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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전문가윤담헌 Aug 22. 2023

삼국사기 백제본기 일식기록 검토

중국 사서 기록과의 차이점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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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26건의 일식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 신라 본기와 비교했을 때 기록의 연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기록들에 대응하는 중국 사서도 한서(漢書)에서부터 수서(隋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평균식분도에 의한 최적 관측지론에 따르면 백제의 일식 기록들의 식분값들을 평균했을 때 가장 높게 나타나는 지역은 요서 지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당되는 식분값이 높은 지역 안의 대도시로 베이징이 있다.

 따라서 이번 검토에서 요서 지역과 한반도 지역의 식분값의 대표 지역은 중국 베이징(북위  39° 54′, 동경 116° 23′)으로, 한반도의 경우 백제의 수도로 알려졌던 위례(북위 37° 31', 동경 127° 9'), 웅진(북위 36° 27', 동경 127° 7'), 사비(북위 36° 17', 동경 126° 54')를 천도 시점에 맞춰 설정하였다.


1. 기원전 13년 8월 31일

(삼국사기) 온조 6년 秋七月 辛未晦 日有食之.

(한서 안제기/오행지) 永始四年, 秋七月 辛未晦, 日有食之.

식분 :  북경 0.34, 위례 0.25

이 날의 달의 본그림자는 러시아 북부 쪽이다.

그림자의 경로가 지구의 위도와 평행하게 움직여서

중국이나 요서, 한반도, 일본 등이 거의 동일하게, 대체로 낮은 식분(0.2-0.3)의 부분일식으로 관측되었다.


2. 73년 7월 23일

(삼국사기) 다루 46년 夏五月 戊午晦 日有食之.

(한서 명제기) 永平十六年, 夏五月 戊午晦, 日有蝕之.

(한서 오행지) 永平十六年, 夏五月 戊午晦, 日有蝕之, 在柳十五度.

식분 :  북경 0.72, 위례 0.68

 이 날 달의 본그림자는 중국 남부를 지나갔고 한반도, 요서, 중국 본토가 일몰 시점에 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일식 경로가 요서 지방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선과 평행하여 두 곳 모두 비슷한 식분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경우 비록 해가 지는 시점과 맞물리나, 대부분 해가 지는 시점에 일식이 최대 식분 시점을 지나가기 때문에 시야가 트인 공간에서는 0.7 가량의 높은 식분의 부분일식을 관찰하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서 오행지에는 일식 시점에 태양이 천구상의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를 류(柳) 별자리에서 15도 떨어진 곳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동양천문학에서 천체의 천구상 좌표를 나타내는 방법을 '거극도'라고 부르는데 위도상으로는 북극에서부터 떨어진 거리를, 경도상으로는 28수 별자리 중 가장 가까운 별자리의 대표별(수거성)과의 경도(동쪽 방향)의 차이로 표현한다.

 여기서는 류 별자리를 이용했는데, 류 별자리의 수거성인 바다뱀자리 델타(δ) 별의 경도 차이가 위 그림에서처럼 16도로 실제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해가 떠 있는 낮에 태양의 천구 상 위치를 표현하는 것은 예측이거나 또는 간의를 이용한 측정일 것이다. 이처럼 삼국사기 일식 기록과 대응하는 중국 사서의 기록은 천구상 좌표까지 기록하는 정확성으로 보이나 삼국사기에서는 일식이 있었다는 '일유식지'라는 표현만 있다.


3. 87년 10월 15일

(삼국사기) 기루 11년 秋八月 乙未晦 日有食之.

(후한서 장제기) 元和元年, 八月乙未晦, 日有蝕之.

(후한서 오행지) 元和元年, 八月乙未晦, 日有蝕之, 史官不見, 佗官以聞, 日在氐四度

식분 :  북경 0.92, 위례 0.87

 금환일식이었던 이 날에 몽골 및 북경지역은 달의 본그림자 지역에 들어가 최대 식분이 0.92까지 가려졌다. 후한서 오행지에서는 '사관이 보지 못하고 다른 관리로부터 들었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이때 사용한 타관(佗官)이라는 말이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 그냥 '다른 관리'라는 뜻인지, 외부 지역의 관리라는 뜻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이 날 한나라 수도인 뤄양에서는 사관이 직접 일식을 관측한 것은 실패한 것으로 보아 타 지역에서 일식 관측 보고를 들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날 일식은 한반도에서도 관측할 수 있었다. 위 그림에서 일몰 시점과 맞닿아 있는데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갈 때 일식이 진행된 모습은 아래와 같다.

