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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어화 Oct 21. 2021

집콕 소년-9화. 즐거운 추억

핑크뮬리 미로를 빠져나오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

알림문자가 왔다.

[마지막 방입니다.

나가는 문을 찾으세요.]


나 혼자였고 멀지 않은 곳에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무는 온통 주황빛이었다.

걸어가보니 먹음직스런 귤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였다.


#제주도 가족여행#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제주도에 가서 귤 따기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가본 제주도는 나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바다 색깔도 예쁘고 곳곳의 관광지도 너무나 멋졌다. 한라산 등반은 못했지만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하고 여러 박물관이나 테마파크가 많아서 2박 3일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귤 농장은 둘째 날 오전에 갔었다. 햇살이 뜨겁지 않은 시간이어서 덥지 않게 귤을 딸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무를 본 나는 신기해서 많은 귤나무들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힘찬아, 잘 익은 귤만 따."

엄마는 주황색 귤을 따서 보여주셨고 나는 비슷한 귤을 따서는 이런 거요? 라며 말하며 보여드렸다.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날 각자 한 바구니 가득 귤을 땄고 가족들의 귤을 모으니 한 상자에 가득 찼다.

귤 체험을 하며 귤을 까서 엄마와 아빠의 입에 넣어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 아들이 준 귤이 최고로 맛있다며 기뻐하셨다. 

그날 귤이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제자리에서 2~3개씩 까서 눈 깜박할 사이에 다 먹어치웠다. 정말 새콤달콤 맛있는 귤이었다.


귤나무를 보자 가족들과 귤 따기 체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귤 향기가 그때처럼 싱그럽고 달콤했다.

주황색 귤을 하나 땄다. 귤껍질을 벗기자 귤즙이 퍼져 나왔다.

그 순간, 주변이 모두 주황빛으로 바뀌었.



나는 잠시 귤나무 아래에 앉았다. 나가는 문을 찾아야 하는데 그냥 앉아있고 싶었다.

마지막인 주황색의 방을 나가기 전에 향긋한 귤향 기를 좀 더 맡아보고 싶었고 함께 했던 아저씨와 누나들, 형, 찬우 동생도 더 오래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 나와 같은 알림 문자를 받았겠지? 여기서 나가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와 모두 보고 싶다는 생각이 귤향기처럼 진해졌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나 귤을 땄다. 바구니가 없어서 티셔츠에 귤을 담았다.  티셔츠는 점점 무거워져서 나는 캥거루처럼 귤 주머니를 배에 차고 있었다. 귤을 내려다보니 가족들이 생각났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제 그만 따자. 이 정도면 충분해'

나는 티셔츠에 담긴 귤이 떨어지지 않게 한 팔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티셔츠를 꽉 쥐었다.

그리고 귤나무를 바라보았다. 귤나무 가지 사이로 조그만 문고리가 보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나는 귤나무의 가지 사이로 손을 뻗었다. 가지 사이를 헤치며 서너 걸음 들어가니 문고리가 달린 대문이 나타났다.

나는 손을 쓸 수 없어서 몸으로 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티셔츠를 받치고 있던 왼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왼쪽 어깨를 문에 대고 문고리를 힘차게 밀며 문을 어깨로 밀었다.

문이 열리면서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티셔츠에 있던 몇 개의 귤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나도 넘어질 뻔했다.

눈 앞은 너무나 환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귤향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가 향긋한 귤 향기만 가득했다.

그리고 알림이 다시 울렸다.


"~"

[여섯 개의 큐브 방을 모두 통과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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