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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한 자유인 Nov 14. 2023

대학은 어디로 가지?

소울 메이트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대학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가장 큰 요인이 네덜란드로 대학을 갔기 때문이야


스무 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한참 방황하고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오고 그냥 누가 나한테 와서 이렇게 하세요!라고 답을 제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그런데 정말로 어느 날 운명처럼 그런 대학 프로그램을 발견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지. 그런데 나는 이 전공을 발견한 순간 너무 설레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어.

여기다 이건 날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내가 갈 곳은 여기구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런 확신이 들었어. 그리고 있지 이건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가 한 행동인데도 대담하다고 생각되는데 대학을 여기 이 전공 딱 한 군데만 지원해. 그리고 합격 발표가 나기 전부터 네덜란드어 공부를 시작했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 그리고 더 신기한 거는 평생을 이과라고 생각했던 내가, 문이과 결정할 때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과를 선택했던 내가 사회과학대에 진학을 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스무 살 여름 너는 너를 20년 동안이나 괴롭히던 비염과 드디어 작별을 하기 위해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한다. 코 가운데에 있는 물렁한 뼈가 휘어 있어서 그동안 비염이 심했던 거야 그래서 그걸 바로잡는 수술을 해. 그런데 있지 그 어떤 블로그 후기를 읽고 예상을 했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잠도 못 자고 수술 후 3일 내내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어. (그때 사진이 아직도 있는데 수술 후 팅팅 부은 얼굴에 주먹만 한 코까지 아주 하마가 따로 없었지).

이때까지만 해도 너의 목표는 의대였어. 그런데 이 수술을 기점으로 생각이 180도 바뀌어. 그 눈물 흘리던 밤 나는 갑자기 깨닫게 돼. 내 목표는 의대였지 의사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구나. 의사가 되면 나처럼 아프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을 앞으로 평생 만나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은 단 한 번도 없이 그저 공부 좀 하는 사람들은 의대를 가니까, 어른들이 의대를 가라고 하니까 그래서 목표를 의대로 잡았구나 는 걸 깨달아.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구나를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어.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아니라 원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난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 걸까? 그 새벽 조용한 대학 병원 휴게실에서 한참 생각에 빠졌어.


그때 갑자기 그 언젠가 누군가 경영학에 관심이 있다면 네덜란드가 좋다고 한 얘기가 생각이 나더라고? 물론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한 귀로조차 듣지 않았어. 왜냐 나는 의대가 가고 싶었고 의대에 가지 못하더라도 생물학 계열의 공부를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암스테르담이 좋다고 한 이야기가 그때 갑자기 탁 떠올랐어.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내 전공을 찾았어. 정치 외교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문과 가면 취업 못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꾹 꾹 눌러오다가 여기서 유전이 터지듯 와르르 쏟아져 나온 걸까? 정말 마음에 드는 영어로 수업을 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어.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 점점 더 확신이 들더라고. 여기구나. 찾았다 내가 가야 할 곳.


그다음 날 면회를 온 엄마한테 다짜고짜 선언을 했지. 엄마, 나 암스테르담에 가야겠어.

그래서 갔어. 그렇게 해서 유럽 여행도 한 번 안 해본 내가 네덜란드에서 대학을 다니게 된단다. 그 중간 과정은 어디 있냐고? 글쎄 그 결심을 한 뒤로는 그냥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어. 총 3차에 걸친 선발 과정이 있었는데 합격했어. 그리고 정말 신기한 건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고 정말로 붙었어. 이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신기해. 대학을 한 군데만 지원한다고 하니까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더라고, 그것도 심지어 왜 대뜸 네덜란드로 가는데?라는 질문은 수도 없이 들었고, 사실 졸업하고 난 지금도 계속 들어. 그럴 때마다 이 전공이 왜 마음에 들었고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지만 사실 그냥 여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 이건 그냥 날 위해 정해진 길이다. 그런 느낌.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결정을 너무 직감만 믿고 한 것 아니냐고? 결과적으로 잘 맞았고 잘 풀렸으니까 그렇게 태평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면... 맞아. 그래도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정말 가끔씩 이렇게 가슴이 뛰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는 그 직감을 믿어봐. 이거구나!라는 느낌이 들 때는 정말 살짝 이성을 옆으로 미루고 직감을 조금 믿어줘 봐. 그렇다고 느낌만 가지고 모든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은 절대절대 아니야. 이성적인 판단도 곁들인 선택이었지만 가끔 이렇게 내 심장이 뛰는 일이 있을 때는 그 박동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앞으로 살면서 이때처럼 미친 듯이 이거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런 내 직감도 믿을만한 지표 중 하나로 생각할 것 같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모든 게 꽃길이었던 것은 아니야. 정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니 이만큼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잘 한 선택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지만 이때의 경험은 불확실성과 미지의 세계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를 줘.


그러니 지금 많이 힘들고 헷갈리겠지만 조금 더 용기를 가져도 된단다. 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방법들이 펼쳐질 때가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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