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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Aug 07. 2024

식물 두 개를 사자. 꼭 하나는 살아남는다. 2

포인세티아와 블루바드


가끔 뜬금없는 곳에서 식물을 사는 나는 콩나물, 두부를 사러 간 마트에서도 식물을 산다.

별로 사람이 머물지 않으며 마치 매장의 계절 데코레이션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대형마트의 식물매대는 언제나 나의 눈길을 끈다.

크리스마스는 특히나 식물매대가 톡톡히 역할을 한다.

주로 빨간 잎의 포인세티아를 많이 들여놓으니 다른 장식을 할 필요도 없이 건조한 매장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껏 들뜬다.

구매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키니 계절식물을 들여놓는 것은 식물판매의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장식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시즌이 지난 후의 처리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마트 매대의 식물들은 늘 측은하다.

마트의 식물들은 바짝 마르기도 하고, 물텀벙 속에 들어있기도 하다.

화원도 아니며 물건들을 진열하기 바쁜 직원들에겐 그저 물건이거나 조금 신경 쓰이는 귀찮은 물건일 것이다.

마트의 붕어나 때론 강아지, 햄스터, 사슴벌레 같은 곤충들도 마찬가지다.

돌보지 않은 생물들이 죽거나 시들어 데코로써의 가치가 사라지면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면 그만인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직원들을 탓하거나 생명존중의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은 직업에 충실하며 고된 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어느 직원은 틈이 없어 말라가는 식물을 안타깝게 지켜볼 것이고, 어느 직원은 죽은 구피를 건져내어 버리는 일이 마음 아플 것이다.

지독하게 건조하고, 햇빛 한점 없는 그곳은 모든 생물들의 삶이 팍팍하게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꽉 막힌 실내인 마트나 백화점, 지하상가, 극장등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햇빛이 없는 공간에 대한 폐쇄공포증이라고 자가진단을 내렸고,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시간으로 머무른다.

어쩌면 식물도 폐쇄공포증에 걸려 죽어가는 것 같다.


겨울 꽃, 크리스마스 꽃 하면 포인세티아를 떠올린다.  포인세티아는 내가 겨울마다 사들이는 겨울 꽃나무였다.  

잘 돌본다고 생각했지만 겨울이 지나고 나면 폐쇄공포증에 걸릴 일도 없는 우리 집에서 포인세티아는 어김없이 죽었다.



2주째 지나치던 매대의 포인세티아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투명하고 반짝한 셀로판지로 감싸 예쁘게 보이지만 포인세티아가 심어져 있는 흙은 진흙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이구, 물을 들이부었구나. 저러다간 죽겠는데 하나만 구해낼까?’  

내가 그곳에서 죽어가는 식물을 사는 건 어찌 보면 호구를 자처하는 일이다.

신중하게 게 중 살 가망성이 높은 것을 고르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다 똑같은데 뭘 아직도 골라? 빨리 가자!”


집으로 온 4000원의 행복인 포인세티아는 연말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고, 새해가 되자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 뿐 죽지 않은 것이 증명되었다.

살리려는 것이 아니고 죽겠거니 하며 그래도 잊지 않으면 물은 주었고, 간혹 구석에 두어 물 주기도 빼먹고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변화 없이 몇 달 동안 시든 잎을 한 장씩 떨구기만 했다.

하지만 포인세티아는 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5월의 어느 날 푸석한 먼지 쌓인 빨간 잎 사이에서 초록의 작은 것이 보였다.

포인세티아가 새로운 잎을 내놓는 모습을 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다.

“세상에나 새 잎이 나오다니 죽은 것이 아니었어! “

포인세티아의 변함없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폐쇄공포증이 아니고, 나의 조바심이 죽지 않은 포인세티아를 죽인 것이었다.


여름을 지나며 포인세티아는 빨간 잎은 하나씩 차례로 떨구고, 오히려 초록의 잎을 튼튼히 키워내고 있다.

포인세티아는 부지런히 겨울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다.

올 겨울엔 어쩌면 더 이상 포인세티아를 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점점 구석으로..
“어! 저게 뭐야?“

마음에 드는 포인세티아를 골라 카트의 아이들을 앉히는 곳에 안전히 실고 나니 초면의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의 잎 뒷면이 은색이어서 초록과 은색이 섞여 보이니 마치 눈을 맞은듯한 작은 침엽수였다.

만져보니 더 깜짝 놀랄 만큼 침엽수의 까칠함이란 없는 부드러움이 느껴졌고, 비누의 등을 쓰다듬는 것 같은 촉감이 느껴졌다.

나의 첫 느낌이었다.


이름도 참 예쁘고 매력적인 블루바드

‘어떻게 안 데려올 수가 있겠어!’


사실 새의 깃털을 닮아 Blubird (파랑새)인 줄 알았다.  

스펠링을 찾아보니 새와 전혀 상관없는 Boulevard (도로. 가로수가 있는)였다.   

진짜 이름이 더 상관없어 보여 의문이 든다.

‘서양의 어딘가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었었을까?’

은색의 잎을 바람에 흔들거리며 높게 뻗어 가로수로 서 있는다면 무척이나 오묘하고 멋있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새의 깃털처럼 보인다.

은색처럼 보이는 초록잎 뒷면의 흰빛은 해를 많이 볼수록 더욱 아름다운 제 색을 나타낸다고 했다.

겨울과 봄을 지나며 간접으로 종일 해가 드는 자리에 위치해 두었다.  

