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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Apr 26. 2023

동양천문도에 '십자가'가 생긴 이유

동서양 천문학의 만남과 함께 벌어진 사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국기에는 남천 하늘의 대표 별자리인 남십자자리(Crux)가 그려져 있다. 본격적으로 유럽인이 호주로 건너가게 된 것이 1788년 영국으로부터 죄수 736명을 태운 13척의 배가 건너온 것인데, 당시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어느 지역에서도 남십자자리는 볼 수 없었다. 고향으로부터 멀고 먼 오지의 호주 대륙까지 온 기독교인들의 눈에 남쪽하늘에 밝게 빛나는 십자가 모양의 별이 어떻게 다가왔을지는 자명하다. 종교적, 정신적 신념이자 지표였기에 별자리들 중 유일하다시피 국기에 그려진 것이 남십자자리이다.

 그래서 호주 국기는 자신들의 뿌리가 영국에서 왔다는 뜻으로 유니언 잭을 넣고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 별자리인 남십자자리를 넣어 호주라는 국가의 개성을 삽입한 복합적인 의미의 국기라고 할 수 있다.

남반구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남십자자리

 필자가 사용하는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인 Starry night pro에서 제공하는 동양별자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법(新法) 천문도를 바탕으로 그려져 있다. 구법(舊法) 천문도에는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남반구의 하늘까지 별자리가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신법천문도는 남반구를 거쳐 건너 온 서양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남반구의 별자리들까지 천문도에 삽입되었다. 태미원에서부터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면 동방 칠수의 첫 번째 별자리인 각(角, 스피카)를 지나고, 더 이상 별자리가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로 남십자자리가 있는데 이 남십자자리는 '십자가(十字架)'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런데 방금 전 말한 구법 천문도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각수 별자리 아래쪽에는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고루(庫樓) 별자리

 위의 그림과 같이 고루(庫樓)라는 별자리가 있다. 이 별자리는 옛 군대의 보급창고의 의미를 가지며 고루 안에 있는 주(柱)와 형(衡)과 같은 별자리들을 보호하는 울타리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파란색 사각형 안의 '남문' 별자리와 함께 보면 흡사 하늘에 있는 군대의 주둔지와 같은 모양이다. 천문류초에서는 고루를 정확히 6개의 별이 울타리의 형태를 가진 고(庫)와 입구에 망루를 나타내는 4개의 별을 루(樓)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위 그림에서 노란색 박스가 고, 초록색 박스가 루 별자리인 셈이다. 여기서 초록색 박스의 루(樓)를 나타내는 4개의 별이 정확히 십자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루 왼쪽의 파란 박스에 남문(南門)이라는 밝은 별 두 개가 이어진 별자리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구조 특성상 남천 하늘이 매우 왜곡되어 있으나 반대편의 노인(老人)성(카노푸스)과 비슷한 위치에 그려진 것으로 볼 때 카노푸스 수준의 적위상 위치에 놓인 별자리임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한눈에 봐도 고루의 끝의 4개의 별은 남십자자리라 예측할 수 있고, 왼쪽의 남문은 실제로 남십자자리의 왼쪽에 밝게 빛나는 센타우르스 알파(α)와 베타(β) 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신법천문도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래 그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 중인 신/구법 천문도의 황도남북양총성도를 확대한 사진이다.

황도남북양총성도의 고루 별자리

이해하기 쉽게 각 같은 색의 사각형으로 묶어 보았다. 초록색 사각형 안의 납십자자리는 더 이상 고루가 아닌 '십자가'로 명명되었고, 남십자자리 위의 작은 4개의 별 집단(빨간 동그라미 표시)이 대신 고루의 끝 쪽 4성의 위치해 원래 '루' 별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또한 남문의 밝은 두 별은  찢어져서 다시 '남문'과 '마복(馬腹)'이란 별자리로 그려져 있다.

 동서양 별자리를 성도에 동정한 '성진고원'이라는 책에는 위도상 남십자자리는 그리지 않았고, 황도남북양총성도와 같이 고루의 맨 끝 4성은 남십자보다 위에 있는 센타우르스 감마, 델타 별 등으로 대체되어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남문이 다시 원래대로 센타우르스 알파, 베타 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성진고원에 나타낸 고루 별자리

이와 같이 멀쩡하던 고루(庫樓) 별자리는 찢어져서 루(樓)로 그려지던 남십자자리는 '십자가'란 이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뀌게 된 이면에는 어떠한 역사가 숨어져 있는 것일까?



 영국의 유명한 과학작가인 이언 리드패스(Ian Ridpath)는 천문학의 대중화 및 별자리 역사의 전기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Ianridpath.com에 그의 저서인 Star tales의 내용을 그대로 볼 수 있는데 서양 별자리 88개의 별자리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남십자자리가 생기게 된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남십자자리가 유럽인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당연하겠지만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신항로를 개척하던 항해사들에 의해서였다. 유명한 이탈리아의 아메리고 베스푸치(1501)나 안드레아 코살리(1515)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그러나 천구상의 별자리로 제대로 소개된 것은 Petrus Plancius와 Jodocus Hondius가, 영국의 탐험가인 Robert Hues 가 그의 저서 'Treatise on Globes and Their Use'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지인을 이용해 직접적인 관측을 통한 자료를 입수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603년 Uranometria atlas라는 책에 Johann Bayer가 그린 삽화가 삽입되면서 센타우르스의 발목을 이루는 별자리로 소개되었다.

