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를 핑계로

비가 와서

by 이안


비가 내린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용해지고

세상은 조금 덜 날카로워진다.


누군가가 보고 싶지만,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날.


그리움을 들킨다 해도,

“그냥 비가 와서 그런가”

라고 말할 수 있는 날.


비를 핑계로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듯한,

조용한 빗소리.

조금 멍하니 있어도 되고,

조금 감성에 젖어도 되는 날.


누군가는 빗속을 걷고,

또 누군가는 우산 속에

파묻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는, 그저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참 소박한 하루, 참 조용한 위로.


비는 내 마음을 적시면서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오늘 내가 잠깐 쉬는 이유는

게을러서도, 슬퍼서도 아니라

그냥, 비가 와서.


비를 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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