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투명한 햇살이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봄기운으로 충만한 계절이다. 그리고 꽃보다 나무가 싱그러운 나무의 계절이다.
우리 동네에는 계수나무가 있다.
어릴 적엔 ‘푸른 하늘 은하수’ 노래에 맞춰 손뼉 치기 놀이를 하며 계수나무는 달나라에 사는 나무라고 몽상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나와 가깝게 살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내가 계수나무를 알게 된 건 우리 강아지 니모와 산책 중 바람에 팔랑팔랑 거리는 하트모양 나뭇잎을 발견하고 “오! 나뭇잎이 하트 모양이네...” 감탄하며 살펴보는데 놀랍게도 계수나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계수나무를 좋아하게 되었고 또 나뭇잎들이 다 비슷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하나도 똑같은 것 없이 나무마다 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겨울에 잿빛 나무 가지들만 보면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없고 구별이 잘 안 되지만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가 열리면 어떤 나무인지 분명히 알 게 된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듯 나뭇잎 모양도 은행잎이나 단풍잎 말고도 동그랗고 나선형이고 삐죽삐죽하고 부채처럼 넓적하고 참 다양하다.
나무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도 한다.
새처럼 종알거리며 바람의 장난이나 동네 강아지들이 자꾸 나무둥치에 오줌을 눠서 불만이라는 둥 개미 때문에 간지럽다는 둥 시시콜콜 말이 많다. 그런 나무를 좋아하고 나무가 하는 말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나무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나무 책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김선남 글, 그림/그림책공작소>를 소개한다.
처음엔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커다란 그늘을 보고 알았지.
느티나무였다는 걸.
우리 동네엔 나무가 참 많아.
나무들 사이로 휙휙.
날쌘 다람쥐를 보고 알았지.
다람쥐네 도토리밭 참나무였다는 걸.
어디선가 풍기는 솜사탕 향기.
향기 따라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서 알았어.
계수나무였다는 걸
(그림책 본문에서 발췌한 문장)
느티나무 그늘은 아빠 품 같아서 기대고 앉아 잠깐 졸다 가도 좋다. 다람쥐가 조로롱 거리며 뛰어다니는 참나무는 언제나 다람쥐를 위해 넉넉한 도토리를 내며 안전한 은신처이기도 하다. 그리고 계수나무는 꿀나무라고도 불리는데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어 달고나 같은 향을 풍기며 지나는 사람들을 홀린다.그 밖에도 크리스마스 나무로 유명한 구상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감나무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무심하면 보이지 않는 나무들의 특징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또 좋아하는 나무는 여름이면 한 줄 바람에도 스스스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사시나무, 높이 높이자라 구름이 걸리는 미루나무, 하늘하늘 낭창거리는 버드나무도 있다. 별만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나무들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나무의 계절 오월이 점점 짙어져 간다.
“나무를 알아 간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나무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겨나 그 무수한 세월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나무를 알아가는 것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무에 깃든 모든 생물들을 품고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에게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울 수 있다.
나의 놀이터동네 도서관 가는 길에 단풍나무가 양옆으로 드리워진 길이 있다. 여느 단풍보다 잎이 작은 아기 단풍잎이 가지마다 촘촘히 열려 하늘을 가리고 햇빛을 받아 초록별처럼 반짝거리는데 나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머리 위에 아기 단풍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스므발작쯤 되는 그 길을 ‘행복의 길’이라고 이름 지었다, 나무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