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솔의 아버지는 응급상황이었고 가족들은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미솔이 응급실에서 거의 다섯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 아버지는 여러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검사 결과가 나와야 수술 여부가 결정되었다.
미솔은 간호사의 문진을 대답하고 입원절차를 밟았다. 미솔은 체력적으로 피곤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미솔은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남편과 현우에게 도움을 청했다. 거의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였다.
현우는 흥업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달려왔다. 남편도 퇴근하자마자 응급실로 왔다.
미솔은 남편과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집으로 왔다. 미솔은 밥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마루 소파에 쓰러져 잠들었다. 미솔은 자다가 자세를 바꾸며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다.
미솔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얼마나 지난 걸까? 다음 날 아침이 된 걸까? 마루의 불은 집을 들어서며 켠 대로 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루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네."
남편에게 전화해 봤지만 그때까지도 검사 결과가 안 나왔다. 남편은 수술 여부를 결정할 교수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미솔은 아버지가 입원할 때 필요한 휴지, 물휴지, 슬리퍼, 치약, 칫솔, 수건, 양말 등을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꼬르륵, 꼬르륵"
미솔은 배에서 신호가 와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솔은 냉장고에서 여러 반찬통들을 꺼내 반찬들을 큰 접시 하나에 덜었다. 밥까지 접시에 담은 후 식탁 위에 놓았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아침에 끓인 미역국도 데웠다. 식탁 의자에 앉아 하루의 첫 끼를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쓰러진 아버지의 모습과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어머니가 암을 발견하고 처음 수술했을 때, 수술 전 금식기간에 미솔은 같이 굶었었다. 환자에 대한 걱정, 미안함에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를 잘 돌보려면 간병하는 사람은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미역국을 떠먹으며 미솔은 어머니의 돌아가신 과정이 떠올라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미솔은 오후 11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수술 여부를 결정할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주치의는 수술을 하기에는 뇌혈관이 너무 상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버님의 심장에 고인 피에서 혈전이 발생했어요. 아버님이 기침을 하면서 혈전이 뇌로 튀어 뇌혈관을 막았어요.
꽤 큰 혈관이 막힌 상태에서 피가 흐르다 병목 현상이 일어났고요."
나이가 현우 또래로 보이는 주치의는 피곤하고 지쳐 보였지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뇌출혈이 워낙 심한 상태라 현재로서는 수술이 불가능해 보여요.
게다가 뇌출혈이 일어난 부위가 전두엽 부분이라 수술해서 깨어나도 식물인간으로 계속 누워계셔야 할 수도 있어요.”
주치의는 정밀 검사들을 종합해 보면, 환자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킨 후 며칠 지켜본 후 다음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심장은 뛰고 있지만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태였다.
미솔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기로 합의한 내용을 담당 의사에게 전했다.
미솔의 아버지와 동생들은 위급상황이 생겨도, 기도 삽관을 하지 않고 전기충격기, 혈압상승제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원주 Y대학병원의 중환자실은 보호자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전문 간호사들이 집중적으로 돌보는 시스템을 실행했다. 환자의 가족들은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한 시간 동안만 면회가 허락되었다. 미솔은 동생들에게 카톡으로 Y대학병원 중환자실의 간호사전담 간병제도와 면회시간을 알렸다.
미솔의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현우의 가족들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의 입원 과정에 너무 지쳐서 모두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씻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미솔은 남편과 아들이 직장과 학교에 간 후 비로소 시간이 생겼다.
미솔은 큰 핸드백을 들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 미솔은 아버지 집에 들어서자 숨을 크게 마시고 들어쉬기를 여러 번 한 뒤 이불장 문을 열었다.
깔끔한 미솔과 아버지의 성격대로 계절별 이불들이 말아 정리되어 있거나 꺼내기 쉬운 사이즈로 접혀 있었다.
그 곁에 베갯잇들은 두 개씩 같이 접혀서 큰 사각 플라스틱 바구니에 꽂혀 있었다. 책을 책꽂이에서 뽑듯 뽑아서 쓰게 정리되어 있었다. 홀아비 냄새라는 쾌쾌하고 눅눅한 냄새가 방에 안 나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자주 베갯잇을 갈았다. 아버지는 침대에 베개를 두 개 두었다.
미솔은 오래전에 이불장을 정리했다. 한번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에는 아버지가 알아서 잘 유지했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점검만 했다. 정리된 이불들 아래 두 서랍장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두 분의 속옷이랑 양말 넣어두니 만지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미솔이 아예 손대지 못하게 했다.
미솔도 굳이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관심이 가지 않았던 장롱이 이제는 [나니아 연대기]의 특별한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미솔은 심호흡을 한 뒤 위에서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옷들을 꺼내 옆 옷장에 기대어 쌓아 놓았다. 금덩이들이 드러났다.
금덩이들 중 몇 개는 5돈, 10돈으로 작았다. 어떤 것은 금은방 보증서에 5돈짜리 금이 투명 테이프로 붙어 있기도 했다. 십이간지의 작은 동물들 모양의 금붙이도 여러 개 있었다. 아마 할머니가 모아 놓으신 것 같았다.
미솔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장식장에 열두 동물의 금인형들을 순서대로 전시해 놓았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동생들도 이 금붙이 인형들을 보면 기억이 날 것이다.
