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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Sep 09. 2024

<크리스마스 파티>

1. 초대장  

*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합니다.

- 드레스코드는 옷을 입지 않는 겁니다.

- 혼자서만 참여가능합니다.


우편함에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이  왔다. 초대장의 겉표지는  진서가 처음 받았을 때와 같은 사진이었다. 실버 라이닝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그 빛들 사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둥근  원이 떠있다. 적혀 있는 내용도 항상 같았다.  초대장을  펼쳤을 때 안쪽 윗면 사진이 바뀌었다. 사진에  작가의 사인처럼  장소가 적혀 있었다. 


" 이번에는 캐나다 침엽수림이네. 나무들이 스트로브 잣나무 같다. 우리 집 아파트 화단에 심겨 있는."


해마다 장소를 바꿔서 열리는 파티라 올해는 어딜까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캐나다 숲 속이었다.

진서는 올해 파티 초대장을 받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파티에 갈까 말까'


작년에는 현우와 참여했었다. 태국 어느 늪지대 같은 큰 담수 연못이었다. 질퍽한 연못을 발가벗고 들어갈 때 찐득거리면서도 미끄러운 진흙의 느낌이 좋으면서도, 영원히 늪에 빨려 들어갈까 봐 겁이 났었다. 다행히 현우가 늪지대를 잘 알고 주변에 꽤 많은 파티 참가자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띠처럼 서로 손을 잡아줘서 옷을 입지 않은 채 무방비로 자연의 연못에 걸어 들어갈 때 찜찜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깊어지지 않는 물속을 걸어가서 무릎을 꿇고 꽤 멋진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진서는 혹시 늪에 있는 수생생물들, 거머리들이 자신의 몸에 붙을까 봐 무서워 뒷걸음질 쳤다. 그럴 때 진서보다 훨씬 키가 컸던 현우가 진서의 뒤에서 감싸며 무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발가벗고 자연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파티를 한 지도 벌써 네 번째가 된다. 이번 파티에 참여하면 진서는 이제 에메랄드 등급이 된다. 처음 참여했을 때는 비기너 등급이었고, 두 번째, 세 번 째는 루비 등급이었다. 일곱 번째에는 다이아몬드 등급이 되고, 파티를 열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고 들었다. 파티 주최위원회에 소속되어 파티를 열고 사진들을 찍고 판매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이다.

7, 8, 9, 10회... 그렇게 네 번 파티를 주최하고는 영구히 파티와는 결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기 때문이다. 늙기 때문이다.

처음 파티에 초대받은 건 진서가 스물아홉 살이었다.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 너무나도 눈부신 빛에, 투명한 계란 같은 모양을  구름 속에서 보았다. 처음엔 UFO인 줄 알았다.

회색 구름들 사이에 빛이 커튼처럼 내려지는 실버라이닝을 진서는 무척 좋아했다. 그 당시 진서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여러 회사에 원서들을 넣었지만, 어디서도 연락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원하는 대로 취업이 되지 않았다. 잦은 면접 탈락은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진서는 마음속에 쌓이는 우울감과 좌절감을 애써 달랬다.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든 시기를 견뎠다.


 "UFO가 아니네!"


 진서는 빛의 계란 같은 곳에 발가벗은 여자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떠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다시 쳐다보았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서있든, 앉아있든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때는 오후 3시쯤이라 버스에 서있던 사람들은 두세 명 정도였고, 대부분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나?"


 진서는 알 수가 없었다. 버스 안에서 하늘을 보는 사람은 진서뿐이었다. 진서가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기 보세요. 하늘에 발가벗은 여자가 떠있어요."라고 외쳤다가 그게 환상이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날은 8월 15일이었다. 진서는 직업 소개 앱을 통해 연남동 기찻길 옆 카페에 일자리를 구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까지 꽤 거리가 있어 버스로 30분쯤 이동해야 했다.

진서는 핸드폰으로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멀어서인지, 사진 속에는 진서가 본 여자의 실루엣이 음영으로 남아있었다. 진서는 그 여자가  실재했는지 착각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빛의 타원 속에 뭔가가 존재한다.

 벌써 햇수로 3년이 넘었다. 진서는 그 경험을 한 뒤로 2달 정도 뒤에 취업이 되었다. 진서의 전공인 환경공학과 관련된 컨설팅 업체에 취업해서 매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외국계 기업이라 처음에는 월급이 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불만족스러웠다. 격무에 시달리는 것에 비해 월급이 적었다. 우리나라가 국제 수준에 비추어 임금이 높은 나라가 되어서 형평성을 위해 임금을 많이 올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진서는 핑계가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고 다녔다.

