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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한 자유인 Nov 18. 2023

끝내주는 하루

오늘 그런 하루를 보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던 스무 살 나에게


나는 오늘 정말 끝내주게 행복한 하루를 보냈어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에서 산 내가 좋아하는 사워도우 빵을 구워서

어제 만들어둔 끝내주게 맛있는 샥슈카랑 먹었어. 계란이랑 치즈 듬뿍 올려서

잠시 유튜브 보면서 쉬다가 내가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갔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인데 그 배우가 거침없이 자신의 연기를 뽐내는 모습을 보니 그냥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어. 영화 자체도 재밌었고.


끝나고는 날이 쌀쌀해져서 후드티를 하나 장만했어. 학생일 때는 정말 필요한 옷도 살까 말까 가격표를 세 번 네 번 쳐다보고 결국에는 돌아서서 집에 갔을 텐데 이제는 맘에 드는 후드티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 옆에 있는 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샀는데 알고 보니 할인 중인 책이었던 것 있지? 점원분도 모르다가 바코드를 찍고서 알았어. 럭키! 어렸을 때 읽었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의 후속 편 같은 느낌의 책이야. out of the maze라는 책인데 재밌어서 자기 전에 더 읽으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이 있었어. 정말 맛있고 탐스럽게 익은 망고가 있더라고! 그래서 망고를 하나 사서 저녁 먹고 후식으로 먹었는데 정말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망고 중에 가장 맛있는 망고였어. 마치 통조림에서 꺼낸 듯한 달달함인데 인공적인 느낌 없는 천연의 맛이랄까!


잠깐 운동 비슷한 걸 하고 샤워하고 침대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어. 정말 끝내주게 멋진 하루지 않니?


그리고 오늘 내가 나 스스로에게 발견한 점이 있어.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웃고 있었어. 내가 이만큼 커다란 행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를 새삼 깨달았어.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웃는 사람이었어. 겉으로 항상 웃으려고 미소를 띠려고 노력했지. 남들도 나한테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줬었어. 근데 그때 내 속은 웃고 있지 않았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데 그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미소 짓고 웃고 다녔던 것 같아. 근데 있지 요즘은 진심에서 나오는 웃음이 툭툭 튀어나와. 정말로 재미있다! 행복하다! 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새삼 깨닫고 있어. 사실 조금 무섭기도 해 지금 정말 행복한데 이 감정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걸까?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지금은 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감사하려고. 설령 언젠가 이 감정이 지속되지 않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건 그때의 내가 걱정하겠지. 지금은 이 행복함을 온전히 누려야지.


내가 너에게 오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건 그 당시의 나는 내가 행복함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행복이란 원래 신기루 같은 걸까? 생각했기 때문이야. 행복을 느낄수록 그와 비례해서 불행함을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까지 커질까 봐 나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하려고 했고, 또 아무리 좋고 재밌는 상황이 있어도 행복하다 혹은 즐겁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아. 심리적으로 상황적으로도 나를 억제하는 것들이 많기도 했어. 그래서 지금의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기다려보라는 거야. 상황은 변할 거고 너의 마음도 변할 거야. 지금 힘들다고 너무 낙담하고 포기하려 하지 말아 줘. 끝이 없는 것 같은 길이지만 걷다 보면 알고 보니 내가 햇빛이 들지 않는 큰 터널 안에 있었고 그 터널의 끝에 거의 다다르는 날이 올 거야.


너도 얼른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보며 함박웃음 짓고 시장에서 산 망고에 행복함을 느끼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도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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