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과거 역사기록에 나타난 일식, 월식이나 행성 위치를 슈퍼컴을 이용해 계산하여 규명했다는 멘트를 들어 봤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런 기사는 똑똑하고 천재 같아 보이는 천문학자의 인터뷰가 버무려져서, 저명한 학자의 주장에 감히 반박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선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에 흥미있어하거나 나름 조예가 깊은 사람도 사서나 유적 같은 역사의 흔적 속에 남아 있는 천문 현상에 대해서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쟁을 하지 못하고 뒤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슈퍼컴을 이용하여 계산했다는 기사는 20년 전에 나온 말이다. 보통 슈퍼컴퓨터의 계산 능력과 퍼스널 컴퓨터(PC)의 계산 능력의 차이는 20년 정도라고 한다. 지금의 슈퍼컴의 능력은 20년 후 PC의 능력과 동일하다는 말이니 현재의 PC가 20년 전 슈퍼컴과 같은 계산 수행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현재는 PC나 스마트폰에 설치할 수 있는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 (Planetarium software)를 이용하면 누구든지 원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대와 위치에서의 정확한 밤하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톱니바퀴를 이용한 거대한 기계 형태의 플라네타리움이 선보여진 것이 18세기의 일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정밀하게 천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구현하여 볼 수 있는 것은 현대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뉴턴이나 갈릴레오, 아인슈타인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감탄했을까.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물론 교양 천문학, 어쩌면 그 이상의 천문학적 지식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또한 역사 기록의 천문현상을 대조하고 싶다면 한자로 되어 있는 옛 기록들을 열람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 철학 등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천문학, 역사학, 철학, 고고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들이 서로 간의 융합을 통해 연구가 이루어지는 고천문학(Archaeoastronomy) 또는 역사천문학(Historical astronomy)은 때로는 필요 학문을 두루 섭렵한 개인이 연구할 때도 있고, 각 분야의 전문가라 불려지는 사람들이 단체를 이루어 연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 쪽 모두 전반적으로 그 수가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어려운 접근성은 결국 이것을 전공하거나 또는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희소하게 만들고, 그들의 주장은 대개 무비판적으로 수용된다. 비판을 하고 싶어도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잘 모르기 때문에 비판 자체가 불가한 것이다.
필자는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고 다른 분야의 과학을 전공한 공학박사이다. 하지만 동시에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천문가이기도 하다. 역사 또한 굉장히 좋아해서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치면 '우주 덕후'이자 '역덕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일찍 역사와 천문을 들여다보는 취미가 생기게 되었다.
생각이 거칠고 지식이 짧은 젊은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나이를 먹고 공부의 깊이가 익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역사천문학이라는 학문이 많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문학자로 명성이 높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천문학적 또는 수리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역사학계의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것을 소위 '강단사학'을 비난하는 유사 역사학, 사이비 역사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마치 무적의 치트 키인 것처럼 왜곡하여 인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가관인 건 이 사람들 또한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나 NASA에서 제공하는 일식, 월식 데이터를 이용하여 마치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가 '과학적'인 것처럼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가지고 모임을 만들고, 학회를 만들고, 강연을 하며 그들만의 생태계가 조성되었다.
이런 분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요. 당연하죠.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거짓말은 당신들이 한답니다.
마치 총을 쥔 어린아이들처럼 아무렇게나 난사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총 쥐는 법이라도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게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어 더 이상의 왜곡 오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