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베이비시터 3.
어쩌다 베이비시터 3.
첫날.
하얀 문으로 들어서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자 나를 향해 예지가 방긋 웃었다.
그리곤 예지는 아빠에게 뽀뽀를 하고,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그 모습이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고, 나의 꿀좝이 순조로울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하얀 문이 닫히고, 예지와 나의 관계가 시작되는 문이 열렸다.
처음엔 부모와 나의 관계라고만 생각했다.
아이의 끼니를 챙겨주고 다치지 않게 보살피면 되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살 짜리라고 쉽게 여겼다.
내 생각이 와장창 무너진 것은 첫날이었다.
혹시 위험할까 싶어 문 앞에서 손을 잡으니 쏙 돌려 예지의 작은 손이 빠져나갔다.
거리감이 느껴졌다.
문이 닫히자 생글거리던 예지의 얼굴이 갑자기 무표정의 경직된 얼굴이 되었다.
우린 단둘이 남았고, 나 역시 아무리 아가여도 낯설고 서먹했다.
오랜만에 보는 어린 아기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얼마간 지켜보고만 있었다.
예지는 내게 바라는 것이 없이 혼자 잘 놀았다.
메모에 적힌 대로 정해진 시간에 엄마가 준비해 둔 간식과 점심을 챙겨주니 스스로 잘 먹었다.
‘돈 버는 일이 수월하겠다.’
어찌어찌 세 시간 반이 별일 없이 지나고, 곧 끝날시간이 되어오는데 예지가 말했다.
“말 그려주세요”
내가 모르는 캐릭터도 아니고 말쯤이야 우리 애들한테도 수없이 그려줬으니 돈버는 일에 대한 오만한 생각처럼 수월하게 슥슥 그렸다.
갈색으로 멋지게 말갈기도 그렸다.
‘어때? 멋지지? “ 그 순간 울음보가 터졌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말도 안 하고 그냥 서럽게 울었다. 시계를 보니 정각. 망했다.
예지 아빠는 정확하게 돌아왔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나라면 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 같다.
억울한 마음에 구구절절 설명을 하니 “말 때문이군요” 하면서 웃으며 예지가 원한 말을 그렸다.
예지아빠가 내 탓을 하지 않고 웃으니 조금 안심하며 그림을 보았다.
아! 머리에 뿔이 달린 하얀 유니콘!
예지는 이내 울음을 그쳤다.
내가 그 특정한 말을 어찌 알겠나?
어쩌면 똑똑이 예지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저 어수룩한 이모를 찜 쪄서 내보내고, 엄마, 아빠랑만 지내야지’
그런 생각을 했을 것만 같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너무 억울했지만 남의 아기를 울렸으니 할 말이 없다.
‘혹시 예지엄마가 원망의 전화라도 하면 그만둬야겠다’
전화는 안 왔고, 두 번째 날이 돌아왔다.
“이모, 빵에 꿀 발라주세요”
“그래. 맛있게 해 줄게!”
오호, 요리는 내가 좀 맛있게 하니 예지의 마음을 달콤하게 녹이리라.
알맞은 양의 꿀을 빈틈없이 적당히 달콤하게 골고루 발라 귀여운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런데
조금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한 예지가 빵을 한입 베어 물더니 씹지도 않고, 닭똥 같은 눈물을 똑 떨어뜨렸다.
나는 또 예지를 울렸다.
예지가 원하는 회오리모양으로 꿀을 바르지 않았기 때문인걸 안건 한참 후의 일이다.
다행히 둘째 날의 울음 끝은 길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며 또 생각했다.
‘오늘 전화가 오면 그만둬야겠다’
이 상황은 여러 번 반복되었고, 나는 남의 집 아가의 울음이 두려웠다.
예지는 울음으로 나를 이기고, 시터 말고 부모와 늘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섯 번째 날. 무엇 때문인지 예지는 울었고, 그날은 돌아온 예지아빠에게서 허탈한 표정을 보았다.
