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깜깜한 밤에 집에 왔다. 대략 아침 7시 반에 집을 나서서 저녁 7시 반에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가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을 했다. 매일 규칙적으로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해가 지면 밖에 나가있지 않는 나에게는 참 새로운 하루였다. 그리 오래 일을 해본 것도 처음이겠거니와 밥을 굶은 것도 처음이었다.
저녁 6시,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을 했다. 하지만 집까지는 대략 1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퇴근시간의 서울 지하철'이라는 악명 높은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 없이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지면 누가 날 안전히 병원에 데려가주겠어' 생각하며 정신을 붙잡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하철 안은 마치 새로 산 이쑤시개 통처럼 빈틈없이 사람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기에 힘을 주지 않아도 서 있을 수 있었다.
지도 앱은 1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대략 1시간 30분이 걸려서 집에 들어왔다. '아, 이런 것이 많은 이들이 말하는 힘든 직장 생활이라는 것일까' 싶었다. 물론 나는 직장에서 일을 한 것은 아니고, 단 하루의 체험(?)이었지만. 이 날 출근길과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보았던 수많은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것이 일상일 그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내가 나약하게만 느껴졌다. 꽤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거의 13시간을 굶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다. 사실, 오후 1시쯤이 되었을 때 나의 배는 "주인아, 오늘은 왜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는 거야!" 하며 아주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1시간쯤 떠들더니 힘이 없어졌는지 그 소리는 잠잠해졌고 배는 다소 우울함에 잠긴 듯했다. 여하튼, 집에 들어온 후, 지금 이대로 아무것도 안 먹고 침대에 누우면 새벽에는 그 외침이 더 시끄러운 울부짖음이 될 것 같아서 밥을 먹어야겠다 싶었다.
다행히도 그 전날 끓여놓은 국이 있었다.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넣고 우린 채수에 달달한 약과 다름이 없는 가을 무와 두부를 한가득 넣고, 마지막에 들깨 가루까지 넣어 구수함이 일품인 무들깨국이었다. 고생한 나를 위해 한 그릇 가득 퍼서 전자레인지에서 데웠다. 제법 허겁지겁 한 입을 떴다. 제법 쌀쌀한 바람을 맞고 와서인지 차가워진 나의 몸이 제 온도를 찾기 시작했다. 또, 그보다 더 얼어있던 나의 마음도 단숨에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녹은 얼음은 물이 되어 눈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눈물은 오늘 내 마음으로 들어온 큰 서글픔, 현실을 맞닥뜨리고 얻은 큰 막막함과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지금 이렇게 따뜻한 나의 집에서 내가 만든 따스한 국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감사함, 그리고 그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감사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