 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인간이란 점이다. 손이 필요한 건 도와달라고 했고, 비용은 모아둔 회비가 충분해서 문제 없었다.

  다른 회원들이 동의하는 진 알 수 없지만, 작년의 봄소풍은 성공적이었다. 대략 행사 얼개는 아파트온라인카페에 올렸던 작년의 공지로 확인할 수 있다.


[공지사항] 두근두근 봄소풍~~ 반려인 이웃, 혹은 강아지를 사랑하는 이웃 모두 환영합니다!


멍냥토크회가 봄소풍을 갑니다~


4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6시 (비때문에 한 주 미룹니다!)


4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6시!


장소는 카페 OOO (차로 7-8분)입니다.


운동장 전체를 대관했으니 눈치 안보고 우리 강쥐들 맘껏 뛰어다닐 수 있답니다!

다 같이 정답게 인사 나눈 후,

각자 근처 하천산책도 하고, 반려용품 나눔도 하고

강쥐들끼리, 보호자들끼리 친교의 시간을 갖고,

술잔을 나누며 스탠딩 바베큐 파티를 즐길 예정입니다.

봄날을 즐기며 맛있는 음식 나눠 먹어요.

반려인이든 아니든 즐거운 봄날을 함께 즐기고픈 분들 와주세요.

소풍 컨셉은 포트락 파티입니다.

자기가 먹을 음식(바베큐용 고기나 생선, 개인식기(접시, 젓가락 등), 채소, 밥, 반찬, 과일, 디저트, 술 등)은 직접 들고오셔야해요.

조금 여유있게 갖고 와서 나눠먹고 남으면 가져가면 되고요~

기존 회원 외에 참가하실 분은 세대당 1만원의 참가비가 있습니다! (대관료+오천원 이하의 음료 1잔)

저희는 이웃에게 활짝~ 열려있어요~

강아지 좋아하시거나, 바베큐파티를 원하신다면 주저하지 말고 참여해주세요.

아! 자차로 오시는 분들 중 이웃을 태워오신다면 참가비 면제입니다!

(운전하느라 술도 못마시는데 이 정도 배려는 해야죠! ㅎㅎ)

참여원하시는 분은 단톡에 들어오세요!


봄소풍 임시단톡(종료후 방폭)


https://open.kakao.com/o/00000





  공지사항엔 안나와있지만 나름 심혈을 기울인 봄소풍기념품도 있었다. 다름 아닌 회원 강아지들의 이름을 자수로 넣은 차량용 안전벨트다. 군부대 앞의 오바로크집을 여러번 다니며 폰트와 글자색을 세심하게 고민해서 만들었고, 지금도 나는 잘 쓰고 있다. 다른 회원들도 잘 사용하고 있을 거라곤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기 반려견의 이름이 있는 물건이니 기념의 의미는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 그렇지 않다면 죄송합니다;;)

  


  작년의 소풍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내가 좋았기 때문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사람과 개들이 모두 유유자적한 봄날을 함께 보냈다. 바베큐 이전까지 특별한 이벤트나 함께 하는 활동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봄날을 느낄 뿐이었다. 나란 인간이 은근히 목적지향적이고, 사람들이 모이면 뭔가를 같이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갰다. 그러한 강박이 무의미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평화롭고 행복했다. 뛰노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봄날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찾아왔다. 그것은 일상을 벗어난 감각이었다. 편견이 깨지면서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채워졌다.


  23년도 봄소풍의 성공에 힘입어, 나는 4월 봄소풍을 멍냥토크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올해도 같은 시기, 같은 곳으로 일정을 잡았다. 작년에 한번 했기 때문에 전체 진행과정(이랄게 없잖은가!)이 간단했다. 기념품은 생략했다. 강아지배변봉투 클립이 기념품 후보로 올랐었다. 제품에 레이저 각인으로 회원 강아지의 이름을 새기면 좋을 것 같아 업체도 몇 군데 알아봤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상황이 바빠서 진행할 여력이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추진해 볼 생각이다.

 

 


  작년의 포트럭 파티컨셉이 성공적이었으나, 참가자들이 준비할 게 은근히 많았다. 나눠먹는 걸 전제로 모든 집들이 식재료며 반찬을 가져오는 바람에 되가져가는 양도 많았다. 이런 따뜻한 이웃의 정같으니라고~

  그래서 개별참여자들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이번엔 회비로 고기와 일회용식기등을 준비했다. 작년을 떠올리며 대충 20인분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식기도 그만큼, 돼지 목살도 6kg정도 사다가 밑간했다. 넉넉하진 않아도 일찍 귀가하는 사람, 소식하는 분들도 있을테니 괜찮을 거라고 예상했다.

  날씨가 더운 것만 빼면 환상적이었다. 작년처럼 한가로움으로 마음의 여유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한 해동안 회원들끼리도 많이 가까워져서 제법 이웃 친목모임 느낌도 났다. 가장 놀라운 건 개들이었다. 많은 개들이 한 공간에 있었는데 대체로 잘 지냈다. 개별 강아지들이 훈련이 잘 된 편이고, 다들 동네에서 자주 마주쳐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사람이든 개든 사회적 존재가 모인 곳에 갈등이 전혀 없을 순 없다. 하지만 감당할만한 수준이었고, 대체로 무척 평화로웠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올해 또 좋았던 건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이웃들도 와서 함께 소풍을 즐겼다는 점이다. 멍냥토크회는 폐쇄적인 동아리도 아니고, 반려인 비반려인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다만 회비납부는 꼼꼼히 챙긴다!) 그저 평범하고 평등한 이웃간의 모임이라는 점을 실제로 구현한 듯 해 어깨가 으쓱해졌다고 할까?


  



  이러한 별 것 아닌 일상을 내년에도 이웃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인생의 좋은 조각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로 내년의 멍냥 봄소풍에도 많은 이웃들이 참여하길 빌어본다. 그리고 더욱 많은 고기를 준비해야겠다. 왜냐하면 이번에 거의 50여명의 인원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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