‘만일 전화가 오면 그만둬야겠다.’
아마도 2주 정도면 시터들이 그만두겠다고 했었던 것 같다.
예지아빠의 표정은 나에 대한 실망이 아닌 내가 그만둘까 두려웠던 염려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치고 꿀좝에 대한 환상이 깨지며 하드 좝임을 알게 되었으나 그만둘 순 없는 목적이 있었다.
보수는 매일 100달러짜리의 Check(자기 앞 수표)로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드라이브 쓰루 은행에 넣으면 플라스틱 캡슐에 담긴 100달러는 슉하고 우리의 통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Check을 일급으로 받는 일과 스스로 할 수 있는 은행 업무가 생겼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 일을 그만두지 못했고, 3주 차에 들어섰다.
예지는 참 구슬프게 잘도 울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던 그날도 예지는 서럽고 크게 울었다.
꿀 바른 빵 접시를 앞에 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아아아아!!” 시끄럽고 고집스러운 소리를 냈다.
‘정말 지친다. 이젠 내가 그만둔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와서 예지를 미워하면 어쩌지? ‘
옆집에서 신고해서 경찰이 오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가만히 쳐다보며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남의 아기인 예지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고, 내 아이들이 고집스럽게 울 때처럼 똑같이 냉정했다.
‘나는 을이고 갑에게 비위를 맞추고 굽신거려야 하는데 이렇게 우리 애들에게 하는것처럼 대해도 될까?‘
때리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 우는 것으로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뭐라고 하면 그만두면 된다.
다른 베이비 시터가 오고, 예지를 밉게 우는 지겨운 아기로 보는 것이 싫었다.
아무 말 없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예지는 집요하게 목이 쉬도록 한 30분을 울더니 지쳐서 그쳤다.
“이리 와” 하며 팔을 벌리니 예지가 순순히 안겼다.
“예지야, 이모가 못 알아들어서 답답하고 힘들지? ” 고개를 끄덕인다.
“이모도 알고 싶은데 계속 울면 더 알 수가 없어. 울지 않고 얘기를 해주면 이모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지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울음이 남은 목소리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빵에 꿀은 회오리 모양으로 발라야 되는데... “
“어머, 그거였구나. 울지 않고 말해주니 뭔지 알겠어. 회오리 모양으로 꿀을 발라야 하는데 이모가 그걸 몰랐구나. 우리 예지 참 잘했어 “
아기 예지는 또래보다 발음이 정확했으며 이해력이 좋았고, 감성적이기까지 한 흔치 않은 성숙한 아기였다.
똑똑한 아기였고, 젊은 부모가 육아에 미숙하지만 아기와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부모가 참을성 있게 아기와 많은 이야기를 할 경우 아이들은 이해력이 좋아지며 아무리 어려도 대화가 가능해진다.
우리의 대화는 위험한 시도였지만 결국 좋은 결과를 얻었다.
똑똑이 예지는 내 말을 한 번에 잘 이해했고, 그 이후로 거의 울지 않았다.
그날의 기싸움 이후 우리 단둘의 시간이 더 지났고, 예지는 나를 대하는 표정이 편해지며 원하는 것이 있을때 울지않고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숨 막히는 괴로움 덩어리 그 자체인 집을 벗어나 예지와 함께 있는 순수한 그 시간에서 숨을 쉬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다.
진심으로 소꿉놀이가 재밌었고, 유니콘도 멋지게 그릴 수 있게 됐다.
원하는 회오리 모양의 꿀을 빵에 발라주면 예지가 박수를 치고 좋아하며 냠냠 먹는 모습이 예뻤다.
우리는 변했고, 서로에게 필요 충분한 친구가 되었다.
일의 끝에 Check을 받는 시간보다 일을 시작할 때 예지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 더 좋았다.
“예지야, 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