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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파티>

2. 오뭉치

by 빛과 그림자

"우리 우정 좀 고전적인 것 같아. 길거리에서 누구랑 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친구 편들어 싸울 것 같이 "

민주가 말하자 동현이 이번에는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을 먹고 헤어질 때까지 미성은 오지 못했다. 또 야근을 해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카톡 알림 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민주는 단짝인 미성의 사정을 다른 멤버들보다 잘 알아서인지 얼굴을 찡그리고 입술도 삐쭉거렸다.

"열정 페이가 아니라 ‘태움’ 또는 ‘갈음’이야."

민주는 아직 정규직으로 취업을 못해서 할 말은 없지만, 미성이 다니는 직장을 다니느니 지금처럼 아르바이트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시가 되자 마시던 맥주와 안주들을 마저 다 먹고, 혜리, 동현, 민주, 선희는 집으로 가려고 일어났다. 동현은 시외버스 터미널로 움직였다. 경기도 남양주로 가는 버스 줄은 꽤 길었다. 건대 입구에서 자취하는 선희와 홍대 근처에 사는 민주는 2호선 전철을 타기 위해 혜리와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L백화점 지하 트레비 분수 앞에 세 사람은 잠깐 멈춰 섰다.

"우리 언제 로마에 있는 진짜 트레비 분수 가서 드레스 입고 사진 찍을 수 있을까? 다 취업하고 5명 휴가 맞춰서 가려면 2년 후는 되야겠지?"

춘천이 집이고, 건대 옆 빌라에서 자취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선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혜리는 밝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3년이면 될걸. 기분이 그래. 그 때면 모두 취업하고 여유도 생겼을 것 같아."

선희는 항상 마음의 여유가 있고 오뭉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혜리의 말을 믿고 싶었다. 민주는 선희와 혜리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안 했다.

"세월이 흐르니까 언니들도 다시 만나네. 완전체로 만나면 좋을 텐데. 우리처럼."

선희는 혜리에게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 완전체는 불가능해. 한나 언니 때문에. 재민 대표는 벌써 다른 걸그룹을 론칭하고 백방으로 뛰고 있는데."

"아, 맞다. 내가 요즘 바빠서 통 신경을 안 썼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선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말했다. 선희는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후 양손을 흔들었다. 민주는 살짝 얼굴을 찡그린 후 무표정으로 말했다.

"안녕, 혜리. 나 한나언니 찐 팬이었다는 거 잊지 마."

"아, 맞다. 알았어."

혜리는 별일 아닌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네. 이제 벌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네. 놀 때는 어쩜 시간이 빨리도 지나가.

잘 지내. 너는 아직 시간 많아 좋겠다. 학교 다닐 때가 젤 편한 것 같아."

선희는 혜리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민주와 뒤돌아서 지하철 개찰구로 향했다.

선희는 취업 준비하느라 <소울메이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월세를 내기 위해 , 편의점 알바도 주 3회 하고 있어서 공부 시간이 빠듯하다고 했다. 뒤돌아 선 선희는 짧은 단발머리였다. 허리 가까이 길었던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했다.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취직이 되면 다시 머리를 기른다고. 그래도, 공기업 취업에 필요한 시험을 잘 봐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선희는 공부를 잘했다.

혜리는 선희가 원하는 대로, 올해나 내년까지는 공기업에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혜리 눈에 민주는 회사 체질은 아닌 걸로 보였다. 혜리는 민주가 자유로운 영혼이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혜리는 지하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거리의 상점 유리창에 혜리의 큰 체격이 비쳤다. 거의 170센티에 가까운 키에 몸집도 컸다. 혜리가 큰 체격 때문에 놀림받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다. 혜리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졸업이 많이 남았다. 지방대를 다니다 2학년 때 관두고 편입공부를 했었다. 2년 만에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편입해서, 이제 3학년이다. 졸업하려면 2년을 더 다녀야 하는데, 1학기만 다니다 휴학했다.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지 않았고, 느긋하게 쉬며 다이어트를 할 생각이었다. 오뭉치 친구들은 혜리에게 왜 휴학했냐고 묻지 않았다. 부모님은 혜리를 못마땅해했지만, 혜리는 부모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 부모님은 잠깐 야단치다 혜리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다. 혜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데,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잘 몰랐다.

