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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어화 Oct 16. 2021

집콕 소년-7화. 용기있는 선택

통로를 통해 다음 방으로 가까워지니 철썩철썩하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어, 파도소리가 나요."

부산 출신인 나는 방학마다 바다에 가 놀았던지라 금방 파도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네. 다음 방은 어떤 곳일까?"

나랑 걷고 있던 지후형도 파도 소리임을 확인하자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착한 방은 하얀 모래사장과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파란 바다를 보는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모두들 한참을 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

[각자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세요. 

선택의 순간, 자신을 던지세요.]


자신을 던지라는 알림 문자를 받고 우리 모두는 적잖이 당황했다.

"각자의 배를 타고 나가어떤 일이 벌어질까?"

훈이 아저씨의 말에 찬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혼자 배 타는 거 무서워요."

"찬우야. 누나도 무서워. 배 멀미도 하고."

아름이 누나가 찬우의 손을 잡아주었다.

"무서워도 각자의 배를 타고 야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되지 않을까요?"

민지 누나의 에 모두들 고민에 빠졌다.

"이곳에 계쇠 있을 순 없으니 배를 타고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지후형의 말에 모두 공감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두려웠다.

"이제까지의 방들을 생각해보면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아요. 각자 용기를 내어 배를 타보죠."

내가 결심한 바를 말하자 모두 동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니까 더 시간 끌지는 말자고. 찬우가 무서워하니까 내가 찬우 앞에, 지후랑 힘찬이가 양 옆을 지켜줘. 그리고 뒤에 민지랑 아름 양이 따라와요."

늘 점잖게 때로는 내일이 아닌 듯 무심하던 훈이 아저씨가 이번엔 우리들을 이끌어주었다.

모두들 각자의 이름이 적힌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천히 노를 저었다. 배는 파도를 너머 바다로 나아갔다. 신기하게도 파도가 역으로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기 시작했고 사실상 노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자동으로 어디론가로 떠밀려 나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나아가자 망망대해 한가운데였다.

주변은 온통 파랗고 푸른색이었다.

우리들이 탄 배는 둥근 원형으로 배치되었다.

사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긴장되고 겁이 났다.


"~"

[이제 자신을 시험할 시간입니다.

 준비된 사람부터 용기를 내어 자신을 던지세요.]


'어떤 결정을 하라는 거지?'

나는 알림 문자를 확인하고 지후형을 쳐다보았다.

지후형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주변의 바다가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앞쪽 바다가 갈라지더니 바닷물이 폭포처럼 아래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배 앞에 수직에 가까운 워터슬라이드가 만들어져 있었다.

워터파크에서 타 본 경험은 있지만 이건 놀이 수준이 아니었다. 씽크홀처럼 뚫린 까마득한 아래쪽에는 둥글고 붉은 무언가가 빛을 내고 있었다. 아주 붉은 태양이 마치 바닷속에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눈앞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거센 파도 폭포를 보며 처음 흰 벽면을 보았을 때와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 "악~"

두 누나들은 소리를 질렀고 찬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모두 정신 차려. 괜찮을 거야."

훈이 아저씨의 고함소리에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먼저 내려가 볼게. 겁먹지 마. 여기까지 잘 왔잖아. 난 지레 겁에 질려 자신감을 잃고 살았어. 이젠 그러지 않을 거야. 나 자신을 믿어보려고.

그동안 고마웠어. 너희들 덕분에 많은 걸 깨닫게 되었어."

훈이 아저씨는 결심한 듯 "자, 간다~!"라는 말과 함께 노를 저었고 배는 파도 슬라이드를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 모두는 숨죽이며 깊고 깊은 파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훈이 아저씨내려다보았다.

잠시 뒤 훈이 아저씨의 배가 파도 소용돌이를 타고 위로 솟구쳤다.

"괜찮아. 자신을 믿고 겁먹지 말고 내려가!"

훈이 아저씨의 말이 끝나자 아저씨의 배는 로켓처럼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그래. 이건 마지막 시험이야. 이번엔 내가 내려갈게.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환자들 옆이니까. 내가 의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늘 의심하고 힘들 때마다 왜 의대를 왔을까 고민했었는데 난 생각보다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모두 잘 지내.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해."

아름이 누나가 용기를 내어 노를 저었다.

아름이 누나의 "악~"하는 비명이 메아리치더니 "와~"하는 소리와 함께 위로 올라왔다.

"얘들아, 미끄럼틀 타는 거랑 똑같아. 환상적이야."

아름이 누나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아름이 누나의 배도 로켓처럼 날아갔다.


"찬우야, 워터 슬라이드라고 생각해. 누나랑 같이 내려가자."

민지 누나는 스튜어디스답게 차분한 목소리로 찬우를 안심시키며 함께 내려가자고 했고

찬우는 민지 누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도 고마워. 여기 와서 내가 나의 직업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어. 돌아가면 더 이상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프러포즈할 거야. 이 파도 슬라이드처럼 짜릿해서 평생 잊지 못할 프러포즈를! "

민지 누나의 멋진 고백에 나는 어른이 되면 민지 누나처럼 멋진 여자를 사귀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빨리 엄마에게 갈래요. 앞으론 엄마 말씀도 잘 듣고 못된 말도 안 할 거예요."

찬우는 엄마에게 했던 못된 말을 후회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찬우야, 가자!"

민지 누나의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두 사람은 동시에 노를 저었다.

두 사람의 배는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갔고

잠시 뒤 로켓처럼 위로 치솟았다.

"형아, 재밌어.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갈게" 찬우의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그래. 잘 가"

지후형과 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힘찬아, 우리도 이제 가자. 난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분명해졌어. 사실 목표나 자신감은 분명했지만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으로 온 것이 맞는 결정이었는지 늘 의문이었는데 확실해졌어. 내 선택이 맞아. 난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거야."

"형, 사실 나는 외톨이야. 왕따를 당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따를 했어. 게임과 유튜브, 웹툰에 빠지면서 친구를 멀리하게 되었고 가족들과 말도 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방에 갇혀 지냈어. 여기 와서 소중했던 기억들도 생각났고 내가 집콕 소년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 나이만 중학생이지 찬우와 같은 소년에 머물러 있었어. 이제 집콕 소년에서 벗어날 거야. 형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어. 고마워."

신기하게 말주변이 없는 나의 입에서 멋진 말들이 줄줄 나왔다. 지후형은 엄지 척을 들어 보여주며

"힘찬아, 우리도 가자!"라며 숫자를 불렀다.

"하나, 둘, 셋!"

나는 나를 믿으며 노를 힘차게 저었다.

워터슬라이드 타듯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파도 폭포 아래로 가족들,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기억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보기에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공중에 아니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무중력의 상태였다.

쿵쾅거리던 심장의 두근거림이 편안해지며 구름 위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로켓처럼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아, 돌아온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또 다른 큐브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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