Uranometria atlas에 삽입된 남십자자리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남십자자리는 독립적인 별자리가 아닌 센타우르스의 엡실론, 크사이, 누, 제타로 표기되었는데 본격적으로 독립된 남십자자리(De cruzero)를 언급한 것은 같은 해 네덜란드의 항해사 Frederick de Houtman에 의해서였으며 마침내 독일의 천문학자 Jacob Bartsch에 의해 1624년 남십자자리(Crux)로 명명되게 된다. 요컨대, 남십자자리는 16세기에 항해사들에게 처음 발견된 후 1624년에 비로소 '남십자자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남십자자리가 세상에 알려진 17세기 초는 공교롭게도 예수회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넘어오는 시기였다. 문화적 자존심이 투철한 중국인들에게 천주교를 포교하기 위한 방법은 바로 선교사들이 중국의 언어, 문화를 배움으로써 그들과 친숙해진 뒤 보다 우수한 자신들의 과학과 기술을 소개함으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닫혀있는 마음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방법이었다. 발달된 과학 기술 중 주된 공략이 지리학과 천문학이었다.


'특히 역법 개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 중국 황실의 호의를 얻을 수 있어 선교활동에 커다란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견해는 마테오 리치가 로마 예수회 본부에 보낸

1605년 5월 12일 자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만일 천문학자들이 중국에 와서 역법 계산에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중국어

로 번역하여 중국력의 개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의

평판이 높아져서 점차 중국 사회에 들어가는 것이 용이하게 되고, 좀 더

자유롭게 우리의 선교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초대에 의하여 비로소 1620년에 천문학에 해박한 전문지식을 지닌 선교사들이 중국에 도착했다. 이때 함께 온 예수회 선교사들은 롱고바르디(Nicolo Longobardi, 龍華民, 1565-1654), 슈레크(Johann Terrenz Schreck, 鄧玉函, 1576-1630), 로오(Giacomo Rho, 羅雅谷, 1592-1638), 그리고 아담 샬(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1-1666) 등으로서 후에 중국의 역법 개혁과 천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 서강대 심종혁 님의 연구논문 '예수회 중국 선교사들과 서양과학의 조선 전래(신학과 철학 제20호, p.77)'


 이 중 아담 샬(탕약망)이 흠천감의 감정(천문대장)으로서 1664년까지 있으며 시헌력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그는 1631년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에게 바친 '항성경위도설'을 바탕으로 1634년 '적도남북양총성도'라는 천문도를 간행하게 된다. 아래 그림은 바로 이 성도의 일부분이다.

적도남북양총성도

 가운데 '십자가'라는 별자리가 정확히 보인다. 오른쪽 아래에는 더 이상 십자 형태가 아닌 4개의 별에 '고루'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남문과 고루 주변에 '마복(馬腹)', '마미(馬尾)'같은 별자리가 있는데 위의 Uranometria atlas에서 보면 알겠지만 이 부분은 센타우르스의 하반신인 말 형상의 부위를 따다가 넣은 것이다.

 처음에 이언 리드패스는 남십자자리를 소개하는 글 마지막에 Sun과 Kistemaker가 쓴 'The Chinese Sky During the Han'를 인용하면서 남십자자리가 고루(Kulou)의 일부였으나 세차운동에 의해 점차 별자리가 남쪽 지평선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면서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센타우르스자리의 다른 별들로 대체한 것 같다고 하였다. 실제로 한나라 시기까지 남십자자리의 고도는 지금보다 높아 북반구에서도 볼 수 있는 별자리였다.

 

The Chinese Sky During the Han에 있는 남십자자리

 여기서 말하는 '중국의 천문학자'는 바로 탕약망, 아담샬이다. 그를 위시로 중국으로 건너온 천문학에 능통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기존의 '대통력'보다 정확한 일식과 월식의 예측 성공으로 명나라 황제의 신뢰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고루의 '루(樓)' 별자리였던 남십자자리를 '십자가'로 바꾼 성도를 찔러보고는 거부감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 '적도남북양총성도'를 간행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신법천문도인 '황도남북양총성도'는  역상고성 후편을 편찬한 쾨글러(대진현)가 1723년에 제작한 천문도를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탕약망의 '적도남북양총성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천문학자이자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그들은 그들이 넘어오던 시점에 발견되어 명명된 '남십자자리(Crux)'라는 따끈따끈한 별자리를 동양천문도에 박아 넣었고 그렇게 신법천문도에 '십자가'라는 별자리가 당당히 존재하게 된 것이다.

 동, 서양의 문물이 혼재되면서 서로의 문화가 차용되는 일은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문명의 발전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십자가' 별자리가 차용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상징으로 하는 기독교 예수회의 선교사들의 손에 인위적으로 삽입되었다는 것에서 순수하지만은 않은 저의가 느껴지는 게 기분 나쁠 뿐이다.

 구법 천문도에서 '고루' 별자리의 그림을 깨끗이 지우고 십자가란 이름을 적어 넣으며 큭큭 댔을 탕약망의 얼굴이 얼비치는 건 나뿐일까.

요한 아담 샬 폰 벨 (탕약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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