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12-3화 사고와 만남

3화. 자전거 사고와 만남

by 해어화
자전거 사고


눈을 뜨니 12시 40분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겨우 일어났다. 새벽까지 게임을 해서 그런지 아님 잠을 푹 자지 못해서인지 머리도 몸도 돌덩이로 내려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어제 게임을 너무 오래 했나? 머리가 띵하네."

다행히 아점을 먹고 나니 몸상태가 괜찮았다. 한결 가벼워진 몸상태로 한참을 유튜브를 보았더니 어느새 학원 갈 시간이 되었다.

"아, 학원 안 가고 싶다."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안 가면 엄마에게 혼나. 가야지!'

'거짓말하면 되지. 땡땡이쳐!'


머릿속에서 두 생각이 팽팽한 싸움을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띠링! 띠링~띠링!"

현수였다.

"대성아, 뭐해?"

"학원 갈 준비"

"그럼 안 되겠다."

"뭐가?"

"오늘 우정공원에서 피구 한데."

"정말? 누구누구?"

현수는 친구들 이름을 말해주었다.

"환상이네. 나도 갈게."

"학원은?"

"거짓말하면 되지. 너 팔면서."

"거짓말까지? 그냥 학원 가. 난 공범이 되고 싶지 않아!"

"이 자식이! 너 같으면 학원 가고 싶겠냐?"

"그건 그렇지만... 거짓말은..."

"내가 알아서 할게. 우정공원에서 만나."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피구 에이스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지만 운동에는 자신이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 김대성은 편먹기 1순위!


책상 위 빨간 헬멧이 눈에 들어왔다.

'내려가면서 버리자'

헬멧을 챙겨들고 자전거를 엘리베이터로 옮기는데 전화가 왔다. 왼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얼른 머리에 썼다.

머리 정수리 부분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앗. 헬멧에 핫팩이 들어있나?'

머리가 포근한 담요 속에 파묻힌 것처럼 아늑했다.

헬멧을 벗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휴대폰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얼른 전화를 받으며 자전거를 몸으로 받쳤다.

"현수야, 왜?"

"피구공 가져와."

"나 자전거 타고 갈 거야. 안돼!"

"그래? 네 공이 빵빵하고 좋은데."

"민기도 피구공 있잖아. 우정공원과 집도 가깝고. 민기 피구공 쓰자."

"맞네. 알았어. 얼른 와."

현수와의 전화를 끊고 자전거를 타고 우정공원으로 향했다. 저 너머로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다들 모였구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도로에서 보도 위로의 낮은 턱을 가뿐히 뛰어올라 자전거 페달을 더 빠르게 돌렸다.

그때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어~어~!"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틀었다.

자전거는 안전 표지석에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나의 몸은 튕겨 올랐다.

잠시 하늘이 나의 코앞에 와 있었고 그후 아래로 떨어졌다. 누군가가 나를 아래로 확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다행히 놀이터 바닥이 폼 재질이라 완충 역할을 해줬어요. 헬멧을 쓰고 있어서 머리를 다치지 않았고 몸의 골절도 보이지 않아요. 가벼운 찰과상 정도입니다."

"네. 그런데 왜 깨어나지 않죠? 의사선생님."

"그건 떨어질 때 충격으로 뇌진탕 증세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CT촬영 결과, 머리에 이상은 없어요. 뇌진탕의 경우 보통은 몇 시간 안에 깨어납니다.

간혹 12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났음에도 깨어나지 못하면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다시 검사를 해볼건데 지금은 큰 외상이나 내상이 없으니 우선 지켜보죠."


만남


주변이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디야?'

주변을 두리번 살피는데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여기요. 사람 있어요!"

불빛이 가까이 오자 눈이 부셨다. 팔로 얼굴을 가리며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보였다.

"외할머니?"

"그래. 내 똥강아지."

외할머니는 나를 안아주셨다.

"나 죽은 거야?"

"아니. 죽진 않았어."

외할머니 옆에 서 있던 아이가 쌀쌀하게 말했다.

아이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키는 나보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할머니, 얘 누구야?"

"응. 너의 감시자."

"감시자?"

내가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여자아이가 설명을 했다.

"난 얘가 아니라 너의 감시자야.

앞으로 12시간 동안 넌 12번의 꿈을 꿀 거야. 12번의 꿈에서 너의 한 살부터 최근까지의 삶이 나타날거고.

너의 과거 속에 마법의 열쇠 12개가 숨어있는데 그 의미를 얻어야 깨어날 수 있어."

"깨어날 수 있다니? 여기가 어딘데?"

외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으며 말하셨다.

