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과 그림자 Sep 25. 2024

<크리스마스 파티>

15. 할아버지의 유산 1

미솔은 갱년기를 겪은 후 아버지 성태를 돌보는 것이 부쩍 힘들어졌다. 몸과 마음이 철이 조금씩 녹슬 듯이 변해갔다. 게다가 미솔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집 밖을 전혀 안 나가려고 했다. 계속 집에서만 생활하려고 해서 미솔의 부담이 더 커졌다.

특히  아버지가 가족들이 외식하러 갈 때 같이 나가려고 하지 않아 신경이 많이 쓰였다.

미솔의 어머니가 몇 년 전 돌아가신 후부터 아버지의 그런 성향이 점점 강해졌다. 지금은 미솔과 심장병 정기검진을 받으러 종합병원을 갈 때 빼고는 집에서만 생활했다.


미솔의 아버지도  말로는 나가겠다고 했다.


“내일은 봄이니 산책 가야지. 아파트 단지라도 걸어야겠어.”


하지만 내일이 오늘이 되면 나가지 않았다. 성태의 5년 전의 활발했던 모습은 실내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을 때만 느낄 수 있었다. 성태 나름의 건강유지 방식이었다.


 5년 전 원주 시내에서 금은방을 하셨던 성철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도 외출을 안 하게 된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

성철 아저씨는 매우 과묵하셔서 두 분이 만나 바둑을 둘 때면 바둑돌 놓는 소리만 들렸다. 둘도 없는 바둑 단짝이 죽은 후 성태는 바둑돌을 놓았다.


성태는 땅을 많이 가진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한때 동네에서 이름난 땅부자였다. 지역에서 신망도 두터워서 55세의 중장년 나이부터 이장이 되었다. 임기가 2년인 이장을 무려 10번을 하고 은퇴했다.

성태는 마을에서 자식 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유명했다.

자녀 다섯을 다 반듯하게 키워, 서울로 4명이나 대학을 보냈다.

현우의 어머니, 미솔만 고향에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미솔도 명문대를 간 형제, 자매 못지않게 똑똑하다고 말했다.

 미솔은 착해서 집안일을 돕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미솔이 기억하기에 형제, 자매는 정말 사이가 좋았었다. 명절 때나 생일 때 부모님의 으로 잘 모였었다.

미솔은 여동생들과 남동생이 이제는 너무 소원해져서 섭섭하고 외로웠다. 동생들은 원주에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미솔은 왜 이렇게 냉랭한 분위기가 되었는지 짐작은 갔다. 장남인 미솔의 오빠 때문이다..


 15년 전쯤 정부의 혁신도시개발 때문에 성태가 소유하고 있던 땅들의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온 집안이 핑크빛 희망으로 물들었었다. 성태의 땅값은  시골 땅값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액수가 되었다. 개발 소식을 듣고 몰려온 외지인들은 비싼 값에 땅들을 척척 샀다.

성태는 외지인들에게 땅을 팔지 않았다. 성태의 땅은 모조리 국가에 수용되었다.

오 남매들은 부모님이 당연히 보상받은 땅값을 나눠주실 줄 알았다. 다는 아니어도 집을 사기 힘든 서울살이에 가뭄의 단비처럼 돈을 주기를 기대했다. 좁은 집을 좀 넓히던지 전세에서 자가로 갈아타던지 조금씩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 성태는 토지 보상금을 장남에게 거의 전부를 줘버렸다.

돈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해서 토지 보상 액수는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다. 어쨌든 미솔의 오빠는 자신이 발명한 아이템을 특허를 내고 실용화한다면서, 성태의 돈 대부분을 끌어다 썼다.

미솔의 동생들은 원주를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편애하고 차별하는 부모님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그러다, 분노가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 사건이 생겼다.


미솔의 오빠는 사업을 시작한 후에도 대기업을 다니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사업체가 부도가 나며 월급을 압류당하는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는 미솔의 오빠를 충실의무 위반으로 해고했다.

해고된 지 얼마 후에 미솔의 오빠는 아내와 함께 아버지 집을 방문하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돌연사했다.

당시 미솔의 첫째 올케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말하며 눈물을 터트렸다. 미솔의 오빠는 운전을 하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외쳤다. 아내의 안전을 위해 차를 갓길을 향해 운전해 정차한 후, 미솔의 오빠는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죽었다.


미솔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례식장에서 넋이 나가신 모습으로 혼잣말처럼 되뇌던 말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부모님은 너무나 애끓는 모습으로 "네가 이렇게 가버릴 줄 몰랐다."는 말을 울면서 수없이 말했다.


                                                                    *


 원주 시내에 위치한 미솔의 집과 아버지의 집은 차로 15분 정도 걸렸다.

미솔은 아버지를 효율적으로 돌보려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파트를 옮기자고 여러 번 아버지께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침, 미솔은  아버지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마음이 쓰였다.

예감이 이상해서 미솔은  결국 아버지 집으로 차를 몰았다.

미솔은 현관문을 들어서서


 "아버지..... 아버지......."


여러 번 불러 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가니, 이불장 문이 열려 있었다.

장롱 속 정리된 이불들 아래 두 개의 서랍장 중 아래 서랍이 열려 있었다.

