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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Mar 29. 2024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다큐 3일> 프로그램의 낭만어부라 불리는 선장님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다 고백한다.

“선장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질문에, 사뭇 지난 세월이 스쳐간다는 얼굴을 한 그는,

“왜 또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십니까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있잖아요,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덧붙여 <낙화>와 <사모>의 시구절을 읊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_ 이형기 <낙화> 중

/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_ 조지훈 <사모> 중


어부가 되었지만, 국문학과에 가고 싶었다는 어릴 적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3분 남짓한 짧은 인터뷰와 영상 속에서 주저 없이 시를 읊을 수 있는 선장님의 낭만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존경을 끌기 충분했다.

‘낭만어부’ 캐릭터가 되어버린 선장님을 패러디하며

많은 콘텐츠에서 영상을 제작하고 광고를 촬영하며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왜 이토록 낭만에 열광하며 관대하며 너그러운지,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생업과 직업에 타협하며 자신이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꿈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에 충분한 씨앗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자

현실적이지 않다며 시시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 가슴 따뜻한 메시지로 남았다.

바다 위에서 좋아하는 시를 내내 읊조렸을, 나이 든 소년의 진정성 있는 꿈의 낭만을 응원했던 것이다.

[어부 = 시인] 어부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나의 모습과 직업, 배경과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체 없이 말할 수 있는 삶,

주체적이며 낭만 가득한 멋진 삶을 누구나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종종 고민해 왔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다] 느끼는 감정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무엇에서 오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도파민은 어디로 향하는지 말이다.

이를테면 운동 후 느끼는 상쾌함이라던가

광활한 풍경 앞에서 알 수 없는 압도함 같은 감정들.

나는 안정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기에 큰 리액션들과는 달리 비교적 평안한 상태에서 오는 쾌락을 즐겼다.



좋아하는 커피하우스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커피 한 잔으로 바꿀 수 없는 시간을 교류하는 것 등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카페는 계절에 한 번씩 들러

주변을 돌아가며 다양한 곳을 몇 번이나 방문했지만 근처 마포구도서관 덕인가 사람들 손에 항상 도서관 책이 들려있었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가지고 카페로 와서 커피를 향유하며 책을 읽는다.

놀랍게도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카페들은 평일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형식의 질문 같은 것.

‘다들 그 시간에 일하는 직장인이지 않나?’

‘그 카페의 회전율과 적막함을 채울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돈이 많나?’ ‘밥벌이가 되나?’ ‘다 주말장사 아닌가?’ 하고 말이다.

바쁜 일상에 평일 손님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꽤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유롭다” 정의하는 여유로움이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라는 걸 당신은 알까 싶어 웃었다.



어느 날은 라디오가 틀어져 있는 비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음악이 아닌 라디오라니.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흘러나오는 DJ의 내레이션과 1인 식당의 뭉근한 주방 분위기가 더해져 제법 잘 어울렸다.

그런 것들을 그리며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했다는 것도 과정 자체만으로 설렘을 만들게 했다는 걸.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주 마주치는 순간을 별 감흥 없이 그냥 흘러 보낸다.

어쩔 땐 아날로그 감성이 나를 살게 하는 것과 설레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제주에 가면 오롯이 나는 여행자가 되어 식당과 카페를 찾아다니는데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는 걸.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이런 류의 감성이거나

그 안에서 프리하도록 내버려 두는 감정의 상태이거나

타성과 각박함에 젖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가끔씩 나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이다.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오늘을 더 잘 살기 위해서다.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의 나는 더 자신감을 얻고 산다. 뭐든지 경험치이기에.

나를 살게 하는 모든 것들을 결국 또 끌어안고 산다.




23년 5월 즈음, SNS에서 뜨고 있는 노래 중 하나였던 이세계 님의 낭만젊음사랑.

젊은 날의 낭만과 사랑 그리고 위로의 말들을 가사에 담아 전달하기에

후렴부인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라는 음악을 전재로 사소한 일상을 기록하며 숏폼을 찍고 남겼다.

다소 시시하고 별 것 없는 일상을 담았어도 그런 사소한 일상마저 낭만이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게 젊음이라는 무기라며 낭만을 강조했다.

나는 이 젊음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과연 낭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살아가기 빠듯하다, 퍽퍽하다고들 하는데

삶의 일부분만을 보고 낭만이라고들 하지 않나?



요즘 나는 어떤 가치와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 낭만과 후 낭만이 나뉜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현재를 즐기고 눈치 보지 말고 하루를 소중히 살아가자는 마인드와

하루가 쌓여 내일이 되고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린다는 가치관의 대립이 충돌하곤 하는데,

깊고 깊이 파버린 행복의 우물이 매일 샘솟을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더 넓게 가져야 되는 것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젊음과 시간을 바꾸려는 이 시기에

나는 구태여 낭만이라고 부르는 이 날들을 무탈하고 무난하게 지나고 있는지,

지나고 보면 앳되고 맑았던 날들이 더 기억될 거라고 믿는다.



휴가철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에 비교하고 있는 자신이 싫어지다가도 그들이 부럽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나의 행복은 신용카드의 가불처럼 사용하고 있진 않은지,

그래서 현재의 내가 전에 다 써버린 행복을 아쉬워하고 있진 않은지.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나를 옥죄게 했던 것들에 금방 손을 놓아버리는 듯 이내 아 몰라! 하고 금세 체념하곤 한다.

우리의 걱정거리들은 그의 크기에 상관없이 대부분 그렇게 결론이 난다.



그럼에도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수 있는 건

아직 우리의 젊음에 잠깐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자그마한 가치들을 간과하지 않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으며

더 뜨거운 마음으로 안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안정감과 위로를 느끼곤 한다.

무뎌지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설령 그 무뎌짐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않는 마음들을 다잡고

걱정거리는 반나절에 족하듯 금세 다른 무용한 것들로 대체하며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노래 부를 수 있는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안정되었다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정했으면 투자를 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데

과연 이곳을 통과하면 더 나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울타리 안을 벗어나야 성장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되려 지금의 나를 핀잔보다는 격려해야 하는 것과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적어놓아야겠다.

시작점이 다르듯 마음먹는 순간부터 또 다른 나와의 약속이자 시작.

오늘의 낭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 나가야지.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낭만 젊음 사랑 / 이세계]


고요한 밤이 찾아와 아무도 몰래 멀리 떠나자

아침 햇살이 우릴 비춰도 계속 춤추자 너를 사랑해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차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길을 잃어도 우린 서로 꼭 붙잡고 있어 나를 안아줘

따스한 아침 햇살과 우리 둘의 사랑은 영원할 거야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We don't know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We don't care

어디든 같이 떠나자 괜찮을 거야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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