"대성아, 여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곳이란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지금 넌 혼수상태야."

'혼. 수. 상. 태.'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냐, 이건 꿈이야"

나는 볼과 팔, 배와 허벅지를 마구마구 꼬집었다.

아팠다. 하지만 그 자리 그대로였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어.

네가 썼던 헬멧 속에 명함을 넣어둔 게 너의 생명을 지킨 한 수였어.

누군가의 간절함이 모여 마법을 만든 거지."

감시자라는 여자아이는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제 첫 번째 문이 열리면 첫 꿈 속으로 들어갈 거야. 이 문은 저절로 열려. 네 외할머니께서 첫 번째 열쇠를 가지고 계시거든.

첫 번째 열쇠의 의미를 찾아내면 두 번째 열쇠가 나타나고 그 열쇠로 두번째 문을 열 수 있어.

두 번째 열쇠부터는 네가 직접 얻어야 해.

12시간이 주어질 거구. 규칙은 간단해.

그 시간 안에 12개의 꿈방에서 12개의 열쇠를 얻으면 돼.

열쇠를 얻을 때마다 너의 정수리 쪽 12개의 상처가 하나씩 닫힐 거야.

마지막 상처가 닫히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너는 너의 세상에서 눈을 뜨는 거지."

"열쇠는 어떻게 생겼는데?"

감시자에게 묻자 외할머니가 열쇠를 보여주셨다.

어디서 많이 본 열쇠였다.

"어, 이 열쇠, 어디서 봤는데?"

"그래. 그 명함에서 봤을 거야.

네 머리 정수리 부분을 만져봐."

"이게 뭐지?"

정수리 쪽 피부에 "12"모양의 작은 구멍들이 만져졌다. 마치 송곳으로 콕콕 찍어놓은 것 같았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피는 나지 않는지 손이 깨끗했다.

"누군가가 너에게 명함을 주었을 거야. 명함 속 12열쇠가 네 머리를 보호해 준거야. 넌 운이 좋은 아이야."

"맞아. 어떤 아저씨가 주었어. 그리고 헬멧 속에 명함을 넣어 두었었고. 또 헬멧을 썼을 때 포근하고 따뜻했고. 어?! 설마, 그때?"

나는 사고가 나기 전의 상황을 하나씩 떠올렸고 여자 아이는 그런 나를 지켜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네가 헬멧을 쓰고 따뜻한 기운을 느꼈을때부터 마법은 작동하기 시작했어.

우리 아빠가 널 보고 지나칠 사람이 아니지."

"뭐? 그 아저씨가 네 아빠야?"

"자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열쇠를 얻으면서 알게 될 테니까. 이제 가자."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더니 몸이 붕~떠올랐다.

"어, 어. 외할머니!"

"괜찮아. 모래시계가 뒤집어지는 거야."

외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우주인처럼 허공에 떠 있으면서 거대한 모래시계가 뒤집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제 시작되었구나. 우리 대성이는 잘할 거야. 대성아, 할머니랑 화투로 놀이한 거 기억나?"

"응. 그런데 화투는 왜?"


어릴 때 나를 보살펴 주신 건 외할머니셨다.

우리 집은 빵집을 했었는데 어린 나까지 보살필 수 없었다. 외할머니는 국수가게를 잠시 쉬며 나를 챙겨주셨고 유치원을 다닐 때는 등원과 하원을 시켜주시고 낮에는 국수가게를 하셨다. 그리고 내가 1학년 때는 우리집에서 같이 사셨다.

그때 그림카드처럼 화투를 가지고 놀았었다. 알록달록 색도 화려했고 새와 꽃 등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나는 화투를 좋아했다. 또 크기가 크지 않고 빳빳한 재질이어서 내가 갖고 놀기에 딱인 그림카드였다.

외할머니는 1월부터 12월의 그림을 순서대로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나는 열두 달을 맞히며 바닥에 깔고 놀았었다.


"1월부터 12월까지 그림을 잘 따라가.

열쇠의 의미는 이미 네가 다 알고 있어.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야."

"할머니, 나 무서워요. 같이 가요."

"그건 안돼. 할머니는 여기서 너를 응원할게.

얼굴을 본 것만 해도 꿈만 같구나. 내 똥강아지"

"할머니..."

눈물이 흐르자 외할머니는 눈물을 닦아주시며 내 손에 열쇠를 쥐어주셨다.

"대성아, 이제 가렴. 할미가 너 많이 사랑해."

"할머니, 저도 사랑해요."

"내 똥강아지! 엄마에게도 할미 잘 있다고 전해주고. 어여 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면서 어지러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워터슬라이드를 타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캄캄한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 같아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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