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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Oct 15. 2024

아이 낳자! 여름엔 수박이 달잖아 (한강)

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한강 작가님이 24년 전에 쓰신 자전 소설 “침묵”에 실린 문장이 다시 한번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문학동네 2000년 여름호에 실려있다.


결혼한 지 이태가 되어가던 겨울에, 남편과 아이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시단다.


한강 작가님은 잔혹한 현실을 볼 때면, 아이를 낳는 것이 부모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가 고민하셨단다.


여기에 대한 남편 되시는 분의 말씀이 기가 막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그렇다면, 한번 살아보게 한다고 해도, 죄짓는 일은 아니잖아.“라고 되물으셨단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작가님은 또다시 고민에 빠지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그런 생각에 이를 때까지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모르겠다”

“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겪게 하냐…”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셨단다.


그러자 남편은, 왜 그렇게만 생각하냐면서 설득하신 말씀이 너무도 멋지다.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단데, 그런 것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냐?”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들을 대신 것이다.


한강 작가님은 그때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단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건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덩달아 미소를 짓게 된다.


같이 함께하는 문인들의 사랑은 너무도 낭만적이고, 시적이고, 환상적이다.


설탕처럼 부스러지는 붉은 수박의 맛을 생각하며, 작가님은 그저 웃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을 잃으셨단다. 수박을 한 입 베어 물 때, 아무런 불순물 없이 달콤한 그 순간을 맛보았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모든 중요한 일들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결정되기 시작한다는 것도, 그때 비로소 느끼셨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하나 고민하시던 한강 작가님이, 남편의 말 한마디에 인생의 작은 희망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 한켠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세상은 살만 한 것 같아, 그래도 여름엔 수박이 참 달잖아.


누군가에게는 그저 단순한 일상 속의 스쳐 지나가는 대화였을지 모르겠지만, 한강 작가님에게는 그 말이 이 세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작은 빛이었을 것같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남편의 그 말을 듣고, 작가님은 비가 내리는 소리도, 눈이 내리는 풍경도,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름에 무지 달고 맛있는 수박을 아이에게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한강 작가님의 이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깊은 울림을 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출산 후, 커리어와 개인 생활에 대한 우려 등 너무도 많은 힘든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아이를 낳지 않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강 작가님의 남편께서 하신 말씀처럼, “여름에는 수박이 달다"라는 말에 희망을 걸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어쩌면 우리도 살면서 놓치고 있는 작은 기쁨들이 있을지 모른다.


여름의 그 맛있고 달콤한 수박처럼 말이다.


한강 작가님은 그 작은 아름다움에 마침내 마음을 열은 것이다.


빗소리, 눈 내리는 풍경, 바다의 파도 소리.


이런 소소한 것들이 어쩌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칠십을 넘어서고 나니 이제서야 확실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세상이 암울하고 힘들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아직도 여전히 수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린 이런 일상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우가 필요한 것 같다.


“여름엔 수박이 달다”


이 말이 주는 여운이, 이토록 대단하다는 것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것이다.


이 말속에는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어쩌면 그런 작은 희망들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름의 수박처럼, 가을의 낙엽처럼, 겨울의 눈처럼 우리에게는 아직도 세상에서 봐야 할 아름다움이 너무도 많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겠다는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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