 여기서 흰색 가로선이 지평선을 나타낸다. 당시 위례성의 위치와 차이가 없는 서울에서 일식이 충분히 관측할 있었음을 수 있다. 일식 시점의 태양의 경도는 저(氐) 수 별자리의 수거성인 천칭자리 알파별 주벤엘게누비와는 약 1.5도로 후한서 오행지 기록상의 4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4. 92년 7월 23일

(삼국사기) 기루 16년 夏六月 戊戌朔 日有食之.

(후한서 화제상제기) 永元四年, 六月 戊戌朔, 日有食之.

(후한서 오행지) 永元四年, 六月戊戌朔, 日有食之, 在七星二度.

식분 :  북경 0.47, 위례 0.45

 92년의 일식의 본그림자는 요서와는 멀리 떨어진 중국남부와 필리핀 지역을 지나갔다. 후한서 오행지의 기록이 특이한데 28수가 아닌 '칠성'으로부터 2도가량 떨어져 있다고 표현한다. 28수에서는 칠성이란 별자리가 없어 위치를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일식 시점의 북두칠성에서 큰곰자리 알파별 두브헤와의 경도 차이는 아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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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경도 차이는 북쪽을 바라보면서 왼쪽 방향이기 때문에 서쪽 방향으로 일반적인 거극 표현과는 반대의 위치이다. 후한서에는 157년 7월 24일 영수(永壽) 3년의 일식에도 똑같이 '칠성에서 2도' 떨어졌다는 표현을 한 번 더 쓰고 그 예로 위의 92년 영원 4년 7월 23의 일식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날짜로 보았을 때 거의 동일한 것을 보면 해당 위치에서의 좌표 표현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할 것 같다.


5. 165년 2월 28일

(삼국사기) 개로 38년(원문에서는 28년) 春正月 丙申晦 日有食之.

(후한서 환제기) 延熹八年, 春正月丙申晦, 日有食之.

(후한서 오행지) 延熹八年, 春正月丙申晦, 日有食之, 在營室十三度.

식분 :  북경 0.52, 위례 0.38

 이 일식은 지난 고구려 본기 일식기록 때 검토했던 6번째 기록의 일식과 동일한 일식이다. 이 날 일식은 요서 지역은 약 0.5, 한반도는 약 0.4의 식분으로 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6. 170년 5월 3일

(삼국사기) 초고 5년 春三月 丙寅晦 日有食之.

(후한서 영제기) 乾寧三年, 三月丙寅晦, 日有食之.

(후한서 오행지) 乾寧三年, 三月丙寅晦, 日有食之. 梁相以聞.

 이 날 일식은 관측이 불가능하였다. 관측이 가능한 곳은 연해주 북부, 사할린, 일본의 홋카이도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후한서는 역시 관측에 의해 적은 것이 아니라 양상(梁相)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梁相이 우리가 아는 양나라의 재상(國相) 정도라고 해석한다면 중국 남동부를 이야기하는데 이곳도 일식을 관측할 수 없기는 매 한 가지다. 그렇다면 이때 양나라는 연해주 북부라도 되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이 기록은 단순히 추보에 의해 예측된 일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식의 경로가 동아시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일식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위치를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는 했을 것이란 판단이 든다.

 이렇게 동아시아 전체가 일식 그림자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기록도 평균식분을 계산할 때 넣고 하는지 의문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가치 판단이 없는 수리적인 놀음에 불과하다.


7. 189년 5월 3일

(삼국사기) 초고 24년 夏四月 丙午朔 日有食之.

(후한서 영제기/오행지) 中平六年, 四月丙午朔, 日有食之.