그 옆으로 서랍에 있던 아버지의 옷들이 가지런히 잘 개어진 채로 꺼내져 방바닥에 놓여 있었다.

옷들이 흩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도둑이 든 것은 아니었다.

 미솔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랍장 속을 들여다보았다. 금덩이었다.

작은 정사각형의 금덩이들과 그보다는 꽤 큰 직사형 모양에 1킬로그램이라고 찍힌 금덩이들이 차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미솔은 놀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더 걱정되었다. 다시 아버지를 부르며 얼른 안방 화장실로 갔다.


"아버지!"

미솔은 큰 소리로 외쳤다.


 미솔은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앞으로 넘어진 채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달려가 얼른 아버지의 몸을 돌려 정면으로 반듯하게 뉘었다. 얼굴이 많이 다쳐 있었다. 코도 부러져 보였다. 피가 얼굴에 범벅이 되었고 뺨 쪽이 찢어져 있었다. 의식은 전혀 없어 보였다.

미솔은 얼른 119에 전화했다. 아파트 위치를 알리고 현재 환자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몸은 따뜻한데 제가 너무 당황해서 숨소리가 들리는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미솔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는 가슴까지 피가 묻어 있었다. 미솔은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갈비뼈가 부러져 장기를 찌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몸을 만지는 것이 겁나고  조심스러웠다.

미솔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장실을 살폈다. 아버지가 어쩌다 넘어졌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미솔은 당황해서 정신이 없어서인지, 무엇이든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미솔은 아버지의 모습을 울면서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불현듯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서랍장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옷들을 원래대로 금덩이들 위에 놓은 다음 서랍장을 닫고 이불장도 닫았다.

얼핏 보았을 때 금덩이들이 많아 보였지만, 장롱문을 닫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슴이 쉴 새 없이 뛰었다. 아버지가 걱정되어 가슴이 내려앉다가도, 서랍 속의 황금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들떴다.


"저 금덩이들은 뭐지? 어떻게 하지?"


 미솔은 궁금한 게 많았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미솔은 현관문 벨소리를 들었다.


119 대원들이 도착했다. 미솔은 안방에서 얼른 달려 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대원 2명이 이송용 침대를 끌고 들어왔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이 유심히 아버지의 상태를 살핀 후 동료에게 말하였다.


"아직 사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단 다발성 골절이 의심되니 주의하세요."


그는 미솔에게도 지시 상황을 말했다.


"이송될 동안 보호자도 동반해 주세요. 구급대원도 함께 할 겁니다."


 미솔은 아파트 문을 잠글 때 불안했다.


'혹시 집이 비어있는 것을 알고 누가 침입해서, 금을 다 가져가면 어쩌지?

 그렇다고 직장 간 남편이나 학교 간 현우를 부를 수도 없고.'


 119 구급차는 원주 Y대학병원으로 달렸다. 미솔의 아버지는 일단 응급실 침대로 옮겨졌다.

미솔은 치료와 입원을 위한 여러 검사들이 진행되는 동안에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동생들 중 원주로 당장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바빠서 주말이 되어야 올 수 있었다. 심지어 두 명은 주말에도 일이 있어 최대한 시간을 내보겠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빨리 못 내려가서 정말 미안하다며 미솔이 좀 수고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늘 이런 식이네.'


미솔은 이번에도 이 응급상황을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동생들은 부모님을 걱정하고 안타깝다고 말할 뿐 모두가 시간이 없었다.


“똑같이 24시간을 살고 있는데 얘네들은 시간 도둑들이 시간을 훔쳐가나?”


미솔은 아버지가 쓰러진 상황인데 동생들 모두가 시간을 낼 수 없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았다.

물론 지금은 여동생들이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안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째 올케는 오빠가 죽은 후 3년쯤 뒤에 재혼하고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둘째 올케도 간호사라 3교대 근무에 쌍둥이 남매를 키우느라 바빴다. 남동생은 철저히 아내와 쌍둥이들 중심으로 움직였다. 셋째인 여동생은 마침 고등학교 동창들과  이태리 여행 중이었다. 일 년치 연차를 다 쓰는 거라고 투덜거렸었다.

막내 여동생 하나만 토요일에 내려온다고 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닷새나 뒤에 나타나는 것이다.

미솔은 어머니가 아프실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서 씁쓸함과 동시에 기시감을 느꼈다.


"뭐, 내려와도 할 일은 없으니까."


미솔은 스스로를 달랬다.


한편으로는 동생들이 무심한 것이 편안하기도 했다. 

이불장 속 서랍의 금에 대해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물어봐야 했다.


"아버지는 그 많은 금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성철 아저씨가 원주 시내에서 금은방을 했었지.

바둑을 두신다고 두 분이 자주 만나시긴 했어. 금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미솔은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기기로 한 후에 간신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오전에 본 쓰러진 아버지의 참혹한 모습 때문에, 잠깐 보았던 금에 신경 쓰는 것이 미안했다.

일단 환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이 앞서서 의식적으로 금에 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아버지 입원이 우선이야. 서랍 속의 금은 나중에 생각하자. 아버지의 건강에만 집중하자. 


미솔은 산만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이전 14화 <크리스마스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