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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Feb 02. 2023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지는 법

편집자의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가장 잘해야 하는 것은 ‘글을 만지는 일’이다. 글을 고치고, 다듬고, 만져서 윤이 나도록 만드는 일이 바로 편집자가 할 일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일은 ‘글만 고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기획을 하고, 유의미한 글이 만들어지도록 저자를 독려하고, 목차를 꾸리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책이 나와서 독자에게 가닿기까지 홍보글을 써야 하고, 보도자료도 작성해야 한다. 책의 컨셉과 글의 주제를 뚜렷하게 설명하는 것까지 편집자의 일이다.


편집자의 기본 소양은 글을 보는 안목과 만질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편집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극히 적다. 더욱이 글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더더욱 없다. 오늘 나의 일과만 해도 그렇다. 아침에는 독자들에게 보내야 하는 글들을 써야만 했고, 오후에는 곧 신간으로 나오는 책의 홍보글을 써야만 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다. 내가 편집을 맡아 진행해야 하는 책의 원고는 단 한 글자도 보지 못한 것이다. 선배 편집자들이 왜 항상 사무실에 남아 원고를 읽는지, 이해가 되는 하루였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모든 편집자가 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걸까를 묻게 된다. 어쩌면 책을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은 지극히 내향적이거나 조금의 사회부적응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최대한 적게 하고, 오롯이 자신이 맡은 책의 원고만 읽고 고쳐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일 잘하는 편집자는 컴퓨터 앞에서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다른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 자신의 일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닐까. 글을 읽는 일은 주로 컴퓨터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잔뜩 있는 사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글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비교적 외향적이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사람들과 실컷 떠들고 나면, 그때부터 글을 읽거나 쓰거나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성격 때문에 글 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불리하다. 때때로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서 골똘히 시간을 보내는 편집자의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적당히 원고를 보면,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어야 하고,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는 스타일이다. 이런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건 아마 내가 맡은 책이 나올 때쯤 정해지지 않을까 싶다.


사람마다 자신이 일하는 스타일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내향적이고, 고독을 즐긴다. 컴퓨터 앞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우직하게 해낸다. 어떤 사람은 소통을 잘한다.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조율하는 것이 탁월하다. 어떤 사람은 기획을 하는 일을 잘한다. 어떤 사람은 글을 만지고 고치는 일보다 저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일을 잘한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르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자. 굳이 안 되는 일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일하자. 괜히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지는 법이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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