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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구 Sep 24. 2021

09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버륵없는 나무는 잘라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언젠가 KBS스페셜에서 ‘서울 나무 파리 나무’ 방송을 봤다. 프랑스는 묘목부터 주목을 반듯하게 키우지만 우리나라는 방치 수준이다. 양버즘나무를 가로수로 소개한다. 곧고 반듯하고 잎이 풍성하여 우아하다. 가로수 전정 작업도 소개한다. 프랑스는 자가 치유가 가능한 부분만 가지치기하고, 죽은 가지는 제거한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나무는 프랑스로 보내야 한다.’고 해야 할 듯싶다.     


코끼리는 평생 자기를 괴롭힌 짐승이나 사람을 기억한다고 한다. 어린 코끼리 시절에 어미 코끼리와 생이별하고, ‘파잔 의식’이라는 잔혹한 고문을 거쳤다. 말뚝에 묶어 놓으면 양보다 순한 짐승이 된다. 그래서 서커스단 코끼리는 줄을 나무 말뚝에 묶으면 꼼짝하지 못한다. 자기를 괴롭힌 사람에 대한 어두운 기억 때문이다. 사람 손을 탄 코끼리는 스트레스로 야생 코끼리보다 수명이 절반 이상 짧다고 한다. 사람을 보면 고문을 연상하는가 보다. 좋은 기억력이 흠이다.     


이렇 듯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유년기 정성이 중요한 것 같다. 걸음걸이가 갈지자로 변하면 힘들다. 서울시 가로수가 그렇다. 밑동에서부터 갈라져 보행을 방해한다. 2m 이상에서 갈라졌으면 명품 가로수였을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걸음걸이가 바뀔 조짐이 보이면 끌고 가지 못한다. 밀고 가야 한다. 버릇없는 나무는 잘라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2003년 MLB 소속 양키즈 야구선수 애런 분은 우산 팔려고 준비하면 해가 뜨고, 양산 팔려고 하면 비가 오는 그런 사람이다. 야구선수로서 존재감을 처음 과시한 시즌을 마치고 처남하고 농구 경기를 하다 다친다. 1년간 재활의 기간을 겪고 여러 팀으로 옮긴다. 가는 곳마다 그저 그런 선수로 활동하다가 은퇴한다. 해설가로 활동하다가 양키즈 감독 면접에서 통과됐다. 그는 역경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했다고 자랑한다.    

 

로비에 깔끔한 한복을 입은 분이 보인다. 그 뒤에 어린 초등학생이 따른다. 초로의 노인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가 빙긋이 웃는다. 그림이 좋다. 노인이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아이가 따라가면서 똥침을 놓는다. 노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멈추어 뒤돌아본다. 뭐라고 한마디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아이는 따라가며 또 똥침을 놓는다. 사탕 바른 인권 포플리즘 현장이다. 훈계는 언어폭력이 됐다.   

  

며칠 전 정원식 전 총리가 별세했다는 소식이 뉴스 화면에 뜬다. 서리 시절 밀가루 허옇게 둘러쓰고 젊은이들에게 끌려가던 모습이 오버랩 된다. 1991년이었다. 사회는 애들을 과잉보호로 키운 대가라고 한탄했다. 덧붙여 애들에게 무서운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고도 했다. 그 시절 애들이 커서 아이의 아비가 됐고, 젊은이는 50대 초반. 대한민국을 끌어가는 중견이다. TV 패널로 등장하여 찬물로 밥 말아 먹고 자란 사람처럼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TV 드라마 ‘전원일기’에 ‘자식이라는 것이 너무 단정하면 맛이 없다.’라고 한다. 또, ‘어긋나는 것이 있어야 키우는 재미가 있다.’라고도 한다. 김 회장댁 식사는 항상 상이 두 개다. 어릴 때 집에서 봤던 그 모습이다. 할머니와 김 회장만 겸상하고, 다른 가족은 한 상에서 밥을 먹는다. 이것이 밥상머리 교육이다. 두 분이 한마디씩 툭 던지는 말씀이 평판을 높이는 교육이다.     


함께하면서 혼자서 하는 것 같은 것이 등산이다. 어둠을 덮고 있는 새벽. 신발 끈 질끈 매고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배낭은 짐이 아니라 힘이다. 자식도 그렇다. 짠하게 겨울 맛을 느끼고 봄을 맞이했건만 겨울 맛을 느끼지 못하고 봄이 온 것처럼 행동한다. 다들 보지 못한 척하지만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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