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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Oct 24. 2021

역마살

         또 누군가 죽었다. 이번에는 우리 집 아랫동네 아저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뒷산에 올라 목을 맸다고 했다.  허구한 날 신세 한탄만 하며 술만 줄곧 퍼 마시던 초빼이 삼촌. (경상도 사투리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는 보통사람과 알코올 중독자 사이의 사람을 일컫는 말.) 뒷집에 살던 외삼촌 친구가 본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원망하고 삶을 비관하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불과 2주 만에 일이다. 죽음과 자살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던 겨우 13살에 나에게는 막연한 공포감을 주었고 공기마저 스산하게 느껴지던 그즈음에 나는 줄곧 그 동네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꽤나 오랫동안 했다. 


       내 이름 석자에는 ’ 이응’ 그러니까 동그라미가 무려 3개나 들어가지 않냐며 동글동글 굴러서 세계를 떠다니며 살 것 같지 않지 않냐는 허무맹랑한 상상이 제멋대로 나래를 펼치고,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늠름하게 서있는 나를 공상하며 그 으스스한 느낌을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근무하던 가구점에서 아버지가 실직하시고 무기력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나의 아버지가 아랫동네 아저씨나 삼촌 친구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세드 엔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근심 걱정으로 내 수명은 매일매일 단축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버지의 실직 이후 엄마는 그곳에 고깃집을 오픈하셨다. 


       열세 살 소녀의 산동네 탈출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되었고 나는 어느덧 사춘기 여고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방가 후 수업으로 글쓰기반에 가입했다. 그 문예반에 담당 선생님은 아이러니하게도 키와 덩치가 큰 일본어 선생님이었다. 일본어 선생님이 가르치는 문예반이라…. 그날의 주제와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말씀이 어눌하신 그 선생님께서 어느 날 내 이름을 부르시며 내 글에 느낌이 좋다고 앞으로도 글을 잘 써보라고 하셨다.  


      어른의 칭찬과 관심에 목말랐던 나에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글을 읽어 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나는 선생님에게 큰 감사함을 느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퍼붓기 시작한 어느 날 학교 내 실내 수도가의 하수구가 막혀 진흙탕 물이 온 복도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더럽고 악취가 났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려 맨발로 걸어 들어가시는 게 아닌가. 맨손으로 막힌 곳을 찾아 오물을 걷어 내셨다. 고상할 것 같았던 선생님의 의외에 모습에 나는 처음으로 어른 같은 모습을 봤고 잠시 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니, 나의 아버지도 길고 긴 어둠과 상심의 끝에서 벗어나 그처럼 당당하게 맨손으로 오물같은 절망을 걷어 올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잠시 스쳤던걸까..


       아버지는 내가 겨우 스물한 살이던 해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곳에서 탈출했다. 정말 멀리도 떠났다. 서울도 한번 가본 적이 없고, 기차도 비행기도 한번 타 본 적이 없는 나는 비행기를 무려 13시간이나 타고 런던으로 탈출했다. 탈출에 성공한 나는 마냥 신기하고 행복했지만 밥벌이는 해야 되는 처지라 잡 에이전시에 등록에 이런저런 그날그날 주어진 일들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내, 노동의 단맛과 짠맛 매운맛까지 느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토튼햄 축구 경기장에서 감자도 튀기고,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 비린내 찌든 기름 짙게 묻은 그릇들을 찬물에 설거지도 했다. 야간수당에 눈이 멀어, 밤새도록 접시 1,800개도 닦아봤다. 비록 몸은 고되어도, 훗날에 내가 성공하면 꼭 자서전에 쓸 이야기라며, 즐겁게 노동했다. 


      진득한 계절 냄새가 배어오던 달이 밝은 어느 가을, 런던의 밤. 나를 기억할지도 모를 그 시절의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다. 아마도 나는 보낼 수 없는 아버지 대신 그에게 나의 안부를 전했던 거 같다. 그리고 사흘 후. 너무나 따뜻한 답장을 받았다. ‘사랑방’이라는 닉네임의 선생님에게…. 


보헤미안(된장식으로 말하자면 역마살 낀 년놈)은 


외로운 때가 달리 없단다.

밥 먹어도 외롭고, 응가할 때도 외롭고, 친구가 옆에 있어도 외롭고, 애인과 함께 침대에 누워도 외로운 법.

그런 행동 양식을 보이는 사람을 보고 흔히 '역마살 낀 넘'이라는 

명사로 분류해 두는 거지.

넌, 역마살 꼈냐? 아니것제?

난 어릴 때 동리 할머니의 말씀들에 의하면 역마살 꼈단다.

어린 날의 겨울 모두를 텅 빈 들과 하늘 아래서 연 끝에 달린 얼래를 어르던 꼴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그랬제. 그래, 연에 니 마음을 날릴 수 있다면 그나마 떠돌이 마음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나... 

머 그런 비슷한 말로 기억해.

음...

결과론으로 말하자면 역마살은 쓸 만해.

너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좋은 점을 말해볼까?

아무리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고 다음 주에 

또 떠나고 싶은 점이 좋고,

떠돌아다녔던 그곳을 좋더라 나쁘더라 로 단정 짓지 못하니 

더욱 좋고,

보았던 사람 또 보고 싶으니 짜안해서 좋고,

자꾸 보아도 싫어지지 않으니 또 좋고,

어느 한 곳(사람)에 집착하지 않아서 좋고,

나와 인연 되지 않는 곳(사람) 훨훨 시원하게 

떠나보낼 수 있어서 좋고,

수많은 추억으로 잠 오지 않는 밤을 반추하며 보내니 좋고...


하하하...

너는 그렇지 않은데 내가 괜히 너도 그럴 것이 다라고 넘겨짚었다면 미안.


음...

너도 화나면 겨드랑이 털이 날개로 변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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