혜리에게 오뭉치는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혜리는 <소울메이트> 공연에서 어쩌다 만난 친구들이 편했다. 학교 친구들처럼 자신을 뚱뚱하다고, 공부도 못한다고 따돌리지도 않았고, 한결같이 혜리위주로 움직여 주었다. 혜리에게 <소울메이트> 언니들은 워너비였고, 언니들과 오뭉치만 있으면, 외롭고 심심하지 않았다. 지금도, 혜리는 영주 언니의 카페를 자주 다니며, <소울메이트>가 컴백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혜리는 <소울메이트> 네 멤버 중 지나언니를 가장 좋아했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지나 언니는 무대에서 내려와서 크게 울음을 터트렸었다. 무대 위에서 팬들에게 양팔을 들어 손을 흔들며 웃었던 비현실적인 모습보다 공감 가는 모습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무표정하고 지친 모습으로 지나 언니를 달래며, 팔짱을 끼고, 밴을 타고 얼른 사라져 버렸다.

지나 언니는 싱어송라이터로 여러 곡들을 다른 팀을 위해 만들었다. 1년 정도 작곡가로 활동하다, 유학을 간다고 일을 그만두었다. 혜리는 지나 언니가 작곡한 곡들은 다 좋아했었다. 지나 덕후인 혜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지나의 곡들을 들었지만, 그 곡들은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영주언니는 이태리로 떠난 지나언니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하고는, 지나언니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영주언니는 <소울메이트>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졌고 재기하고 싶어 했다. 영주 언니는 카페에서 1집 앨범에 있는 곡들을 틀었다. 10월 1일부터 핼러윈까지 <해피 핼러윈> 곡을 틀었다.

"해피 핼러윈~~~~ 죽은 자들의 축제~~ 해피해피"

'죽은 자들의 축제인데 해피해피라'

혜리는 노래의 중독성에 빠지다가도 죽음이 해피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한 번씩 노래가사가 무서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엄마가 혜리의 어린 시절을 혜리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혜리가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에게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단다. 엄마는 섬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어린 혜리에게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단다.

"혜리야. 하늘나라는 진짜 행복하고 좋은 곳이지만 이 세상에서 착한 일 많이 하고 열심히 살다가 늦게 늦게 나이 들어서 가는 곳이야."

엄마는 설명을 하면서도 하늘나라가 그렇게 좋으면 빨리 가는 것도 괜찮은데 왜 이렇게 무서운 지 의아했단다. 혜리가 하늘나라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단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혜리를 못 말리겠다고 말했었다. 혜리는 어렴풋이 엄마에게 같이 하늘나라 가자고 조른 장면이 떠오른다. 엄마 말 때문에 만들어진 기억인지, 진짜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먼 하늘나라를 혼자 가겠다고 했을 리는 없을 것 같다. 엄마는 엄청 무서웠나 보다. 혜리 때문에 아직까지도 겁났다고 말하는 걸 보면.


혜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상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유령처럼 느껴졌다. 유령같이 세상에 실체가 모호한 존재로 변장하고, 지나언니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올해 핼러윈 파티가 기대되었다. <소울 메이트> 다른 언니들은 오뭉치 친구들을 알지도 못한다. 영주 언니는 다섯 모두를 다른 언니들에게 소개해 줄 것이다. 같이 이태원 거리를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멋진 추억을 쌓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언니들을 기다렸어.'

혜리는 <소울 메이트>에 들인 정성이 큰 선물이 되어 돌아와 어릴 때 왕따당했던 상처가 치료되는 것 같았다.

