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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Sep 11. 2024

<크리스마스 파티>

3. 선우미 예술 기획사

"현우야, 거기 상처들이 잘 드러나게 몸을 좀 말아봐. 등의 상처가 긴 선으로 뚜렷하게 보이게. 팔뚝의 상처들도 일단 보여야 해. 배에 힘주고 등을 더 말아."


강 작가는 눈이 충혈되고, 들떠 큰 소리로 계속 지껄였다.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리며, 플로라이드 사진들을 찍었다.

목소리는  허스키하게 변한 지 오래였다. 목소리가 갈라져 말을 하다 가끔 헛기침도 하고 멈추기도 했다.

스텝들은 목캔디며 물이며, 음료수를 조심스럽게 전해 주려고 했다.

 강 작가는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짜증을 냈다. 그러다 목의 통증이 매우 심해지면 화를 냈다.  작가를 어떻게 이렇게 막 대하는 스텝들이 있냐고 다그쳤다. 한 스텝이 기회를 엿보다 목감기용 캔디형 약과 음료수를 건넸다. 강 작가는 잠시 잠잠해졌다. 약과 음료를 먹은 후 그녀는 지시를 다시 내렸다.


"나르시스, 이카루스, 나의 뮤즈 현우야"


강작가는 벅찬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현우에게 외쳤다.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를 말로 던졌다.

과거 연작들과 최근 일 년 동안 매달리는 연작들을 언급했다. 현우는 수영장에서 등과 잘록한 허리, 동그랗게 위로 올라 붙은 엉덩이가 드러나도록 수영장 벽에 다리 전면을 붙이고 뒤돌아 서 있었다. 그러다 강 작가의 지시에 따라 물속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앉은 채 무릎을 굽혔다. 머리를 숙여 무릎 위에 놓고 등과 팔에 있는 상처가 잘 보이도록 포즈를 취했다. 현우는 긴 노동에 지쳐, 희망과 생기를 잃고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처박고 있는 밀짚모자를 쓴 멕시코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강 작가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외치고 있어서, 현우는 얼떨결에 볼멘소리로 외쳤다.


"왜 죄다 죽은 사람들이에요? 나르시스는 물에 빠져 죽고, 이카루스는 하늘에서 떨어져 죽고.

 저는 선생님이 이카루스 같아요. 좀 쉬세요. 잠도 좀 주무시고."


“시끄러워. 던진다!”


강 작가는 쉰 목소리로 서늘하게 말했다.


현우는 오싹하게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강 작가가 카메라를 번쩍 들어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현우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 놔"


강 작가는 현정에게 제지당했다. 어느새 선미가 나타나 현장을 정리했다.


"여기까지 수영장 작업 끝낼게요. 3시간 쉬고, 오후 4시에 다시 만나요.

현우 씨와 현정 씨는 미술작업실로 오세요. 다른 두 사람은 식사 후 차에서 대기하세요.

샌드위치랑 음료들을 준비했으니, 각자 자기 몫 챙겨서 편한 장소에서 드세요.”


선미는 침착하게 스텝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현정과 강 작가의 팔짱을 끼고, 수영장을 빠져나갔다.

의무실로 가는 것 같았다. 강 작가는 누가 봐도 휴식이 필요했다.


 현우는 수영장 썬 베드 등받이를 세운 후 앉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조금 후, 현정이 돌아와서 수영장 끝쪽 파라솔 아래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현정은 식사를 시작했다.

현우는 강 작가가 현정의 옷차림을 강요했다고 짐작했다. 강작가는 며칠 전 현정의 옷이 지나치게 의례적이라고 말했다. 현정이 경호원으로 온 지 한 달쯤 된 것 같은데 줄곧 흰 셔츠에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현우는 아침부터 보아온 현정의 꽃무늬 원피스가 낯설었다.


 <선우미 아트 에이전시>는 작은 왕국이었다.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강 선우 작가는 조증 삽화일 때는 비정상적인 강력한 에너지에 충만해졌다. 태양이 빛을 쏘듯 말들을 쏟아내며 작업을 했다.

