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비가 내린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용해지고
세상은 조금 덜 날카로워진다.
누군가가 보고 싶지만,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날.
그리움을 들킨다 해도,
“그냥 비가 와서 그런가”
라고 말할 수 있는 날.
비를 핑계로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듯한,
조용한 빗소리.
조금 멍하니 있어도 되고,
조금 감성에 젖어도 되는 날.
누군가는 빗속을 걷고,
또 누군가는 우산 속에
파묻혀 조용히 눈을 감는다.
나는, 그저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참 소박한 하루, 참 조용한 위로.
비는 내 마음을 적시면서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오늘 내가 잠깐 쉬는 이유는
게을러서도, 슬퍼서도 아니라
그냥, 비가 와서.
비를 핑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