혜리는 다음 날 먹을 카페 라테를 만들기 위해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들어가며 , 언니들을 만날 희망 때문에 방긋 미소를 지었다. 기쁨이 마음속에서 부풀었다. 밤이지만, 거리는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으로 환했다.


동현은 불 꺼진 집에 들어섰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에 접어들었을 때 쓸쓸함이 밀려왔다. 동현은 세상에 혼자 남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두 달이 지났다. 돌아가시기 전, 병실에서 엄마는 거친 숨을 내쉬며 동현의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동현은 엄마의 헐떡거리는 짧은 숨소리를 듣는 게 괴로워 병실 밖을 나가고 싶었지만, 언제 돌아가실 줄 몰라 그럴 수 없었다. 동현은 엄마의 유일한 자녀이자 보호자였다. 무남독녀 3대, 주변에 친척이 없었다. 동현은 오뭉치 친구들에게는 엄마의 장례식을 알리지 않았다. 동현은 오뭉치 친구들에게 살아있는 엄마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오뭉치 친구들은 동현의 아빠가 엄마와 헤어진 후 캐나다로 이민 가서, 소식을 끊었다는 건 안다. 엄마와 같이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부고를 받자마자 달려와서 위로를 해줬었다. 하지만, 동현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을 알리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종합 병원 장례식장과 연결된 상조회사에 엄마의 장례를 맡기자, 가장 작은 호실을 정해 주었다. 엄마의 학교 동료 선생님들과 대학 동창들 몇 명만 빈소를 방문했다. 동현은 교육대학 동창들 중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에게는 스터디를 빠져야 하기 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알렸다. 동현은 돈만 있으면 절차를 지켜 그럭저럭 장례식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해보고 알았다. 동현은 남양주에서 집과 제일 가까운 납골당에 엄마를 모셨다. 오뭉치에게는 고아로 혼자 남는 것을 비밀로 하고 싶었다. 오뭉치 친구들과는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도 동현은 엄마가 에어로빅 운동에 대해서 했던 말을 친구들에게 전했다. 엄마는 방학 때마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에어로빅 수업을 다녔었다. 동현은 오뭉치와 있을 때, 잠깐이지만, 엄마가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서 들떴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엄마가 없다.

동현은 오뭉치 카톡방을 보고 각각의 프로필 사진들을 열어 보았다. 전화번호들만 바꾸면, 모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친구들이다. 올림픽 공원, 야외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나, 어떻게 모였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친구들이지만, 동현에게는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처럼 느껴진다. 임용 고시 스터디 친구들에게선 알 수 없는 경쟁과 긴장이 느껴져서 인지, 훨씬 자주 만나지만 편하지 않다.


미성은 책상 앞에 컴퓨터 화면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앉아 있다. 11시 50분쯤 퇴근할 계획이다. 미성은 오뭉치 카톡방의 공지를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성은 제법 규모가 큰 중소기업에서 공간 디자인을 하고 있다. 작년 인턴으로 취업했을 때처럼 올해도 백화점 의류 매장의 핼로윈 분위기 장식과 놀이동산의 기념품 매장을 담당해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꾸미고 있다. 일단 컴퓨터로 다 작업해서 사장의 승인을 받은 후, 본 매장 작업을 들어가야 해서 며칠 정신없이 바빴다. 토요일인 오늘까지 일을 끝내지 못할 줄 몰랐다. 내일도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오뭉치가 보낸 핼러윈 의상 콘셉트를 보니, 매장을 꾸밀 때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기분이 좀 밝아졌다. 민주는 카톡에 회사욕을 잔뜩 써놓았다. 태움이니 갈음이니 하며 악덕 사장을 넷이서 차례차례 비난했다.

"그래, 사장을 불태우자. 중세 마녀 화형식으로 "

동현이 민주의 비난에 이어 불타는 마녀 이모티콘을 덧붙여 보냈다.

