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의 원리가 무시된 '최적 관측지 론'
불확정성의 원리란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관측할 수 없다는 원리이다. 여기서 이과적인 어려운 설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또 정확한 비유라고 볼 수도 없지만 일반적으로, 문과적으로 비유를 한다면 다음과 같다.
어떤 깜깜한 밀폐된 방에 조그만 헬륨 풍선이 한 개 날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이 풍선은 방이 깜깜하기 때문에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만약 이 풍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고 한다면 무작위적으로 손을 흔들어 본다던가 긴 막대기로 휘저어서 풍선이 닿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설령 닿아다 손 치더라도 헬륨 풍선은 너무 가볍기 때문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즉, 방 안에 헬륨 풍선의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방 안에 헬륨 풍선이 있을 확률은 100%이다. 그리고 방 밖에 있을 확률은 0%이다.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배틀그라운드의 에란겔 맵을 보자.
처음에 게임이 시작하기 전 비행기에서 플레이어가 낙하하기 전에는 맵의 어느 곳에 첫 번째 원이 생성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저 감으로 많이 생성될 것 같은 곳으로 낙하할 뿐이다. 하지만 위 맵의 어딘가에 첫 번째 원이 생길 것임은 확실하다. 그럼 자기장이 도달한 후 자기장의 다음 원이 생성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어디일까.
결론은 가능성이 높은 곳 따위는 없다. 주어진 영역 안에서 자기장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원 안의 어느 곳이든 같은 확률이다. 확실한 것은 맨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자기장이 도달하는 지점이 원 안에 있을 확률은 100%이고 원 밖에 있을 확률은 0%라는 것이다.
일식과 월식 데이터를 알려주는 eclipsewise.com 사이트에서 눈을 감고 아무 일식도나 하나 발췌하여 올려본다.
위의 일식도에서 등고선처럼 그려져 있는 선은 숫자는 달이 해를 얼마나 가리는지를 나타내는 식분(食分)을 나타내는 선이다. 식분이란 달이 태양을 최대로 가리는 시점에서 태양의 지름을 달이 가린 정도를 말한다. 가운데 파란색 영역은 달의 본그림자를 지나가기 때문에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 개기일식이 보이는 식분 1.0의 영역이고, 나머지 영역은 부분일식을 볼 수 있는 영역이다. 달의 그림자는 왼쪽 끝(서쪽)에서부터 시작해 오른쪽 끝(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동 경로가 궤적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그럼 위의 그림자 영역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나, 일식을 봤어"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이 위치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가운데 달의 본그림자가 지나간 파란색 영역일까.
결론은 가능성이 더 높은 지역 따위는 없다. "나, 개기일식을 봤어"도 아니고 그냥 "일식을 보았다"라고 한다면 위 일식도의 그림자가 지나간 영역 안에서 관측자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
캐나다의 로키 산맥에 있을 수도 있고, 적도의 파나마에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관측자가 관측을 했다는 전제 하에 일식이 발생한 영역 안에 있었을 확률은 100% 일뿐이다.
식분은 일식을 볼 확률과 같지 않다. 식분이 높다는 건 그저 일식이라는 이벤트가 더 깊고 뚜렷이 보일 뿐이고 개기일식이 있는 곳에 있었다면 코로나라는 대박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일 뿐 식분이 0.1인 지역이라고 '일식이 없는'것은 아니다.
식분이 낮은 지역은 관측이 힘들 것이라고 하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예컨대, 중종 34년, 1539년 일식이 있었는데 당시 일관이 일식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일식은 아침에 잠깐 볼 수 있는 일식이었고,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된 일식이 아침에 구름에 보이지 않다가, 끝날쯤 되어서 겨우 보여 태양의 한 귀퉁이가 살짝 이지러진 것을 보고 난리가 났었다.
태양을 물에 비춰서 보던, 숯을 이용해 빛을 가려서 보던 아무리 작은 식분의 영역이라도 일식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식분의 수치가 아니라 일식을 관측할 수 있는 확률이 100%와 0%인 곳의 경계선 즉, 일식 그림의 가장 바깥 경계선인 식분 0의 '관측 한계선'이 중요한 것이다.
삼국사기 일식 기록을 검토했던 박창범, 라대일 박사는 평균 식분도라는 개념, 즉 기록된 일식의 식분 값들의 평균을 내어 마치 기상도의 기압 등고선처럼 만든 후 이 영역이 일식을 '최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구간'이라고 설정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최적 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닌 중국 대륙으로 마치 이곳이 삼국이 활동한 주요 무대인 것 같은 뉘앙스의 결론을 주장하였다.
식분이 높은 곳 = 관측자가 있을 확률이 높은 곳이라는 전제를 깐 것이다. 일식 기록이 '실제로 관측한 기록'이라는 전제 하에 개개의 일식이 지나간 모든 영역에 관측자가 있을 확률이 100%인 데, 식분이 높은 곳에 관측자가 있을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전제는 참이 아니다.
박창범, 라대일 박사는 과학자답게 '가능성이 높다'라고만 언급했을 뿐이고 그저 숫자들을 더한 결과일 뿐 그 결과에 대해 특정 사관(史觀)을 지지하는 패러다임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것은 아마 의도했던 대로 확대 해석되어, 본그림자들이 중첩한 곳에 수도가 있었다는 대륙삼국설, 대륙 조선설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객관적 근거인 양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평균 식분도가 아닌 관측 한계선들의 교집합을 가지고 일식을 연구한 사례는 김동빈의 논문이 유일하다.
김동빈의 논문은 위 그림을 통해 실록 상의 18개의 일식의 관측 한계선의 경계선을 중첩하여 관측 가능한 영역의 교집합이 한반도 중남부에 위치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1596년 9월 22일의 개기일식의 본그림자 또한 중첩시켜 이 날 개기일식 기록은 호남 지역에서 관측했을 것이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역사적 맥락은 무시한 체 과학 환원주의적 오류, 그것도 잘못된 가정을 전제로 깔아놓고 분칠과 화장을 한다 해도 민낯을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삼국사기에 나타난 일식 기록의 개별성, 특수성은 무시하고 평균식분도라는 '가설'을 가지고 '검증'되었다 주장하며 회의론자들을 일축시킨다. 삼국사기에 있는 일식 기록들을 평균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