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제주도 전도사
동백꽃 구경하러 갈 사람!
오랜만에 모든 스텝이 다같이 모여 위미리로 향했다. 제주도 남쪽의 작은 마을 위미리에는 동백군락지가 있어 겨울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했다.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다들 꽃단장에 평소에는 안 입던 사진용 옷을 꺼내입고 나섰다. 사진을 찍고, 또 찍어주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가까이서 본 동백꽃은 마젠타 색상 그 자체였다. 나무 가득 달려 솜사탕처럼 생긴 모양도 재밌었다.
근처에는 정말 작은 항구인 위미항이 있고, 건축학개론의 배경지인 서연의집도 가까웠다. 그리고 라바북스, 바굥식당 등 개성있는 작은 가게들이 생겨나 조용하고 아기자기함을 좋아하는 여행객이 하나둘 모여드는 지역이었다. 나는 위미항 앞 바위에 앉아 작은 배들이 떠다니는 모습과 윤슬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제주 바다는 바다 냄새가 안 나서 살기 좋아
하루는 공천포에서 바다를 구경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제주 할망이 말을 건냈다. 듣고 보니 정말 바다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겨울의 한적하고 차가운 냄새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제주도 남쪽 바다는 북쪽에 비해 색이 짙은데 바닥이 모래가 아닌 현무암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걸 조금 씩 알아가는 게 좋았다. 특히 공천포, 강정천, 위미리, 모슬포 등 조용한 남쪽 지역을 좋아하게 됐다.
매일 제주도를 쏘다니다보니 머리 속으로 제주도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북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각 지역에서 가볼만한 곳은 어디인지, 맛집은 어디인지, 어느 정도 누군가에게 술술 설명해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락현아, 제주도로 놀러와.
곧 군입대를 앞둔 후배를 제주도로 불렀다. 평소 궁금했던 장소를 찾아가기도 하고, 경험해본 좋은 장소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친구를 하나 둘 제주도로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의 제주 방문 일정을 쉬는 날에 맞춰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는 같이 날을 맞춰 여행가기가 어려웠는데, 제주도에 있으니 친구의 일정만 되면 언제든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관광지로만 생각했던 제주도였는데, 역사와 스토리를 알게 되고 경험이 더해지니 점점 더 특별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비공식 제주도 전도사였다. 누군가 제주도에 간다고 하면 먼저 나서서 여행 코스를 짜줬고, 아직 유명하지 않은 도민 맛집을 소개해줬다. 경험한 것만큼 제주도의 숨겨진 모습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나에게 제주도는 이제 관광지가 아니라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