미성은 오뭉치 카톡방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 느꼈다. 민주와 고등학교 3학년 때 미술학원 수업을 땡땡이치고, 올림픽 공원 <소울메이트> 공연을 보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모의고사가 끝난 지 이틀 후였다. 민주에게 전화가 왔었다. 날씨도 좋은 데 주말까지 학원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전화였다. 미성은 전날 집 근처에 있는 올림픽 공원을 지날 때 플래카드에 적혀 있던 공연이 생각났다. 유명 가수와 인지도 낮은 그룹들이 섞인 공연이었다. 미성은 민주와 학원을 가지 않고 올림픽 공원으로 갔다. 둘이서 공연을 보고 있을 때, 공연 스텝이 우연히 나란히 서 있었던 미성, 민주, 혜리, 동현, 선희에게 스티로폼판으로 만든 카드를 5장 주었다. 무대 앞 계단 위로 가서, 관객들을 방향으로 얼굴을 가리며 들고 서 있으라고 했다. 막간 휴식 시간 20분 동안만 홍보룰 해주면, 다음 공연 티켓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소, 울, 메, 이, 트, 오뭉치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초대받은 두 번째 공연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공연을 볼 때, 미성은 <소울메이트>의 의상과 안무, 음악에 예술가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미성은 마음속 깊이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확신하고 있었다. 미성은 공간장식이 재밌다. 친구들에게는 툴툴거렸지만,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보람 있다. 매년 핼러인 의상을 생각하고 제작하는 것 또한 짜릿한 일이다.


민주는 오피스텔로 가려다가 미술 학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일 새벽 5시 30분에 과외가 있다. 새벽 수업을 시작한 지 벌써 3개월째다. 학생의 실력이 빠르게 느는 것도 만족스럽고, 수업료를 비싸게 부른 것도 잘한 일이다.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신봉한다. 민주는 어릴 때 연못이 있는 커다란 저택에서 살았다. 동교동에 있는 개인 주택이었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집이었다. 민주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예중을 지원했고 수석으로 입학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부도가 나서 갑자기 지금 집으로 이사를 했고, 예중에서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민주는 미술을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민주가 미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엄마는 학원비가 비싼 대치동 입시학원으로 무리해서 민주를 보냈다. 아버지는 한동안 방황했지만,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자격증을 따서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고, 엄마는 집집마다 방문하는 학습지 선생님을 하고 있다. 민주는 다행히 홍익대학을 합격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입시 학원에서 강사를 했다. 이제는 꽤 인기 있는 베테랑 강사가 되었다. 서양화 전공이지만, 앞으로도 작가 생활을 할 계획은 없다. 민주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남동생의 학원비도 보내고 있다. 대학을 가면 등록금도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건물에 출입 카드를 대자 문이 열렸다. 3층 학원에 도착하자 민주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이젤들이 놓인 공간을 지나 소파에 잠시 앉았다. 라꾸라꾸 침대가 있는 작은 쪽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깨에 맨 배낭을 내려, 치약, 칫솔, 클렌징 폼을 꺼냈다. 공간 구석에 있는 손을 씻기 위한 개수대에서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며 벽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쳐 보이지 않는 침착한 분위기의 바틀비. 민주는 자신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몰래 생활하던 *바틀비 같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민주는 미술학원 원장에게 수업 외 시간에도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민주는 납작하고 동그란 코인수건을 꺼내 물에 부풀렸다. 내일 저녁은 꼭 오피스텔의 푹신한 침대에서 잘 것이다. 민주는 자신이 바틀비처럼 어느 순간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까 봐 두려웠다. 탈진해서 자신의 삶이 순식간에 무너질까 봐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돌보았다.


*바틀비: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 이름. 그는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머무르다 해고당했다. 바틀비는 어떤 명령에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고용주의 사무실 이전에도 떠나지 않아, 경찰에 체포당한다. 결국 감옥에 갇혀 식사를 거부하다 죽음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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