무럭무럭 깃털을 날갯짓하듯 펼치며 성장세를 보여 봄에 한차례 분갈이를 해주니 새순을 쑥쑥 내보내며 더욱 잘 자랐다.  

장마철을 지나 가을이 되면 분갈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포인세티아는 죽어간다고 생각했고, 블루바드가 살아남는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다. (봄)


첫 날
포인세티아가 잠든 사이 블루바드는 무럭무럭!

음,  그 ‘해를 많이 볼수록’ 이란 문구는 또 나의 실수를 불러일으켰다.

장마 중 잠시 날이 개며 나온 햇볕을 보여주려 블루바드를 창틀에 올려놓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름의 뜨거운 해는 화분 속 흙과  블루바드를 바짝 마르게 했다. 저녁이 돼서야 책상 위로 옮겼다.

책을 읽다 쳐다본 책상 위의 블루바드가 이상했다.

은빛이 아니고 갈색이 돌며 뭔가 까칠해 보이는 잎을 만져보니 블루바드는 침엽수가 되어있었다. 부드럽던 잎이 내 손가락을 찔렀다.

“앗 따가워!”


덥고 지쳐 다른 일에 몰입하느라 나는 블루바드를 잊었다.

무관심은 식물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마트 매대 위의 식물이 돌봄이 없어 죽어 간다고 무슨 탓을 했는지 반성한다.

게다가 처음 만난 식물에 대해 나의 식물력을 너무 과신을 했다.

급히 누렇게 변하는 끝쪽의 잎을 잘라내고 지켜보고 있다. 사실 희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잎만 말랐을까? 뿌리도 말랐을까? 혹시 이미....

믿었던 결과와 달라졌다.

봄의 예측과 달리 블루바드는 생사의 기로에 서있고, 포인세티아가 살아남았다. (여름)

불과 몇 달 사이의 일이다. 식물 키우는 일은 절대 자만하거나 게으르면 안 된다.


식물 두 개를 사면 꼭 하나는 살아남는다.

(약간 자신감이 떨이 지긴 한다.)


식물을 키우는 집사인 나에게..

그린텀(green thumb) 인양 으스대지 말고,
식물의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식물에 대하여


< 포인세티아 >

크리스마스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빨간색이 대표적이지만 분홍, 연두, 노란색도 있다.

우리가 아는 빨간 꽃은 꽃이 아니다. 빨간 잎은 포엽이라고 하며 꽃을 받치는 꽃받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빨간 잎 사이에 노란 꽃술처럼 보이는 것이 포인세티아의 꽃이다.


키우기

꽃말 : 축복

원산지 : 멕시코

생육환경 : 실외에서 잘 자라는 편이며 햇빛층 좋아한다. 그러나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곳에선 실내로 옮겨주어 월동해야 한다.

물 주기 : 과습에 약하고, 건조에 강하다.

빨간색으로 물들이는 방법 (단일처리) : 실내에서 키울 경우

단일처리란 빛을 제한하는 것이다.

실외에선 10월경부터 밤시간이 길어져 자연스럽게 포엽이 물든다.

실내에선 햇빛이 아니고도 계속 불빛이 있으므로 단일처리를 해주어야 빨갛게 물든 포인세티아를 볼 수 있다.

50일 이상의 기간 동안 12시간 이상 해를 차단해 주어야 초록색의 잎이 빨갛게 물든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해를 차단하면 광합성 부족으로 잎이 떨어진다.

가정에서는 10월 경부터 저녁 6시-다음날 오전 8시까지 검은 비닐봉지를 씌워두는 방법을 한다.


<나의 경험담>

매년 사고 죽이고를 반복하여 처음으로 포인세티아의 새 순을 만났다.

10월부터는 저녁 6시부터 검은 봉지를 씌워 빨갛게 물들게 하는 단일처리를 해볼 계획이다.

두근두근... 빨리 10월이 왔으면..


예쁜 초록잎이 자라고 있는 포인세티아 (현재)

<블루바드 >

블루바드, 블루버드, 비단 삼나무, 화백니무, 서리화백, 스노우 화백...

부르는 이름이 참 많고 곱다.



키우기

생육환경 : 겨울철에 키우기 쉬운 식물이다.

햇빛 : 간접적인 해가 드는 반양지가 좋다. 직사광선은 좋지 않다.

물 주기 : 물을 마르지 않도록 신경 써서 줘야 한다. 가끔 잎에 부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도 좋다.

갈변 :  물을 말리면 잎이 건조되며 갈변한다. 되돌릴 수 없다.

은빛 잎으로 물들이기 : 직사광선은 안 좋지만 간접적인 해를 많이 보게 해야 잎이 은청색으로 예쁘게 물든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은색이 아닌 초록잎이 된다.


< 나의 경험담 >

해를 많이 보여야 은색의 잎이 된다는 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직사광선과 물말림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가지를 마구 늘리며 잘 자라서 살아남는 식물 중 하나라고 생각해했던 블루바드를 창틀에 올려두고 바짝 말렸다.

끝쪽 가지를 잘라주고 기다려 보는 중이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블루바드가 내게 까칠하게 군다. ‘미안..’


보들보들한 은색의 침엽수인 블루바드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어쩜 좋을까?

‘다시 사야지 뭐!!’ (다짐)

미련을 못버리고, 뒤늦게 아늑하게 빨간 담장도 꽂아줘본다.(현재)


둘이서 랄랄 라~~

둘이 함께 좋은 시절
눈 오는 날도 함께..
리스처럼 예뻤던 메리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행복한 여름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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