 잠을 자지도, 음식먹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언니이자 정신과 의사인 선미가 강 작가에게 약을 먹이고, 쉬게 하려고 매번 실랑이를 해야 했다. 선미는 강 작가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붓다 탈진하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도왔다. 선미도 최근 들어서는 좀 힘든 내색을 비쳤다. 우려스럽게도 선우에게 약물로 조절되기 어려운, 강한 조증 삽화가 벌써 여러 번 발생하고 있었다.

조증 상태일 때는 공격성이 심해져서 스탭을 향해 폭언을 퍼붓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스텝들은 최대한 조심하며, 강 작가의 기분을 맞추었다. 울증 삽화가 시작돼도 달라질 건 없었다. 아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선우에게는 강한 자의식과 예술에 대한 정열이 있었다.


달 전 우울 삽화가 왔을 때, 강 작가는 커터칼로 손목을 그었다. 다행히 선미가  늦지 않게 발견해서 응급조치를 했다. 그 사건이 발생한 후, 현정이 경호원으로 고용되었다. 현정은 거의 24시간 동안 강 작가를 감시하고 있었다.

 때도 라꾸라꾸 침대를 선우 침대 옆에 놓고 선잠을 잤다. 선우는 예민해서 자주 깼다. 선우는 깨면, 작업을 더하기 위해 침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럴 때 현정은 선미가 지시한 대로 선우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다시 잠들도록  침대에 눕혔다.


현우는 2년 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현우가 입원했을 때, 현우의 병실로 와서 선우가 난리 친 사건을  돌이켜 보면 단막극 같았다.


"네가 어떻게 이렇게 몸을 맘대로 망칠 수가 있지? 용서 못해. 내 작품들을 망치려고 작정했구나."


강 작가는 온갖 말을 지껄이며 화와 짜증을 냈다.  현우는 선미에게 긴급구조 요청을 했다. 당시 현우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붕대를 여기저기 감고 있었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에는 걷는 데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다친 현우는 강 작가의 광기 어린 모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선미는 현우의 연락을 받은 지 1시간이 채 안 되어 경호원과 나타났다. 두 사람은 강선우 작가의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병실을 나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우는 몸의 여기저기에 수술바늘 자국들이 남은 것 외에는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얼굴은 캡을 쓴 덕분인지, 에어백 때문에 생긴 찰과상들이 흉터를 거의 남기지 않고 잘 아물었다. 사고 후 성형외과와의 협업해서 몸의 상처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얼굴 피부의 회복력에 비해 몸과 팔, 다리 피부의 회복력은 더디었다. 몸과 팔다리에 군데군데  파여서 움푹 들어간 긴 상처들이 많아  살이 차오르길 기다려야 했다. 살이 차올라도 흉터가  눈에 띄었다. 부드럽고 탄탄하고 매끄러웠던 그의 몸에 다양한 형태의 상처가 무늬처럼 자리 잡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현우는 아직도 자신이 사고가 난 것은 누군가의 음모라는 의심이 들었다. 교통사고가 난 날, 현우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선우미 예술 기획사>의 별장으로 가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오토바이가 전조등을 하이빔으로 켜고 역주행하며 그의 차로 돌진해 왔다. 하이빔으로  눈이 너무 부셨다.

 현우는 주위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낯선 오토바이를 피해 급하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 순간 가로수와 심하게 부딪혔다. 현우는 엄청나게 큰소리를 듣고 강한 충격을 느꼈다.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식을 잃었다는 것을 의사에게 들어서 알았다.

사고 당시 도로를 지나가던 차의 운전자가 현우 차를 발견하고  119로 신고했다. 인적이 드문 도로라서 사고 후 30분이 지나서였다. 구조되었을 때  현우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차량 앞 유리창은 파손되어 있었고 차체의 앞부분운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다행히 에어백이 작동되어 현우는 간신히 살 수 있었다.


지금도 현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정체 모를 검은 헬멧과 큰 고글을 쓴 운전자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불행하게도 그 운전자의 신원을 알 수 없는 단서는 없었다.

현우는 하이빔을 켜고 마주 오는 바람에 눈먼 장님이 된 경험이 또렷이 떠올랐다. 몸이 두려움의 기억과 억울함으로 떨렸다. 현우는 선우의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

현우는 나쁜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털어내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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