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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Mar 22. 2024

취향이 만든, 취향이 깃든 나의 작업실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는 건


나의 영감이 될 만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나의 비슷한 결을 지닌,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틈틈이 찾아다닌 공간 탓인가 좋다!라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나를 알아가는 것에 있어 중요했던 것들.

카메라 속에 담긴 사진으로 부족했기에 나의 공간으로 필요를 채우기 원했던 날들이 모였다.

비단 하루 이틀에 걸쳐 만든 나의 취향들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걱정의 양과 비례한 기쁨들은 어디로 흩어졌나.

차츰 생각해 보면 정말 자주 모였다 흩어진 나의 영감들은 잡아둘 곳이 없어 글로 적었다.

무조건 그 공간에서 사진으로 남기며 향기를 맡고 글로 표현되면 어느 정도 그 느낌의 회상이 자주 되는 것 같았다.



나의 작업실은 고심했던 내 취향도 묻어있지만 그러기까지 애정 어린 첫 발을 시작하기에 벅찼다.

시선이 이동하며 큰 꿈을 펼쳐보지 못할까 봐 마음속으로 아쉬워하며 웅얼대던,

직장 내 속하며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나의 직업으로서의 행복에 대해 자꾸 망설이게 했다.

당장 나의 밥벌이가 걱정되어 버티는 날들이 지나면 안정된 삶이 찾아올까?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 밥벌이는 걱정하지 않을까?

두 마음이 교차되어 주저하게 만든 결국 나의 선택은,

정답을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어렵다고 느낀 나의 벽들을 부수는 날이 온다면

내면의 공간이 도화지 밖으로 뛰쳐나와 꿈을 이룰 것만 같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그림을 공간으로 작게나마 실현시키니 벅찬 감정들이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처음 발걸음을 내디뎠던 출발선 앞에서 용기가 필요했으며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율을 높이는 건 쉽게 질릴 것 같아 느리지만 천천히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이리저리 밤잠을 설쳤다.

어지럽히는 마음을 정리하고 고심했던 생각들이 정돈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땐, 몇 개월이 훌쩍 지나있었다.

계획하는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으나 그 사이의 실천 기간은 올해의 반년, 6개월 동안 많이 바뀌었고

시작이 반이라며 출발선에 서 있는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 있었다.



<출발선 뒤의 초조함>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나 처음 발을 내딛는 시작이 중요하듯이 나에게도 그런 해가 있었다.

막다른 골목 앞에서 선택하고 또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겠지만,

좋은 타이밍과 신중한 선택들이 모여 또 하나의 꿈을 이룬다는 것에 마냥 즐겁기도,

하지만 그 공간을 오래도록 누리지 못해 꽤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작업실에만 가면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많은 생각과 시선들이 교차했다.

언젠가는 그 공간이 또 다른 공간이 되어 다시 새로운 출발선이 되고 익숙하지 않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주어야지, 마음먹었다.

꿈을 실현시키는 공간 자체만으로 마음이 든든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낯선 여행을 그리워하며 살 것 같다.

그 여행지에서 얻은 영감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며 감상문을 쓰는 나의 모습이 선하다.

아직도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글들과 마음속 깊은 말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나올까.

가끔은 나도 내가 낯선 방식으로 나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남들이 나를 보기에도 항상 새로운 나를 발견하면 좋겠다는 뜻이 아닐까.



좁은 골목 안에 불 켜 있는 공간이 힘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 불빛은 몇 만 배가 되어 환히 밝힐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과연 공간 자체의 주는 의미가 잘 전달되어야겠지만 잠재적인 에너지의 유효기간이, 버틸 수 있는 꿋꿋함이,

때론 불안, 초조, 외로움, 연중무휴, 온도, 헤아림, 호흡, 결심, 얼굴, 마음, 실패, 사랑,

존경, 다정, 창작, 책임, 농담, 산책, 밤, 1인, 소리, 공기, 위로 등의 수없이 나열할 것들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도 궁금했었다.

인정을 바라진 않지만 이해는 해주길 바라면서

과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상대의 취향에 존중하고 있나, 생각하고

걔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더라~ 얘기한 것들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단어의 표현은 세세하고도 섬세해서 낱낱이 파헤쳐보면 빛이 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붙여서 흩어 지나갈 것들도 그것 자체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듯이 말이다.

개인의 아름다움조차 사랑할 수 있는 생활과

광범위한 그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필요했다.



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무용하고 돈이 되지 않는지,

그렇다고 돈, 돈 거리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느냐 그것도 아니었음에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면서도 참 희한했다.

끌린다는 것은 얼마나 과분하고 아름다운가!

이런 말을 죽 늘어놓을 수 있음에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가를 생각하다가

커피잔을 기울인 채로 오롯이 공간 속을 비집고 나오는 황홀감과 몰입감에 온 세상이 내 것을 좋아할 수 있는 그 자체로 행복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_ 김영하, <말하다>


누군가 나에게 그동안 느낀 소감을 표현하라고 하면

나는 아무도 없는 그 길을 걸어가다가 가만히 나의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가

책과 바다와 버스와 시간과 끝내주는 여행을 하며 적었던 글과 메모지를 주섬주섬 챙기고서 영감의 소잿거리를 모아두곤 했다.

그렇게 내향인이라고, 내향인이지만 나의 에너지는 외향인이라고 웃음 짓기도 한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공간에 머물며, 좋아하는 취향이 있다는 건 나를 만드는 것과 같다.

‘행복’의 정의란 없지만 내가 만드는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있으니 말이다.

작업실을 연출하며 들여다봤었던 책의 문구를 인용하고 싶다.


“이미지를 모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볍게 '내가 뭘 좋아했더라'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취향을 찾겠다는 다짐은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을'에 집중해 봅니다.

추상적인 이미지나 장르 말고 좋아하는 음악, 책, 게임이나 평소 자신이 즐기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거죠.

의외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어렵거든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고 싶은 것'의 간극도 존재하고요 “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나만의 것, 우리만의 취향이 필요합니다.

저 깊숙이 각자 좋아해 왔던 것, 어릴 적 기억,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 냄새와 촉감,

그리고 스스로 익혀온 미적 감각과 색감,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 지는 집. 그것이 '취향이 반영된 집' 이겠지요. “


-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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