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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Jul 26. 2023

잿빛 하늘과 오로라의 17세기 조선 하늘

일무광, 태백주현과 유기여화광은 지구한랭화의 전조일까

 2007년에 개봉된 선샤인이라는 영화는 킬리언 머피, 양자경, 사나다 히로유키, 베네딕트 웡등의 스타 배우들이 모였던 영화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현재의 우리가 맞이하는 현실과는 정 반대의 기후 변화를 주제로 삼고 있다. 바로 태양이 점차 죽어가면서 초래된 지구한랭화로 멸망 직전까지 간 인류가 태양에 핵폭발을 일으켜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핵폭탄을 실은 '이카루스'라는 우주선을 태양에 보내게 되면서 벌어지는 SF 호러 영화이다. 호러라는 장르답게 온갖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자신을 희생하며 임무를 완수하게 되는데, 영화의 엔딩장면은 주인공의 가족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죽어가던 태양이 다시 살아나 밝은 햇살을 내리쬐며 끝을 맺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 중 지구한랭화를 뚜렷이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구는 점차 온난화되어 가면서 이제 한반도도 더 이상 온대 기후라기보다 열대 기후에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과학자들 간에도 시각이 다르긴 하나, UN 기후변화회의(IPCC)를 비롯 대체적인 과학계와 언론은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가 원인이라 생각하며 이를 감축시켜 산업화 이전의 지구 평균 기온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전 인류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었는데도 지구 평균 기온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그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반대로 인류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그다지 줄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지구 평균기온이 점차 하락하게 된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이 만든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이런 점을 꼬집는다. 사실 기후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태양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농도와 지구평균기온의 증가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여 기온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온의 증가로 인한 수온 증가로 인해 용존 이산화탄소가 감소하면서 생겨나는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태양의 운동을 가늠할 수 있는 흑점의 주기가 지구 평균기온의 증가추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태양의 흑점이 많다는 것은 태양 폭발로 인해 태양의 강한 자기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로 태양의 자기장이 강하면 지구의 대기권에서 대기 중 물질을 이온화하여 구름의 결정핵을 만들 수 있는 우주선(Cosmic ray)의 유입을 차단하는데, 결과적으로 구름이 잘 생성되지 않아 일조량이 늘어나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간다는 주장이다. 시간의 범위를 넓게 볼 때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 이후의 지구 평균기온은 상승하나 흑점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고, 상승폭 자체도 이전까지의 상승폭과는 다른 양상을 가지므로 꼭 이것만이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 기록을 되돌아보면 앞서 소개한 영화 '선샤인'에서처럼 태양으로부터 오는 복사 에너지가 한결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샤인의 엔딩장면은 구름이 한점 없는 대낮이지만 하늘은 마치 해가 지는 저녁을 연상할 정도로 어둡다.

영화 선샤인의 엔딩장면 속 '낮' 하늘의 모습

 해가 떠 있어도 밤을 연상케 하는 잿빛 하늘은 개기일식이 일어났을 때의 하늘의 모습과 비슷하다. 아래 사진은 2019년 칠레 라실라 산 천문대에서 관측한 개기일식의 모습이다.

2019년 라실라산 천문대에서 관측된 개기일식의 모습

 당연히 잘 아는 사실이지만 개기일식 때에는 태양빛이 줄어들게 되어 밤하늘처럼 어두워지면서, 육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밝은 별들이 확인이 된다. 위의 사진에서도 지평선 위에 밝게 빛나는 천체가 금성이다.

 그런데 일식이 아니면서도 이렇게 태양이 빛을 잃어서 어두워지는 경우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현재, 즉 기후 변화에 대한 기상기록이 시작된 이후에는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 기록을 보면 '일무광(日無光)'이란 기록이 존재한다.


"고구려 영류왕 23년(640) 9월 日無光經三日復明

         해의 빛이 사라졌다가 삼일 이후 다시 밝아졌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위의 기록은 단순히 해가 구름에 가려져서 흐린 날씨를 기록한 것이기보다 실제로 햇빛이 3일 동안 사라져 어두워진 것 같은 뉘앙스가 비친다. 640년은 당나라 정관(貞觀) 14년인데 구당서, 신당서 천문지에는 같은 날의 일변 기록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당서 천문지를 보니 일변 기록을 따로 잘 엮어 놓았는데 여기서 확인된 다른 일무광 기록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단순히 해가 빛을 잃었다는 기록 외에 태양의 색깔이 어떠했는지도 나타나 있다.


