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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Mar 01. 2024

봄이 오기 전


길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도 지났겠다, 옷장에 집어넣었던 패딩을 다시 꺼내고

겨울의 막바지인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해질 기온만을 남겨두고 있다.

3월 중순부터는 가벼운 옷들의 시작으로 추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선물같이 찾아오는 가벼운 일상들이 죽 이어져 올 것이다.


그렇게 봄이라는 계절을 잘 넘기면 다시 새해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1월에 새해를 맞이했지만, 2개월이 지난 후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은 본격적인 행사가 참 많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3월부터는 올 해의 체계가 점점 잡혀가는 듯하다.

학생도, 직장인도, 전반적인 삶이 3월 초순에 맞춰져 있다니.

애쓰지 않아도 지나갈 시기가 벌써 왔네.

워밍 업을 하는 2024년의 두 달을 보내고 나니 차츰 실감이 나기 마련이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좋을지.

그대로 안주하겠다는 것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며 나를 관리하는 게 좋을지 말이다.

힘을 주어 잘하고 싶은 것과 지나치게 애쓰고 싶지 않은 성과들 사이에서 적당히 좋은 관계를 택하겠다.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뚜렷한 것을 찾으려 의미 없이 정처 없이 찾아 헤맸다.

지난날들을 기억하고 숱한 마음을 헤집고 나왔어도 아프던 고뇌와 고단함을 털어내기엔 뭔가 끙끙대며 부족했던 날들이 지나면 봄날이 온다고 믿었다.

무언가를 채우고도 부족했기에 공허함을 계속 다른 피사체에 옮겨가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몸도 마음도 온전히 휴식을 얻지 못함을.

행복을 추구하며 좇았던 삶이 사실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지금까지 살아왔던 지난 몇 년을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처음 마음먹었던 그대로 다시 다른 틀을 잡고 시작하면 되는 걸.

나는 이렇게 어두운 사람이었나 생각하다가도

이내 긍정적이고 생각보다 낙천적인 사람으로

생각의 변화를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려 한다.


너무 강한 힘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도, 연애도, 취미도, 사랑도, 글쓰기도 뭉근하도록 내버려 둘 심상이다.

흘러가는 대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는 것.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말 자체가 왠지 모를 탄탄함이 느껴진다.

내가 어딘가에 헤매고 다녔어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켰다는 안도감과 부러움.

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도록 목표를 바꿔버렸다.

애를 쓰지 말고 놓아주는 연습부터 하기. 가장 어렵고도 고난도의 기술일 테다.


몇 주 전,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서 받은 질문이 있다.

“서현 님의 단점은 무엇인가요?”

“무슨 일이든지 잘하려는 완벽주의와 그 성과를 빨리 얻으려고 하는 조급함 인 것 같습니다.”

“좀 전에 얘기하신 단점을 업무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음.. 완벽주의는 간절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일에 대한 의지가 강한 타입인데요,

성과가 빨리 나지 않더라도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불안해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저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즐겁게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답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면접자 앞에서 내가 그동안 지향했던 가치관과 동시에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답변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혼잣말을 해내며 되뇌었다.

‘이렇게 살지 그랬어. 이렇게 이상적이면 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라고 다독이고 있었다.


최근 방영 중인 <텐트 밖은 유럽 - 남프랑스> 편을 가족들과 함께 보다가 프랑스 음식문화에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극심하게 배고픈 상황에서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식당 매너.

파인다이닝도 아니고 코스요리도 아니지만 하나둘씩 느긋하게 나오는 음식들

음식 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나라.

누구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즐기는 것.

프랑스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 자연스러움이 주는 에너지는 자기다움으로 충만하기에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배우들의 자연스럽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사랑을 받는다.

억지로 꾸민 모습이 아닌 자신의 성격을 털털하게 드러내는 매력이 팬층을 더 두껍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느낌의 매력과 ‘외국에서의 캠핑’이라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모습들까지.

자유로움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의 모습을 긍정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도 정말 좋다.



봄이 오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앞길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안 겪었을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새 출발을 응원한다며 다독이는 일상을 진심으로 대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다면 아직 꿈틀대고 있는 나의 내면의 소리는 외면한 채

조용한 그 새벽에 나는 무얼 생각했던가. 가끔은 멍한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무의미한 것들 속에서 헤매지 말고 나의 유의미한 것들 속에서 작은 행복이 큰 행복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쌀쌀했던 날들이 지나고 꽤나 포근한 봄이 오기 전에 생각한 것들에,

힘을 뺀 나를 보여주는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담백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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