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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Oct 11. 2024

예지야, 안녕!

어쩌다 베이비시터 1.


어쩌다 베이비 시터 1.


낯선 아기가 울고 있다. 절망감이 든다.     

남의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베이비시터를 하게 됐다. 왜?        

돈이 필요한 그 명확한 이유 때문이다.   

우는 아이 앞에 앉아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여기에서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이러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는데..’


우리에겐 분명히 드림이 있었다. 흔한 말인 아메리칸드림.      

‘어디서부터 엉망진창이 된 것일까?’   

한국에서라면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원망이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만일 그러한 상황이 똑같이 닥쳤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그보다 수월했을 것 같았다.  

꿈의 대상이었던 미국이란 곳이 원망의 대상으로 치가 떨리는 곳이 되었다.                          


한 남자에게 몰입하여 나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 후 오랜 시간을 살림하고, 애들 키우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경력 단절.    

낯가림이 심하고 영어도 잘 못하니 한인마트의 점원을 할 주제도 못되었다.  

게다가 나는 합법적으로 일할 자격이 주어진 비자(VIisa)를 갖고 있지 않았다.   

체류목적을 갖은 사람의 거취에 따라 운명이 정해지는 동반 비자. 그것은 10년 정도의 세월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었는지 흔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 하기 위해 의식하게 된 F-2 Visa라는 status는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마치 지금까지 살아온 나란 인간에 대해 확실하고 선명하게 그림자 인간으로 정의한 것처럼 생각되어 간혹 심한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나의 그림자 살이가 누군가에겐 외국살이에 대한 동경으로 비쳤다는 것이 또한 마음이 힘든 부분이었다.  

답답함에 의미 없는 줄 알면서도 한국의 친구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너도 애들도 영어 배우고, 외국살이 하는 거 좋지 뭘 그래. 배가 불렀다 야! 나랑 바꾸자. “    

할 말이 없어지며 목이 막히고, 숨도 막혔다.   

“그래. 잘 지내.. 다음에 연락할게..”  

이것은 조심스러운 얘기다. 20년 전 온라인상에 떠돌던 나의 글 <김치 속에 밥 비벼먹고>가 논란이 되었던 것도 결국은 그런 이유였다.  

별의별 댓글들이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가끔 터져 나오는 마음을 글로 써 익명으로 조심스럽게 허공으로 날릴 뿐 프레임에 둘러싸인 나는 마음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다.  

나는 최고의 수혜인 영어가 늘지 않았으니 그저  경력단절 시기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아이들의 학교도, 아이가 다쳐 응급실을 가야 할 때도, 집에 일이 생겨도, 피자를 시킬 때조차도 남편이 필요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부수적인 재료 같은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불만스러움을 드러낼 여유 따윈 없었다.  

무엇으로 비추어지든 나는 그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꼭 필요했다.



To be continued..




* 댓글창은 마지막 편에 열겠습니다 *


어쩌다 베이비시터 2.

어쩌다 베이비시터 3.

어쩌다 베이비시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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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날임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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