"貞觀初,突厥有五日並照。二十三年三月,日赤無光。李淳風曰:「日變色,有軍急。」又曰:「其君無德,其臣亂國。」濮陽復曰:「日無光,主病。」

咸亨元年二月壬子,日赤無光。癸丑,四方濛濛,日有濁氣,色赤如赭

上元二年三月丁未,日赤如赭

永淳元年三月,日赤如赭

文明元年二月辛巳,日赤如赭

長安四年正月壬子,日赤如赭

景龍三年二月庚申,日色紫赤無光"

- 신당서 천문지


 위의 글은 신당서 천문지에 기록된 일변 기록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붉게 표시한 것처럼 태양이 빛을 잃음(無光)과 동시에 색깔이 적색(赤), 자색(紫, 赭)이라던가 기운이 탁하다(濁氣)는 표현으로 심상치 않았던 태양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쓴 것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만약 태양의 활동이 지금처럼 충분한 복사 에너지를 주지 못하였다면 일조량이 줄어들므로 당연히 한랭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한랭화는 결국 북방의 유목민족의 남하를 초래하게 되고, 북방에 위치한 국가들의 생산력이 감소하여 이에 따른 국방력의 약화 또한 자명할 것이다. 영류왕 시기 해가 광채를 잃은 기록은 당시의 기후가 한랭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이것이 결국 다음 왕인 보장왕 대에 이르러 고구려가 멸망하게 된 원인의하나는 아니었을까.


 태양이 일출 시나 일몰 시가 아닌, 대낮에도 붉게 보이려면 그 빛이 얼마나 줄어야 되는 것일까. 태양을 육안으로 관측할 경우 망원경의 대물렌즈 앞에 태양필터를 끼우게 되면 아래와 같은 모습의 태양을 볼 수 있다.

태양 필터를 끼고 촬영한 태양의 모습 (촬영자 : 위대한 천체사진가 디노 안해도)

 일반적으로 태양 필터의 투과율은 0.003% 로 알려져 있다. 즉, 원래 태양빛의 10만 분의 3을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반사 또는 차단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야 안전하게 태양의 원래 모습인 주황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낮에도 해가 붉게 보이는 현상이 관측된다면 그것은 태양의 밝기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현저히 줄어듦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색으로까지 보이지는 않더라도 충분한 양의 태양빛이 줄어든다면 낮에도 금성을 볼 수 다. 금성, 또는 태백이라 불리는 이 별이 낮에 보이는 현상, 즉 태백주현(太白晝見) 현상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백주현 현상이 많은데, 태백주현이란 표현뿐 아니라 '태백경천(經天)'이라는 말도 나온다. 태백주현의 개념에 대해서는 연산군일기에 나와 있으며, 당시 관상감 제조였던 김응기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김응기가 아뢰기를,

"태백성은 늘 해에 붙어 다니는 것인데, 해에 앞서 다니는 것을 계명(啓明)이라 이르고, 해를 따라다니는 것을 장경(長庚)이라 이릅니다. 태양이 성하면 별이 능히 낮에 나타나지 못합니다. 만일 양(陽)이 미약해서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는 것도 이미 불가하온데, 하물며 지금같이 경천을 하는 것임 에리까? 대단한 변고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무슨 잘못된 것이 있어 낮에 나타나고 경천을 한단 말이냐."

하매, 김응기는 아뢰기를,

"무슨 일 때문에 오는 것이라 지적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다만 오(午)의 지점은 정양(正陽)의 위치입니다. 양기가 아주 쇠하여 별이 이곳을 지나는 것을 경천이라 하고, 양기가 잠시 미약하여 별이 미(未)·신(申)의 사이로 지나는 것을 낮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반응하는 것이 《문헌통고(文獻通考)》에 갖추어 있습니다."'

 - 연산군일기,  연산 3년 9월 2일 경자 2번째 기사


 쉽게 말하면 금성이 오(午)지, 즉 정남 쪽에 남중하고 있을 때부터 보인다면 경천이라 하고, 미와 신, 즉 남서쪽에서부터 보인다면 주현이라고 표현한다. 금성의 최대이각은 47.8도로 태양과 경도상 대략 3시간 차이이므로, 금성이 이때 남중한다면 오전 9시 또는 오후 3시 정도가 되는데, 두 시각 모두 태양이 충분히 하늘에 떠있는 시각이다. 요컨대 태백경천 현상을 보는 시각은 대낮인데, 태양빛이 줄어들지 않고서야 관측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주현 또는 경천 기록 중 기록 시각과 위치까지 같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와 같다.