식분 :  북경 0.84, 위례 0.78

 해당 일식은 본 그림자가 베이징 북부 및 요서 북부, 만주 지역을 지나간 일식이다. 본그림자가 요서 지역을 관통하는 일식으로 이 지역의 평균 식분을 크게 올리는 일식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높은 식분으로 관측이 가능했던 일식으로 당시 서울 지역에서도 0.8 가량의 높은 식분을 나타내었다.


8. 212년 8월 14일

(삼국사기) 초고 47년 夏六月 庚寅晦 日有食之.

(후한서 헌제기/오행지) 建安十七年, 六月庚寅晦, 日有食之.

식분 :  북경 0.67, 위례 0.61

 삼국지의 시대였던 212년에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일식이다. 이때가 유비가 입촉을 하던 시기인데 촉의 수도였던 청두가 이 날 개기일식의 본그림자가 지나갔던 지역이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 역사적 사건과 결부된 천문 현상 기록은 해당 사건과의 연관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날 북경과 서울 지역은 0.6대의 비슷한 식분으로 부분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9. 221년 8월 15일

(삼국사기) 구수 8년 夏六月 戊辰晦 日有食之.

(삼국지 위서/송서 오행지, 진서 천문지) 黃初二年, 六月戊辰晦, 日有蝕之.

(진서 율력지) 黃初二年, 六月戊辰晦, 日有蝕之, 加時未日蝕

식분 :  북경 0.31, 위례 0.43

 이 날 일식은 중국과 한반도 모두 관측이 가능하였는데 본그림자가 위 그림과 같이 북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 대륙보다 한반도 쪽의 식분이 더 크다. 그러나 진서에서는 관측한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加時未日蝕이라고 기재하였다. '미시(未時) 일 때 일식을 볼 수 있었다' 정도로 해석되는데 정말 그런지 확대해 보자.

 정사삼국지 위서(魏書)에 처음 기록되었으므로 당시 위나라의 수도였던 허창에서의 일식 데이터이다. 정확하게 오후 2시, 즉 미시에 일식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식분이 0.16에 불과해도 일식을 관측한 사실을 신빙성 있게 기재하였다. 이보다 식분이 높은 한반도 또는 최적 관측지라는 요서 지역(식분 0.4)에서 일식을 보았을 백제 본기에는 단순히 '일유식지'라고만 쓴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10. 223년 1월 19일

(삼국사기) 구수 9년 冬十一月 庚申晦 日有食之.

(삼국지 위서/송서 오행지, 진서 천문지) 文帝黃初三年, 十一月 庚申晦, 又日有蝕之.

식분 :  북경 0.89, 위례 0.83

 진서 천문지의 대응기록을 보면 단순히 '일유식지'가 아니라 '又日有食之'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은 정확히 다음과 같다.

 '三年正月丙寅朔,日有蝕之。十一月庚申晦,又日有蝕之'

 즉, 이 해 정월에 일식이 있었는데 음력 11월에 또 일식이 생겼다는 말이다. 그럼 이 해 정월 일식은 어땠을까.

 당시 위나라의 수도 허창 지역의 식분은 약 0.1에 불과하다. 한반도 지역도 마찬가지인데 일몰 시점의 미세한 일식이었으므로 관측 불가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진서에는 이를 놓치지 않고 일식이 있었다고 기재한 것이다.


11. 308년 2월 8일 (?)

(삼국기) 비류 5년 春正月 子朔 日有食之.

(진서 회제기/천문지) 永嘉二年, 春正月 子朔, 日有蝕之.


308년 정월 초하루에는 일식이 없었다. 그런데도 삼국사기와 진서 천문지에 동일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은 위서 시기에 병(丙)을 경(景)으로 개칭하여 사용하였다는 점인데 문제는 이 날이 병자일이 아니라 병오(丙午) 일이라는 것이다. 두 기록 모두 역일 간지가 틀린 것이다. 반면에 진서 권 5와, 송서 권 34에는 '丙午朔'으로 제대로 기재되어 있다. 즉, 진서에는 '병오'로 제대로 쓴 곳도 있고 '병자'로 잘못 쓴 부분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병자로 잘못 기재된 부분만이 존재한다.

 만약 삼국사기에서 '병자'가 아닌 '경자'로 기록했다면 이것은 100% 진서에 적힌 것을 그대로 적은 것이겠지만, '병자'로 고쳐 썼으므로 역일 간지만 틀리게 적은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겠다.


