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방송국만 보면 설레어

두근두근, 여의도로 첫 발

by 가온결

시작이 반, 나도 브런치스토리에 내 글을

써 봐야지 하고 마음이 동하고 나니

오며 가며 출퇴근길에 온갖 글감들이

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있 요즘이다.


며칠 전 가을 칼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

마지막 20대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만나러

방송의 메카, 상암동으로 향했다.

아직도 그 시절의 열정이 조금 남아있는 탓인지

우뚝 서있는 방송사 건물만 봐도 두근두근

기분이 상기되었음 느껴졌다.


나는 26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kbs방송아카데미 52기 구성작가 과정을 수료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한 번뿐인 일생,

꼭 배우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일에

첫 발을 내딛는 기분,

그 시기 나는 마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여러 방송 아카데미, 작가교육원, 협회 등

시작 일정과 커리큘럼을 꼼꼼하게 체크한 끝에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점에 이끌려 KBS를

선택했었다. 당시에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조용하고 소심했던 시절이라 첫 수업하는 날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공통적으로 국어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20대 언니 동생들이 스무 명 남짓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장 나이가 많으면 어떡하지

잠시 불안감도 엄습했지만, 예체능을 전공한

두 명의 왕언니에게 묻어갈 수 있었다.


첫 시간에 빠지지 않는 자기소개의 시간

덧붙여 말하길 내가 되고 싶은 구성작가 분야도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일요일

11시면 본방사수하는 내 최애프로그램은

엠비씨의 신비한 TV서프라이즈였다. 2002년부터

장수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있는 걸 보면 전국적으로 나 같은 마니아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넌지시 짐작해 본다.


그래서 나는 원대한 꿈을 키워 서프라이즈의

막내작가가 되길 간절히 염원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그 당시 출강에

나섰던 현역 방송작가님께서 말씀하시길

재연프로그램은 그만두는 작가들이 드물어

바늘구멍 같은 확률이라는 소리에 나는 급 좌절하고 말았다.

일반글쓰기와는 또 다른 구성작가 과정은 방송소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수업내용은 3B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시청률을 사로잡는 3B란

바로 Beauty, Beast, Baby이다. 요즘도

빼먹지 않고 소재로 활용되는 걸 보면 불변의

진리가 맞는 것 같다. '방송작가'라는 공통의 꿈을

지녔던 우리는 손발이 척척 맞아 수업이 끝나고

자체 스터디도 참 열심히 했더랬다. 학창 시절

성적을 위해 하던 교과공부와는 차원이 다른

노력의 시간들이었다. 서로의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덧붙이며 기존에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용인에서 여의도까지 가는 데 두 시간 남짓,

무려 왕복 4시간을 힘든지도 모르고 꼬박 6개월을

쉼 없이 내달렸던 여의도에서의 여정은

지금도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 담긴 KBS연구동만 봐도

마냥 흐뭇했고, 화장실에서 마주치던 개콘의

개그맨들만 봐도 즐거워서 하하 호호 매 순간 진기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9시 뉴스 메인앵커의

아나운서 특강은 1분 1초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은 중한 수업 그 자체기도 했다.


자욱한 안개처럼 막막한 미래였지만,

우리의 열정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눈부시게 빛나던 어느 날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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