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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어화 Oct 21. 2021

집콕 소년-8화. 미로 정원

이번에는 통로를 지나지 않고 바로 붉은 방에 도착했다. 

짜릿한 워터 슬라이드를 지금 막타고 내려온 기분이었다.

붉은 방은 가을 낙엽과 가을 들꽃들로 가득했고 노을지는 석양이 펼쳐진 멋진 곳이었다.

우리는 이전 큐브방에서 헤어지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힘찬이랑 지후, 어서 와. 너희가 제일 늦게 출발해서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었어."

민지누나가 웃으며 우릴 챙겨주었다.

"처음엔 겁이 나고 무서웠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눈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더라구요. 트릭 아트처럼요. 용기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나의 말에 찬우가 끼어들었다.

"힘찬이 형, 말이 맞아. 나는 정말 정말 무서웠거든. 그런데 배를 타고 내려가보니 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붕~떠 있어서 구름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았어. 솔직히 너무 재밌었어."

"찬우 너~한번 더 경험하고 싶지?"

민지누나의 말에 찬우는 큰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한번 더 경험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터 슬라이드를 처음 탈 땐 겁도 나고 긴장되지만 한번 타고 나면 다시 튜브를 들쳐매고 높은 계단을 오르게 되는 것처럼.

모두가 이런 독특하고 짜릿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

[이 방에서의 활동은 여러분의 마지막 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입구로 들어가십시오.]


알림문자를 받고 고개를 들어보니 핑크뮬리가 눈앞에 가득했다. 석양의 노을과 핑크뮬리가 신비하다못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핑크뮬리 사이로 여섯 개의 입구가 생기며 미로길이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미로정원 같았다.


"핑크뮬리가 너무 환상적이네. 핑크색도 환상적이고 부드러움도 환상적이고.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인생사진이 나오겠는걸."

아름이 누나는 붉은 색을 싫어하는줄 알았는데 핑크뮬리 미로정원이 나타나자 제일 먼저 핑크뮬리를 만지며 연신 감탄을 했다.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처럼 귀여웠다.

"나도 동감이야. 너무 아름다워."

민지누나도 감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자는 핑크지!"

찬우가 씩씩하게 외치자 훈이 아저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꼭 솜사탕같네. 신기한 식물이야."

"핑크뮬리는 본래는 미국의 서부나 중부의 따뜻한 지역의 평야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에요, 전세계에서 조경용으로 키우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지후형은 핑크뮬리에 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한참을 핑크뮬리를 감상하며 서 있었다.


"이제 핑크 미로를 빠져나가볼까? 난 여기로 간다."

훈이 아저씨가 먼저 맨 왼쪽 입구를 선택했다.

"난 가운데!" 찬우는 가운데 입구를 선택했다.

찬우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아름이, 민지누나가 왼쪽으로는 나와 힘찬이형이 각각의 입구를 선택했다.

그리고 핑크뮬리들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나는 중간 중간 핑크뮬리가 막고 있는 막다른 길에서 다시 돌아나와야 했지만 손바닥으로 핑크뮬리의 감촉을 느끼며 걸으니 급할 것도 없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한참을 미로를 걸어다니다 팻말을 발견했다.

<과거>, <현재>, <미래>. 

세 팻말의 방향으로 세 갈래의 길이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과거가 향하는 길로 들어갔다. 왠지 나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았고 나의 과거라면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핑크뮬리를 실컷 바라보며 걸어가자 다음 팻말이 나타났다.


<나>,<가족>,<친구>의 갈림길이 나왔다.

'아, 어느 걸 선택해야하지? 나를 선택하고 싶지만 가족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나는 나와 가족 중 고민하다 가족이 가리키는 길을 선택했다.

'엄마랑 아빠는 내가 없어진 걸 아실까? 아냐. 내가 내 방에만 있어서 모를 수도 있을거야.'

가족들을 생각하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오면서 방안에만 있었던 내가 후회되었다.

한참을 미로길을 걷다보니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둥글게 제 자리를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서남북이 어느 쪽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나갈 방향은 팻말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집>,<놀이터>,<제주도>

이번 팻말은 장소와 관련이 있었다.

나는 제주도 팻말이 바라보고 있는 길로 걸어들어갔다.

"그래.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었는데."

어릴 때 갔던 제주도가 생각났다.

"제주도 진짜 좋았는데. 다시 가보고 싶다."

나는 혼잣말을 다시 미로를 걷기 시작했다.

문득 누나들과 형, 훈이 아저씨와 찬우는 어떤 길로 미로를 걸어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귤>,<녹차>,<블루베리>란 팻말이 보였다.

이번엔 고민도 하지 않고 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보니 여기와서는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이 곳에서 몇일은 지난 것 같은데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거나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긴 시간이 멈춘 곳인가?" 나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답을 하며 핑크길을 걸어갔다.

한시간쯤 걸었으려나? 제법 미로 속을 걸어다녔다고 생각될 때쯤 핑크길 사이로 하나의 팻말이 보였다. 나는 궁금해서 뛰어가보았다.


<출구>라고 적힌 팻말이었다.

"야호!"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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