12. 335년 12월 31일

(삼국사기) 비류 32년 冬十月 乙未朔 日有食之.

(진서 성제기/천문지, 송서 오행지) 咸康元年, 十月乙未朔, 日有蝕之.

 이 날의 일식은 동아시아 지역을 전혀 지나지 않았다. 170년 일식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때 일식도 추보에 의한 기록이라 봐야 한다. 실측이 아닌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비류왕 때만 2건이 존재한다는 특수성은 당시 정세와 맞물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13. 368년 4월 3일

(삼국사기) 근초고 23년 春三月 丁巳朔 日有食之.

(진서 해서공기/송서 오행지) 太和三年, 三月丁巳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93, 위례 0.99

 금환일식의 그림자가 서울 지역 일대를 정통으로 지나간 일식이었다. 이번 일식이 정확히 개기일식은 아니고 금환일식이었기에 위례에서의 식분은 0.99였던 것인데 보통 이렇게 본그림자가 지나간 일식에는 개기일식이 있었다는 뜻으로 '일유식지' 뒤에 '기(旣 또는 既)'의 글자를 붙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삼국사기에 존재하는 67개의 일식은 '日有食之'라고 되어 있지 뒤에 '기' 자를 붙이는 경우가 없다. 368년의 일식이 위례성에서 개기일식에 근접한 금환일식으로 보였음에도 말이다.


14. 392년 6월 7일

(삼국사기) 진사 8년 夏五月 丁卯朔 日有食之.

(진서 무제기/천문지, 송서 오행지) 太元十七年, 五月丁卯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49, 위례 0.45

 이때의 일식도 본그림자는 중국 남부로 지나갔고 일식 식분대가 요서-한반도 경로와 평행하여 0.4대의 식분을 가졌다.


15. 400년 7월 8일

(삼국사기) 아신 9년 夏六月 庚辰朔 日有食之.

(진서 안제기/천문지, 송서 오행지, 위서 천상지, 북사 위본기) 天興三年, 六月庚辰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80 위례 0.71

 이 날 일식은 몽골과 요서, 만주 북부를 지나가는 일식이었고 요서 지역은 0.8, 한반도는 0.7의 높은 식분을 가지는 일식이었다. 최적 관측지 계산에서 백제의 최적 관측지라고 주장하는 요서 지역의 평균 식분을 많이 올리는 일식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가 관측 가능 지역이다.


16. 417년 2월 3일

(삼국사기) 전지 13년 春正月 甲戌朔 日有食之.

(진서 안제기/천문지, 송서 오행지) 義熙十三年, 春正月甲戌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38 위례 0.37

 이 날 일식의 대부분의 경로는 북태평양을 지나갔지만 해가 뜨는 시점에 중국 및 한반도에서 관측 가능한 일식이었다. 진서 천문지에는 이 일식을 언급하고 바로 뒤에 '이듬해 동진의 안제, 사마덕종이 사망하였다'라고 적었다.

 기전체의 역사서에서 지(志)의 첫 번째를 천문지로 두는 가장 큰 이유가 천문 현상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을 넘어 천변을 역사적 사건과 결부시키기 위함이다. 삼국사기와 진서 중 어느 사서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여 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 419년 12월 3일

(삼국사기) 전지 15년 冬十一月 丁亥朔 日有食之.

(북사 위본기) 泰常四年, 冬十一月 丁亥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11  위례 0.21

 해당 일식에 대응하는 사서는 이연수라는 사람이 쓴 편년체 사서인 북사(北史)이다. 위(魏) 본기인 만큼 탁발 북위의 세력권으로 보이는 지역이 낮은 식분의 일식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해당 시기가 남북조시대인 만큼 이 일식만 떼어놓고 보았을 때 남북조의 세력 범위를 알 수 있는 지표라고 볼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화북지역이나 요서, 한반도 모두 식분이 0.1이 안된다는 것이다. 본그림자가 지구에 닿지도 않고 지구의 북극 위로 지나갔기 때문에 북극에 가까운 지역을 제외한 동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0.2 이하의 낮은 식분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식 기록이 삼국사기나 북사 위본기에 모두 기재되어 있다.


