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틀 Dec 16. 2024

12장 이제 그만 쉬고 싶어.

 사랑스러운 꼴찌들의 공부방이었던 곳은 한 클래스 당 삼십 명 정도의 학생들로 가득한 공장형 학원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요즘 학교에서도 한 반에 서른 명 넘기가 힘들다는데 수업 문의가 차고 넘쳐 대기자 명단까지 등장했다. 주기적으로 마감 안내 문자를 보냈지만 기다리겠다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강력한 ‘끌어당김의 법칙’대로 공부방은 순항에 순항을 거듭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력은 내가 내뱉는 말들을 뼈대 삼아 모습을 갖췄는데 성숙함이 부족했던 나는 곧잘 ‘감사’를 잊었고 ‘초심’을 무시했다.


 질문하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들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날들이 많아졌다. 우스갯소리로 선생님에게 질문하려면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 번 반복해야 겨우 기회가 온다는 말이 나왔다. 변명하자면 내가 게을렀기 때문은 아니었다. 화장실도 마음껏 갈 수 없었고 식사시간은 언감생심 넘볼 수 없었다. 배가 너무 고프면 조교에게 부탁해서 김밥을 시켰다. 밥 먹는 시간은 절대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마저도 시간이 안 날 것 같으면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사발면에 물을 부어놓고 질문받느라 죄다 불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라면마저 허기를 못 이겨 마시듯이 먹을 땐 내가 가여웠다. 그랬다. 다시 또 나란 사람이 가엽고 불쌍해졌다.      


 일기 쓰기는 적어도 나에겐 치유의 과정을 의미했는데, 2018년부터 일기 쓰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당시의 일기엔 ‘번 아웃, 휴식, 쉼, 욕심 내려놓기’ 등등의 단어들로 빼곡했다. 공부방 개원 후 만 7년이 흐른 뒤부터 강력한 끌어당김의 주파수는 다른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려 항해하기 시작했다.      


 잠 잘 채비를 하다 핸드폰 녹음 앱 재생 버튼을 잘못 눌렀다. 2018년 겨울의 ‘나’는 당시의 고단했던 마음을 녹음해 두었는데 내가 그랬었다는 것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과거의 나와 마주했다. 목소리는 지쳐있었다.      


 여기에 당시에 일기 내용을 옮겨본다.   

   

 오늘 낮잠을 자다가 너무 힘겨운 꿈을 꾸었어요. 목적지가 눈앞에 바로 보이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나. 흔한 레퍼토리의 악몽 속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다지 높지도 않은 오르막인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요. 걷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송아지가 된 것 같습니다. 걷는다는 행위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혼자의 힘으론 나아갈 수 없어요. 아프다거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발에 힘을 주고 바닥을 딛고 무릎을 올려야 하는 모든 방법을 잊고 말았습니다. 내 무능함에 속이 상해 울면서 밧줄 같은 것을 잡고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는데 교복 입은 학생들이 제 뒤에서 다 들으라는 듯이 욕을 해요. 차마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교복 입은 학생들은 제가 가르치는 제자의 얼굴을 모두 빼다 박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을 때쯤 도착한 곳은 카페 같아요. 그런데 가장 황당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저는 그 카페를 왜 힘겹게 올랐던 걸까요? 땀으로 번들거리는 모습을 한 채로 저는 직원에게 쿠폰 도장을 찍어달라 합니다. 아니 고작 쿠폰 도장 때문이라니요? 설상가상 직원은 무슨 이유에선지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 해요. 하릴없이 발길을 돌립니다. 돌아갈 땐 걷는 게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터벅터벅 잘도 걷습니다. 그러다 ‘아차!’ 합니다. 그곳에 제 핸드백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돼요. 오르막에선 다시 또 걷는 법을 잊고 말아요. 다시금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듯 힘겹게 카페에 도착합니다. 매장 직원은 다행히 누가 두고 간 핸드백을 보관 중이라고 해줘요. 하지만 그 핸드백은 제 것이 아니에요. 제 것은 좀 더 두툼하고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든 것인데 보관 중인 그것은 납작하고 초라해요. 누가 제 것을 가져가고 본인 것을 남겨 놓았죠. 저는 울상이 되어 점원을 쳐다보고 점원은 알아봐 주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요.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납니다.      

 꿈이었다는 것을 알고 행복해진 것도 잠시. 꿈이 예지몽, 그중에서도 흉몽 같아서 꿈 내용을 검색해 보죠. 역시나 나쁜 꿈이에요. 그것도 매우 나쁜. 하지만 저처럼 낮잠 한두 시간 안에 꾸는 꿈은 예지몽보단 심리몽이라네요. 저는 지금 어떤 심리상태인 걸까요? 학생들이 차고 넘치는 이 상황을 버거워하면서도 저를 찾지 않는 순간이 올까 봐 무서워하고 있어요.     


 찾아주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반가워서 감사일기를 쓰던 시작점으로부터 7년 뒤,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수업을 해치우느라 불행하다고 독백한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에너지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형태가 변화한다. 내가 내뱉는 혼잣말은 가장 강력한 주술의 힘을 지녔다는 것을 망각해 버린다. 홧김에 내뱉는 그 모습 그대로 이루어준다.      


이제 더는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나같이 공부 못하는 애들만 들어오니 너무 힘들어.

저 아이는 여러 번 가르쳐도 결국 제자리야.

저 애들 때문에 암에 걸려 죽을 것 같아.

속이 너무 답답하고 숨쉬기가 버거워.

이제 그만 좀 쉬고 싶어.

불만과 부정, 자기연민으로 지저분해진 접시를 모두 비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