미솔은 금인형들은 동생들과 나누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1kg짜리 골드바에 대해서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나, 둘, 셋,...., 열다섯... 스물."
작은 금덩이들 아래 깔려 있는 골드바는 무려 스무 개나 되었다. 미솔은 잠깐 멍한 채로 앉아 있었다.
"이럴 수가. 너무 많다."
미솔은 자신이 가져온 자신의 핸드백에 골드바 3개만 넣고 나머지는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다 가져기에는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
미솔과 동생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날을 잡아 유품을 정리했다. 동생들과는 아버지의 집을 팔아 똑같이 상속을 받기로 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지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 의식을 회복하거나 눈을 한 번도 뜨지 못했다.
아버지 깨서 돌아가신 후 4남매는 장례식에서 만났다. 동생들은 미솔에게는 그동안 와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미솔은 어머니의 장례식 때처럼 너그럽게 이해했다. 미솔은 어머니 때와 달리 이번에는 꼭 유품정리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생들은 오랜만에 미솔의 의견을 따랐다.
상속을 공평하게 받으려면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오랜만에 작동되었다.
아버지의 가구들은 대부분 낡아 버리기로 했다. 원목과 물소 가죽으로 된 소파는 그다지 낡지 않아서 남동생이 가져가기로 했다. 미솔은 동생들이 있을 때, 이불장을 열었다. 옷장도 열어 아버지 옷들과 이불들을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아버지의 옷들과 이불들 중 동생들이 가져가고 싶어 하는 품목이 없어 다 버리기로 했다. 가구들을 비워야 아파트 1층 마당에 재활용 스티커를 붙여 내놓을 수 있었다.
미솔은 자신은 부엌을 정리할 테니 여동생 둘은 장들을 정리하고 남동생은 거실을 정리하라고 시켰다.
남동생은 소파를 용달차로 서울 자신의 집으로 배달시켰다. 남동생은 먼지가 많은 거실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한 후 여동생들의 일에 합류했다.
얼마 후 안방에서 여동생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어머 어머, 이것들 좀 봐. 아래 서랍장 안에 금덩이들이 있어. 금붙이들이 다양하게 꽤 있네."
뜻밖의 횡재에 4남매는 가정용 작은 저울로 무게를 확인하며 공평하게 나눠 가지기로 했다. 미솔은 자신의 띠인 돼지모양 금붙이만 집으면서, 나머지는 동생들이 가지라고 양보했다.
동생들은 미솔이 제일 고생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을 하고는 미솔의 말대로 했다.
모처럼 훈훈하고 가족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미솔의 동생들은 미솔이 그동안 장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
미솔은 처음에는 1킬로그램 골드바 스무 개를 나눠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3킬로그램 골드바를 핸드백에 넣어 집에 가져오면서 나머지 골드바 17개를 나르는 일이 쉽다고 깨달았다.
자신만이 아는 보물이었다.
아버지는 토지보상금을 죽은 오빠에게 다 주지 않았다. 아마 반만 줬으리라.
부모님은 15년 전에 금값이 지금보다 훨씬 싸서 골드바를 20개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분은 큰 아들이 죽자 죄책감을 느끼신 것 같았다. 두 분은 토지 보상금을 아들에게 다 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돈이 더 있었으면 아들의 사업이 성공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부모님은 장남의 죽음을 뼈에 사무치게 안타까워했다.
미솔은 금에 대한 아버지의 계획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금을 사준 성철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골드바를 판다는 생각을 못한 것일까?”
미솔은 아버지가 끝까지 금에 대해서 아무 말씀을 안 하신 이유가 궁금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미솔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알려주실 경황이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는 언젠가는 자신에게 조용히 알려 주셨으리라 짐작했다.
미솔은 며칠에 걸쳐 골드바를 날랐다.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현우가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을 때 미솔은 기뻤다.
아버지의 집을 팔아 나눈 돈에 1킬로 그램 골드바를 판 일부 금액을 더해서 현우에게 부쳤다. 오천만 원은 10년마다 자식에게 증여세 없이 줄 수 있는 액수기도 했다. 미솔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상을 줬다고 생각했다.
잠깐 느꼈던 양심의 가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졌다. 자신이 다 가지는 것이 너무나 마땅하게 느껴졌다.
유품을 정리할 때, 동생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미솔은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확실히 굳혔다.
동생들이 자신을 이렇게 칭찬하고 감사해하는데, 사실을 밝히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겼다.
미솔은 굳이 진실을 밝혀서, 재산분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똑같이 나누기에는 자신의 희생이 너무 컸다. 미솔이 상속을 좀 더 받아야 한다고 하면, 동생들은 싫어하고 기분 나빠할 것이 뻔했다. 동생들은 말로만 수고했다고 하고 감사해했다.
집 판 돈을 똑같이 나누고 금붙이를 많이 양보했지만, 동생들 중 아무도 미솔에게 작은 선물도 하지 않았다.
미솔은 1년에 두 번, 어머니, 아버지 제사 때 같이 만나기로 동생들과 약속했지만, 누구 집에 모일지는 정하지 못했다. 남동생은 아들인 자신이 해야 하지만, 상황이 안된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결국 미솔의 집에서 두 분의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현우가 외손자지만 장손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우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어. 마땅한 일이야.”
미솔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솔은 항상 미소 띤 환한 얼굴로 부모님의 제사와 동생들을 바지런히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