18. 440년 5월 17일

(삼국사기) 비유 14년 夏四月 戊午朔 日有食之.

(송서 본기/오행지, 남사 송본기) 元嘉十七年, 夏四月戊午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47, 위례 0.28

 달의 본그림자가 바이칼호 근처를 지나가는 일식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송서나 남사에 기록되어 있는 일식인데, 이 당시 유송의 식분은 0.1이었음에도 기재되어 있다. 요서 지역은 0.47 정도가 량 된다.


19. 468년 11월 1일

(삼국사기) 개로 14년 冬十一月 癸酉朔 日有食之.

(송서 본기/오행지, 남사 송본기) 泰始四年, 冬十月癸酉朔, 日有蝕之.

(위서 천상지, 북사 위본기) 皇興二年, 十月癸卯朔, 日有食之.

식분 :  북경 0.27, 위례 0.24

 이번에는 송서, 북사, 남사에 모두 기재되어 있다. 이 날 달의 본그림자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지나갔는데, 일출 시점이지만 중국 전역과 한반도에서도 모두 보이는 일식이다. 특히, 화북, 요서 한반도 지역은 약 0.2의 식분이지만 기록이 되어 있다.


20.478년 4월 18일

(삼국사기) 삼근 2년 三月 己酉朔 日有食之.

(남사 송본기) 順帝昇明二年, 三月 己酉朔, 日有蝕之.

 이 번 일식은 사서에 기록된 일식이 무조건 관측 기록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삼국사기와 이에 대응하는 중국 사서 '남사' 둘 중에 하나는 어느 하나의 기록을 인용해 왔다는 두 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 해당 일식의 달그림자는 아시아는커녕 남태평양과 남아메리카를 지나가는 관측이 불가능한 일식이었다. 정신줄 놓고 백제가 남아메리카에 진출했다고 주장한다면, 유송도 남아메리카에 진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두 기록 모두 이날의 역일 간지를 기유일로 표기했는데 이 날은 무신(戊申)일로, 두 사서 모두 오기를 하였다. 보통 시험을 볼 때 적발되는 부정행위의 대표적인 사례가 틀린 답을 똑같이 적는 것인데, 누군가는 분명 커닝을 했다는 것이다.


21.494년 6월 19일

(삼국사기) 동성 16년 夏五月 甲戌朔 日有食之.

(위서 천상지, 북사 위본기)太和 十八年, 夏五月 甲戌朔, 日有蝕之.

(남제서/천문지, 남사 송본기) 隆昌元年, 五月甲戌合朔, 巳時日蝕三分之一, 午時光復還.

식분 :  북경 0.80, 웅진 0.99

 원문은 동성왕 17년이지만, 삭(朔)의 간지를 맞추는 것뿐 아니라 494년 전후로 아시아에서 볼 수 있던 일식이 해당 일식이기 때문에 동성왕 16년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번 일식은 한반도를 지나가는 일식이었다. 문제는 남사 제(齊) 본기에 실린 일식의 식분과 시각인데 사시(巳時), 즉 오전 10시에 3분의 1이 먹혔고 오시(午時), 즉 낮 12시에 빛이 복원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날 남제의 수도 난징에서는 0.98의 식분으로 7시 24분부터 9시 50분까지 진행되었다.

 난징의 바로 옆, 달의 본그림자가 지나간 곳에서 개기일식은 8시 30분 전후에 나타났다. 그러니까 정확히 진초~사시까지 있었던 것이다.


22. 516년 4월 18일

(국사기) 무령 16년 春三月 戊辰朔 日有食之.

(위서 천상지, 북사 위본기) 北魏孝明帝熙平元年, 三月戊辰朔, 日有蝕之.

(남사 양본기, 양서 본기) 梁武帝天監十五年, 春三月戊辰朔, 日有蝕之, .

식분 :  북경 0.82, 웅진 0.95

 이번 일식은 중국 남부(당시 양나라)와 한반도 남부를 관통하는 금환일식이었다. 그래서 남사나 양서 같은 중국 사서에만 '日有蝕之, 旣'라 하여 개기식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당시 백제의 수도 웅진도 본그림자 영역에 들어가나 개기식을 표현하지 않고 '日有食之'라 표현했다.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은 일관되게 '日有食之'라고만 쓰여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은 해당 일식 기록이 개기식인지, 부분일식인 지를 모르고 썼다는 것이 더 합당하다.


