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의 안식년
(2016년 2월 3일의 일기를 꺼내다.)
내 딸의 안식년
(2016년 2월 3일의 일기를 꺼내다.)
얼마 전,
이번에 대학 들어간 큰딸아이와 언쟁을 벌였다.
사건의 전말은 수능시험이 끝난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시모집에 합격한 딸아이는 합격의 기쁨에 나른한 한 달을 지내고 있었다.
고생했으니 쉴 자격 있다고 생각한 나도 별 간섭하지 않았다.
먹든 자든 놀든 쉬든...
그런데 무려 한 달 가까이 방바닥 긁고 있는 아이가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가끔씩 나는 말했다.
“너무 나태하지 말거라."
"놀아도 계획적으로 놀아야 한다."
"생활 리듬을 지켜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알아서 할게. 고생했는데 쉴 자격도 없어?”
아이의 대답은 늘 그랬다.
하지만 자꾸 아이의 하는 짓이 눈에 걸렸다.
늦은 시간까지 퍼질러 자고 온갖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갖기에 작심하고 아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수능 끝나고 벌써 한 달이 지났어, 언제까지 이럴 작정이야?”
“대학 들어간 게 벼슬이냐?”
“너만큼 고생 안 하고 대학 들어간 놈 있어?”
“전국 60만 수험생이 다 힘들었어, 유세 떨지 마!”
“대학 가면 너보다 훨씬 잘난 놈들 부지기수야, 대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거든!”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아이는 선체로 울었다.
그날 이후로 서로 서먹해져 버렸다.
아이는 내 말대로 서울 강남의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고 일주일에 3일은 토플 배우러 상경을 해야 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결코 기쁘지 않은 스케줄이었다.
아직 겨울, 오늘 아침 날씨는 쌀쌀했지만 베란다를 타고 거실로 길게 들어오는 겨울 볕이 너무 따스해 베란다 앞에 눈을 감고 앉았다.
아직은 이른 따스한 봄볕이 온몸을 만지작거렸다.
집을 사고 10년이 지났지만 정작 집에 머문 시간은 잠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말이 좋아 내 집이지 월세 사는 하숙생이나 다름 아니다.
출근도 미루고 멍하니 베란다 앞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뭐해요?”
“광합성...”
아내는 피식 웃으며 굳이 내 무릎에 와서 앉았다.
무거웠다.
그러나 참았다.
아내에게 넋두리를 했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이러고 앉았으면 좋겠네...”
그러고 있으려니 문득 아직도 서먹한 우리 큰딸 생각이 났다.
어른인 나도 이런데 아이는 어땠을까.
입시로 고민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재수 1년.
돌이켜 보니 무려 7년.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못 자고, 텔레비전하나 맘 편히 못 보고 먹고 싶은 것도 맘 편히 못 먹었으리라.
그래, 고생했다.
그래, 수고했다.
아빠가 몰랐어.
미안해.
기독교 성경에는 안식년이라는 것이 있다.
7년 주기의 마지막 해.
땅을 갈지 않고 묵혀두며,
가난한 자와 짐승들을 먹이고,
빚을 면제해 주며,
종들을 해방시키던 해.
안식이란, 가만히 쉬는 것이다.
일을 안 하고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늘 무엇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삶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낯선 일이다.
7일에 한번
7개월마다 한번
7년에 한 번씩.
멈추지 않으면 고장 난다.
과로와 스트레스 앞에 장사 없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조금 멈춰야 한다.
멈추지 않으면
아예 멈춰야 될지도 모른다.
잘 가다가 갑자기 넘어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급하게 뛴 사람들이다.
순간순간 더 빨리, 더 높이 뛰고 싶은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어차피 머잖아
멈추게 되지 않겠나.
겨우내
치열하게 내리던 눈 언덕 위에도
머잖아 민들레가 만발하리라.
저 들녘,
거칠던 묵정밭에도,
그리고 내 딸아이의 작은 가슴에도
삼월에는
파란 냉이 꽃이 피려나.
20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