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당당함_남산 한옥마을에서
남산한옥마을에는 다른 곳에서 옮겨온 한옥이 다섯 채가 있다. 1989년 서울시가 남산골 8만여 제곱미터를 사들였고, 철거 운명에 놓인 한옥 다섯 채를 이전하여 1998년 만들어졌다.
1. 도편수(경복궁 건설 총책임자) 이승업 고택. 1860년대에 지어지고 삼각동에서 옮겨왔다.
2. 오위장(오늘날의 사단장 쯤) 김춘영 고택. 1890년대에 지어지고 삼청동에서 옮겨왔다.
3. 부마도위 박영효(철종의 후궁인 숙의 범씨의 딸인 영해옹주의 남편) 고택. 1890년대에 지어지고 관훈동에서 옮겨왔다.
4. 해풍부원군(순종의 장인) 윤택영 고택, 1900년대에 지어지고 제기동에서 옮겨왔다.
5. 순정효황후 윤씨(순종의 부인) 고택. 1870년대에 지어지고. 옥인동에서 옮겨왔다.
6. 전통공예관
다섯 채가 각각 특징이 달라서 집에 대한 공부는 주로 여기에서 한다. 저학년은 집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하고 고학년은 조선 시대의 생활사를 아우른다.
해풍부원군 윤택영 고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집에는 없고 이 집에만 있는 건물을 찾아보자.”
흩어져 찾던 아이들이 답을 가져왔다.
“여기에만 사당이 있어요.”
사당을 찾은 김에 그 앞 계단에 앉아서 사당이 여기 왜 있으며 왜 상이 4개가 차려져 있는지,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찬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화장실에 가야 해요.”
첫 번째 오위장 김춘영 고택을 거쳐 두 번째 부마도위 박영효 고택을 지나 세 번째 집이었다. 뭔가 흐트러질 거리를 찾던 아이들의 고개가 뒤에 앉은 찬이에게 향했다. 그렇다고 급하다는 데 참으라고 할 수도 없고, 같이 갔다 오면 흩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고 혼자 보냈다. 화장실이 좀 멀리 있어서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니 화장실 정도는 알아서 갔다오겠지 불안함을 달랬다.
찬이가 가고 나서 아이들이 쑥덕거렸다.
“똥 싸러 갔어요. 똥이에요.”
“어떻게 알아?”
“좀 지린 거 같아요. 냄새가 나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라 또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찬이는 씩씩하게 돌아왔다.
“너 똥 누고 왔지?”
아이들이 물었다.
“그래!”
아이들은 코를 움켜잡으며 냄새가 난다고 장난을 쳤다.
“야, 너희들은 똥 안 눠? 똥은 다 누잖아.”
보통 똥을 누고 오면 괜히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있고 주변에서 냄새 난다 하면 창피해하는 아이도 있는데, 찬이는 당당했다.
수업이 끝나고 흩어지기 전 화장실에 한 번 더 들렀다.
찬이가 한참 지나도 안 나오길래 무엇을 하나 들여다보았다. 온풍구에 팬티를 말리고 있었다.
“아까 팬티에 조금 쌌는데 수업해야 하니까 벗어서 가방에 넣어 두었어요. 집에 가야 하니까 대충 말려서라도 입고 가려고요.”
그 수업에 자기보다 두 살 위인 누나도 같이 참가하고 있었는데, 누나한테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다. 수업 중에도 내내 불편했을 텐데.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의 그 유연한 대처 능력에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찬이 어머님께 감탄하며 그 일을 말씀드렸다.
“장이 약한지 똥을 급하게 싸고 그래서 팬티에 묻히는 경우도 많았어요.”
찬이 어머님은 별일 아닌 듯 말씀하셨다.
“그랬군요. 저는 놀랄 정도로 기특했어요. 이제 3학년인데 어떻게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고 잘 처리해요?”
“일단 똥을 더럽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알려줬어요. 아기 때부터 그림책을 통해 교육을 했어요.”
그리고 똥을 쌌을 때는 어떻게 할지도 알려주었다고 했다.
찬이의 똥에 대한 자세는 일찌감치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부드럽고 매끈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안 것이다.
찬이에게 “누가 때리면 맞은 만큼 꼭 때려야 해.”라고 말씀하셔서 조금 단호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신 분인가 생각했던 어머님이었는데, 명확한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의 태도인가,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말도 어쩌면 찬이에게는 필요한 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찬이에게 똥에 대한 바른 생각과 대처할 수 있는 씩씩함을 갖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찬이가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면, 그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속상해서 수업을 못하겠다고 그냥 계속 울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를.
같은 문제라도, 부모의 태도에 따라서 아이들이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알게 된 사건이었다.
부끄러움도 당당함도 배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