23. 547년 2월 6일

(삼국사기) 성왕 25년 春正月 己亥朔 日有食之.

(위서 천상지, 북사 위본기) 東魏孝靜帝武定五年, 正月 己亥朔, 日有蝕之, 從西南角起

(남사 양본기) 梁武帝太淸元年, 春正月 己亥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93, 사비 0.75

 이 대는 516년과 반대로 요서 지역에 일식의 본그림자가 지나갔는데 개기일식이 있었다는 표현이 없다.

개기일식이 최적관측지라고 하는 곳에서 발생하던지 안 하던지 일관된 표현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4. 559년 6월 21일

(삼국사기) 위덕 6년 夏五月 丙辰朔 日有食之.

(진서(陳書) 본기) 陳武帝永定三年, 五月 丙辰朔, 日有蝕之.    

(남사 진본기, 수서 천문지) 陳武帝永定三年, 五月丙辰朔, 日有食之.

 559년 전후에는 공교롭게도 동아시아를 지나가는 일식이 없었다. 역일 간지로 봤을 때도 이 해 6월 21일의 일식이 맞는 것 같은데 중국의 다양한 사서나 삼국사기 모두 관측이 불가한 일식을 기재한 것이다. 478년의 관측 불가 일식과 같은 사례라 볼 수 있다.


25. 572년 9월 23일

(삼국사기) 위덕 19년 秋九月 庚子朔 日有食之.

(주서(周書 제기, 북사 주본기) 北周武帝 建德 元年, 九月 庚子朔, 日有蝕之.    

(진서 본기, 남사 진본기) 陳宣帝太建四年, 九月庚子朔, 日有蝕之.

식분 :  북경 0.50, 사비 0.64

 해당 일식의 본그림자는 연해주 북부를 지나갔는데, 사비성이 본그림자에 더 가까워 식분이 북경보다 높게 나타난다.


26. 592년 9월 11일

(삼국사기) 위덕 39년 秋七月 壬申晦 日有食之.

(수서 제기, 북사 수본기) 隋文帝開皇十二年, 七月壬申晦, 日有蝕之.

 동아시아에서는 관측이 불가능한 일식이다.



 이상으로 백제 본기에 있는 26건의 일식 기록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26건 중 관측이 불가능한 일식은 5건에 달한다. 관측 가능한 일식 중 관측 지역이 중국 대륙만 가능하다던가, 한반도만 가능하다던가 하는 일식은 단 한 건도 없었고 모두 일식 관측이 가능하였다. 식분 또한 매우 낮은 식분에서도 일식이 기록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 최적 관측지라는 요서 지역과 한반도 지역의 식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백제 본기에 기재된 일식이, 최적관측지라는 요서 지역에서만 반드시 보고 기록한 것으로 볼 어떠한 근거도 없었다.

 평균 식분의 측면에서 요서 지역이 최적 관측지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달의 본그림자가 일관적으로 요서 지역을 지나가서가 아니라 어떤 때는 북쪽으로 지나가고. 어떤 때는 남쪽으로 지나갔지만 항상 중간은 유지했고, 그러다가 한두 번 요서 지역으로 본그림자가 지나가면 평균이 확 올라가는 것이다.

 478년의 일식의 오기는 치명적이다. 관측 불가의 일식인 뿐만 아니라 역일 간지의 오기 또한 중국의 사서와 삼국사기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는 필시 한쪽의 기록이 다른 쪽의 기록의 사본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은 해당 일식이 백제의 세력 범위인 한반도 남부나 최적 관측지라는 요서 지역에 달의 본그림자가 지나가든 말든 일관되게 '日有食之'라고만 기재되어 있다. 대응하는 중국 사서들이 때때로 시각도 적고, 천구상 위치도 적고, 보지 못하여 전해 들었다는 말을 적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렴, 김부식 정도 되는 현인이라면 일식의 발생 시각과 식분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부족한 사료에서 일식이 있었음만 참고하여 '日有食之'라고만 기재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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