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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Mar 15. 2024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찬사


글을 맘 잡고 쓰려고 하면 담아놓았던 글들은 왜인지 둥둥 떠 버리고 머릿속에 맴맴 도는지.

그 찰나를 놓쳐버리면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까

아니 그때의 그 느낌이 온전히 사라져 버림에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것들을 이내 아쉬워하곤 한다.


근래에는 종종 떠나고 싶었다.

주거지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면 내가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한 해의 반복되는 일상일 터인데 하루 한 순간을 아쉬워할 때도

문득 이토록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이 때론 지겨워서

새로운 일을 언제든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가도

이내 내가 속한 삶 어딘가에 평준화가 되어 익숙함에 젖어버리는 건 아닌지.


그럴 땐 단정하고 성숙한 모습을 상상하며 최대한 깔끔한 옷차림을 정돈하려 했다.

티셔츠와 맨투맨의 캐주얼 복장도 선호하지만 셔츠와 블라우스를 택하고 청바지 대신 슬랙스를 택했다.

운동화도 좋지만 가끔은 로퍼를 신고 나갔다.

좋은 것들로 나에게 입히고 싶었다.

그런 다음 어울리는 향수를 뿌리고 나면 그날 하루는 왠지 잘 살아지는 것 같았다.


블로그 이웃 중에 자신의 출근룩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입고 있는 패션 브랜드를 기록하며 믹스매치도 보여주는데, 조화가 꽤 잘 어울렸다.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하며 공감을 많이 받았다.

내가 표현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나를 만들고

내가 기록하는 것은 나를 증명해 보인다는 그녀의 글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을 꽉 쥐고 살았음에

행복했던 지난날들은 괜히 과한 욕심처럼 느껴지던 때였을까.

요즘은 최소한의 것들로 최대한 많은 일들을 만족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 모든 단정한 것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으려나.

단정한 옷을 비롯한 단정한 식사가 있겠다.

그날 먹은 음식이 나를 증명한다고 한다.

라면을 먹었다면, 내가 라면을 먹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이고,

나에게 건강에 좋은 것들로 채웠다면 그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는 글.

한참 밀가루와 인스턴트를 즐겼던 나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 입에 당기는 대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 다정하고 단정한 한 끼 식사를 대접해 나에게 먹이고 입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생활 반경을 다듬어가는 단정한 정리도 있겠지.

혼자 자취를 한다면 누군가 챙겨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챙겨야 할 텐데.

나는 나를 잘 보듬어가고 좋은 것들로 가꿀 수 있을까.



그간 나를 살아가게 했던 것들은

이를테면 쇼핑리스트에 적어놓았던 옷들이라던가 수많은 신발들.

당장 짐을 싸들고 떠나야만 했던 나를 설레게 하던 장소들과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수다스러웠던 시간과 커피 한 잔.

배움에 집착이 많았기에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들여다보던 시간과

마음껏 돌아다녀도 부족했던 공간의 넓이.

아직도 장바구니에 가득 차 있는 도서 목록들과

책들 사이에서 보물찾기 하듯이 매주 들락거렸던 도서관.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고 연속재생하던 인디음악집들.

그 속에 행복을 추구했던 나였기에,

이걸 해야만 내 취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느꼈던 다소 과분했던 착각들.

삶을 영위하는 것들이 일부의 공허함을 잡기 위한 것이었음을 안다.

그 자리에 있어도 혹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빛나는 것들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무엇이든 단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삶 전체가 단정한 것들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가끔 제주 여행 중에 보았던 밤바다 생각이 난다.

노을 지는 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저녁식사 후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깜깜한 해변의 모습이었다.

불빛 하나 없는 해변이 의미 있나 싶어 고민하다 돗자리를 챙겼다.

밤 9시의 색달해수욕장에는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플래시도 켜지 않는 깜깜한 제주 밤바다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은 우리 가족뿐.

사방이 고요하고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등대가 반짝이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날 용기 내지 않았다면, 아무도 없으니 돌아가자며 발길을 돌렸다면 소중하고 값진 경험과 추억도 없어질 뻔했다.

내가 바라본 밤바다 중 가장 멋진 밤바다였다.


설령 그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고 부럽지 않은,

수많은 노을이 지는 날들을 모두 사랑했었다고.

다만 지금은 ‘그냥’이라는 단어로 무뎌져버린,

이렇게 명제된 기억은 늘 미화되어 좋은 기억으로만 흐릿하게 남아있지만

뭉퉁그려 사랑이라 칭했던 그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곤 중얼거린다.



사랑은 사소한 것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가족들 생각에 집으로 귀가하다 좋아하는 간식을 충동구매를 하기도 하며,

감기 조심해.라는 흔하디 흔한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한다.

눈을 비비면 눈이 펄펄 내려 온통 새하얗던 날들과

창문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시끄러워 잠 못 이루던 날들도 좋았던 그런 날이올시다.


그런 나지막한 행복을 그리워하고 붙잡으며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이라면

마음속에 일부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하는 것들은 관심의 빈도수와 비례하기에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런 시간이 삶에 거쳐갔기에 그때의 나는 나로서 가장 행복을 느꼈으며,

나를 향한 인정과 현재 삶에 대한 안정이 함께 공존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적당한 거리와 무뎌짐.

선입견을 많이 없애려 애썼다.

가령 ‘~일 것이다’ 지레짐작하는 것들을 넘어 보려 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라는 말이 정말 투명할 것처럼 보였으니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고 인정하는 것과 그 내면까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선 설명이 필요 없다.

나의 뜻 때로 꽉 쥐었던 것들은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것처럼

많은 사람에게 닿는 에너지를 소수의 인원들과 깊어진 관계들에게 쏟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도.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과 그간 사랑했던 취향과 좋아했던 사람들,

자유로운 시간들에 연연하며 의지하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은 이렇게나 큰데

그것이 후회나 미련 같은 게 아니라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음만 먹으면 그때처럼 돌아갈 수 있는 나이,

나 이기에 굳이 현재를 아쉬워하지 않고 앞으로의 미래를 더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희로애락 속에 굴러가는 우리의 삶은 각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연명하는 것들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앞으로 다가올 사랑하는 것들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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