 그래도 진서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자 모델로 사진을 찍히면 얼굴은 희미하게 처리되며 꽤 괜찮은 수익을 올렸다. 진서는 볼수록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진서의 사진들이 여러 참여자들과의 협업 사진들과 상당히 많은 판매수익을 올렸다. 진서는 짭짤한 부수입으로 3년을 편안하게 보내왔다.

 그런데 올해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해야 할지  진서는 무척 고민이었다. 이제는 현우가 곁에 없다. 그는 진서가 비기너로 크리스마스 파티에 처음 참여했을 때 만났다.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어울렸는데, 호주라 따듯했다. 사람들이 해변에 비키니를 입고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남반구의 크리스마스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특별한 해변가에서 옷을 입지 않고 파티를 하며 사진들을 찍었다. 현우는 큼직한 선물같이 진서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진서가 처음 초대장을 우편으로 받았을 때, 다단계 조직처럼 참여 횟수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서는 다단계를 극도로 혐오했다.

초대장에서 등급 이야기를 읽었을 때 다단계에 빠져 엄청난 빚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등진 지호가 떠올랐었다. 하지만 진서가 봤던 환영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파티에 참석했다. 진서는 지금은 루비 등급이지만, 올해 네 번째로 참여하면 에메랄드 등급이 된다.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 참여자는 에메랄드 등급이었다. [청춘] 파티에 아직 일곱 번이나 참여할 수 있다.

 앞으로 참석만으로 계단 올려 디딜 수 있다는 상승에 대한 욕구가 일기도 했다.


"현우가 없어. 현우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야."

진서는 자신의 상황이 괴로웠다.


 현우는 모델일을 하기 위해 가던 국도에서 큰 자동차 사고가 나서 6개월 동안 병원에 누워있었다.

완벽했던 현우의 몸은 한동안 온몸이 붕대에 싸여 있었지만, 회복되었다. 긴 수술 자국들이 그의 등과 다리에 남은 것 외에 그는 일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을 수 없었다. 현우가 다쳐서 입원하고 한 달 뒤에 통지가 날아왔다. 간단한 문자메시지였다.

  현우는 다이아몬드 단계여서, 자신의 지위를 최대한 즐기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는 유난히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다. 자세가 곧고 단단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어서, 모두 현우의 옆에 있고 싶어 했다. 진서는 정말 운 좋게 그의 애인이 되었다.

 교통사고 후 현우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괴로워하고 비참해했다. 결국  그는 병원을 방문했던 진서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현우의 상처를 통해서 진서는 신기루에서 깨어났다.

진서 자신이 현우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흉터 하나 없는 완벽한 몸이어야만이 파티에 초대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았다.

 진서 본인의 몸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 쓰느라,  다른 참가자들의 몸이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진서에게 단지 이미지나 환영으로 존재했었고 , 진서도 그들에게 마찬가지였다.

 진서는 세 번의 파티에 갔을 때마다 옷을 입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접촉했을 때, 거리가 너무 가까운 데서 오는 숨 막힘을 느꼈다. 현우와의 밀접한 감정이  낯선 타인들과 좁은 공간에서 몸이 닿는 불편함을 견딜 수 있게 했었다.

이제 진서에게 보호막이 없어졌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서야 드러나는 다가갈 수 없는 섬 같은 거리감과 너무 다가갔을 때 느껴지는 공격성과 숨 막힘을 진서는 혼자서는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진서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응시하며, 수많은 생각들의 흐름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야 할까? 젊음을 보여주는 수익을 포기해야 할까? 7번이나 파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남은 건 축복일까? 추락을 위한 사다리일까? 내가 본 환영은 ‘메모리'를 부르며 승천하는 그리자벨라였을까?'


 진서는 거울 속에서 몇 달 새 다크 서클이 생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볼이 쑥 들어가 광대뼈도 두드러져 보였다. 현우에게 버림받았을 때의 아픔이 다시 찔리는 듯한 통증으로 온몸에 전기가 흐르듯 확 지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진서는 현우와 헤어진 후 자신의 젊음이 타원형의 밝은 빛과 함께 사라져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처럼 할머니가 된 것 같았다.

진서는 4번째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지 않기로 결심하며 초대장을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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