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현 Feb 23. 2024

방향성

directionality


삶의 전환점이 바뀌는 포인트는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달라져야 했던 나의 마음과 태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싫다고 여겼던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변화하고 싶었던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변질이 아닌 좋은 변화이고 싶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간의 정황들을 들여다보면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발전 없는 것 같아도

미래를 향한 끝없는 영감들을, 그 무언가를 수집하고 있었고

돌이키다가 쉬었다가 고뇌하다가 다시 달리다 보면

당장은 동굴 안에 갇혀 답답했던 시간을 지나 있었다.

남들의 시선과 편견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다들 두리뭉실하게 잘 되는 얘기를 할 땐

문제지의 정답처럼 내 삶에 대입해봐야 했다.

(이건 누구나 평생 풀어야 할 숙제 아닐까)


나의 문제를 길게 보자면,

어린아이처럼 떼를 써서 해결될 것 같던 지난날들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단련이 되어

아주 느리고 천천히 성장하는 과정으로 나에게 찾아왔다.

나는 그 시간에 서서히 녹아들어 어느 정도 줄을 당겼을 때

원하던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소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말을 죽 늘어놓는 것 같지만

지난날들의 비교한 나의 마음은 그랬다.

“나는 왜 자꾸 흔들릴까?”라는 생각이 들 땐

나의 방황이 약함이 아닌 좋은 방향으로 가는

버팀목이 된다는 걸 늘 인지하려고 애썼다.

나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나는 뭘 보여주고 싶은지

내가 이걸 함으로써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나의 가치관과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 것을 원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퍼즐이 맞춰지기까지

시간의 흐름과 마침표를, 언제 end.라고 표현될지 모르겠지만

용기를 얻는 밤이 지나고 있다.



현재의 단점이라 함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한다는 것.

‘~이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서 비롯된 큰 파장.

어떻게 보면 걱정과 스트레스가 주는 영향이 얼마나 삶에 치명적인지 알 수 있는 인간 실험 같은 것.

자연인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그러한 관계에서 한 발 물러나서 자유롭게 살기 때문이라고.

나처럼 예민한 회로를 가진 사람들은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아침 9시면 똑같은 일정에 똑같이 돌아가는 삭막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가 직장생활에 알맞은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주어진 일과 주어진 시간에 깔끔하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지,

그 일을 100% 완벽하게 하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상사나 직장 동료 같은 인간관계에서 잘 부대껴 살아갈 수 있는지.

수평과 수직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더 많이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의 90% 직장인의 삶을 살진 않더라도 10%의 나를 찾으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편파적이고 폄하하는 글이 아니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를 알아가고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나로 살게 될 거라는 것. 그래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도, 그럴 자격도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외로움이라고 칭하던 것들과 상황에

나를 깊게 내버려 둔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해봤자

독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는다.

본디 삶은 혼자라고 하지만

사실 주변에 나를 있게 해 준 조력자들이 많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아무쪼록 나의 상황에 맞는 지혜를 구하고 싶다.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모든 세상이 자신의 관심사로 보인다.

한 계절의 꽃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꽃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순간이 음악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동차만 보인다.

선호하고 좋아하는 그 분야에 나름 전문가가 되어

각자 자신만의 안경을 끼고 산다.

유행하는 것을 쫓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다 보면 순간의 찰나가 모여 나라는 취향이 만들어진다.

내일은, 한 달 후에는, 일 년 후에는

어떤 계기로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모르는 것들과

그것들로 인해 살아가며 좋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을 살고 있다.


스물다섯 살엔 더 다채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본디 나의 내면의 모습과는 달리 주먹을 꽉 쥔 채로 버티고 있었던 날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긴장하라던 그 마음은 가끔씩 온데간데 사라지고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면 나는 날 선 예민함을 내려놓은 채 침대에 뉘어 가만히 하루를 들여다본다.

익숙한 환경, 향기, 분위기 속의 나의 방에선 태어난 본성 그대로의 유함으로 돌아가는데 그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을 추구한다던 까탈스러움이,

사실 다른 이면에서의 너무나도 동그란 나의 모습과 대비되어 있음을 알게 된 후에는 이런 식으로라도 마음풀이글을 내적었다.

꿈 많고 하고픈 일들이 많은 욕심 많은 20대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몇 번씩 계산하며 시간분배를 하면 결국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들에 우선순위를 매겨본다.

구태여 나의 삶의 방향키를 잘 잡아보고 싶었노라고 다독이면서 감사하게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게 전부다.

기뻐하는 나, 슬퍼하는 나, 자신감 있는 나, 모든 순간들의 나를 더 사랑해야지.

빛을 따라가는 날엔 카메라 렌즈를 겨냥하고 피사체에 집중하는 나를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번 흔들리는 삶이 아닌, 이제는 자신의 길로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는 사람.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남의 시선에 불안해하거나 좋다고 하는 것보다는 불완전함을 안고 내 선택을 믿어봐야지.

다채로운 삶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사랑하는 청년들이 매 순간 상상하며 행복해지는 일을 하며 나아갔으면 좋겠다.

후회나 미련은 무엇을 해도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삶은 사랑받기에 충분하기에.




“이십 대의 나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기 위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 양귀자, <모순> 중에서



“인생은 모두 부업일 뿐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본업이다.

부업에 목숨 걸지 말고 본래의 할 일로 돌아오라. 재가 되기 전에.”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들과 책의 문구를 인용하며.





이전 03화 쓰임의 존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