"명종 17년 2월 9일 癸亥 1번째 기사 1562년 명 가정(嘉靖) 41년

태백이 경천하고 신시에 세성이 사지에 나타나다 癸亥/太白經天。 申時, 歲星見於巳地。


광해군일기[중초본] 54권, 광해 12년 10월 5일 戊申 4번째 기사 1620년 명 만력(萬曆) 48년

사시에 태백성이 하늘을 지나 미지에 나타났는데 13일간 계속되다

(巳時)太白經天 (見於未地)。 【此後十三日, 連日經天。】"

- 조선왕조실록


 첫 번째인 명종 17년, 1562년 음력 2월 9일은 양력 3월 13일이다. 태백(금성)은 경천하였고, 신시(오후 3-5시)에 세성(목성)이 사지, 즉 동남쪽 방향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날 오후 3시의 하늘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1562년 3월 13일 오후 3시의 하늘

위 그림은 마치 대기권이 없는 것처럼 낮에도 별이 보이도록 효과를 준 것이다. 밤처럼 보이지만 오후 3시이므로 실제로는 대낮이다. 금성은 태양보다 서쪽, 즉 오른쪽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붉은 박스에 있는 시각이 금성이 남중하는 시각으로 오전 11시 쯤부터 금성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후 3시 현재 정확히 목성이 동남쪽 방향 하늘에 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날 신시인 오후 3-5시에 금성과 목성의 위치가 기록과 정확히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예상하는 금성의 밝기 등급은 -3.8, 목성은 -2.0이다. 매우 밝은 수치이지만 만약 태양의 밝기가 정상이었다면 그 시각에 쉽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인 광해군 12년, 1620년 음력 10월 5일은 양력 10월 29일이다. 사시(오전 9-11시)에 미지(남서쪽) 방향 하늘에서 금성이 나타났다고 한다.

1620년 10월 29일 오전 11시의 하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완전히 대낮인 오전 11시에 금성이 13일 동안 보였던 것이다. 나는 살면서 오전 11시에 금성이 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이 시기 태양의 밝기가 줄어들지 않고서는 13일씩이나 낮에 금성이 떠 있는 것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한 기록이 있다. 인조실록을 보면 태백경천이 무려 6개월을 지속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다.


"이때 천문(天文)의 변이 없는 날이 없었다. 태백(太白)이 경천(經天)한 지 이미 반년이 되었는데도 일관(日官)이 아뢰지 않기도 하고 조정에서도 보통으로 생각하였다. 별의 변괴 중에서 몹시 참혹한 것은 일관이 숨기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 적었다."

- 인조실록, 인조 24년(1646) 3월 24일 辛未 1번째 기사


 낮에 금성이 보이는 것이 6개월을 지속했다는 말이다. 이처럼 태양의 밝기가 줄어든 이유는 태양 표면의 큰 폭발에 의해 거대한 태양풍이 외부로 배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실록에는 태양의 흑점을 관찰한 기록이 있는데 크기가 계란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흑점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태양풍이 외부로 배출된다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오로라이다.

실록에 기재된 유기여화광 기록

 위와 같이 실록에는 밤에 불빛 같은 기운이 있었다는 '유기여화광(有氣如火光)'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특히 이 기록은 인조실록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적색, 녹색이거나 백색인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오로라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계란만 한 흑점이 육안으로 보일정도의 태양풍의 발산은 태양의 밝기가 줄어들어 낮에 금성, 혹은 목성까지도 보일 정도의 일조량 감소를 가져왔고, 밤에는 중위도 지역인 한반도에서도 오로라가 보일 정도였다.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태양활동이다. 특히 이 시기가 인조 임금 시기인 17세기 중반에 집중되어 있다.

 급격한 일조량 감소는 바로 17세기를 '소빙하기'라 부르게 되는 한랭기로 만들었고, 1670년과 1671년 두 해에 걸친 '경신대기근'을 만들었다. 건설환경연구원에서 연구한 '조선시대 가뭄 기록 조사'라는 자료가 있는데 조선 시대에 가뭄 기록이 가장 많은 때는 성종(433회)과 중종(457회) 때였고, 인조 때는 170회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기우제 횟수도 많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기후가 한랭화를 겪고 기근이 발생한 것을 보면 당시의 태양 에너지가 현재보다 매우 낮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1400년 이후 유럽의 사실주의 풍경화 1만 2천 점을 분석한 결과 소빙하기 이전엔 파란 하늘이 묘사된 그림이 65%였지만 소빙하기가 시작된 이후엔 흐리고 어두운 날씨가 70~80%를 차지했다고 한다." - 출처 : 나무위키


 현재의 인류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걱정은 열원인 태양 복사 에너지가 '영원불변'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맨눈으로 보일정도의 흑점을 가지고, 대낮에도 눈부시지 않고 붉게 보이며, 어두운 잿빛 하늘 사이로 금성과 목성이 보이게 된다면,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에서 밤하늘에 오로라가 관측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아닌 지구 한랭화를 걱정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이 언제 올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아니 오늘이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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