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진오는 [청춘]과 결별했다. 오랜 시간을 [청춘]과 함께 했던 사진작가들도 별도의 그룹을 만들어 [청춘]을 떠났다.
진오는 [청춘]의 인쇄와 판매를 담당했던 업체를 [청춘]에서 독립한 작가에게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인계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개개인의 청춘 시절은 그 자신들이 언제 빛을 잃고 언제 사라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했다. 사진 그룹 [청춘]은 갑작스러운 장재혁 작가의 죽음 후 정리되었다.
3년 전 진오는 진서와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난 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진오는 [청춘]과의 사업관계를 청산하려고 마음먹었다.
사업체의 매각이 성사되려고 할 때, 재혁의 사진촬영 작업 중 한 청년이 뛰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춘 소속 모델들 간의 성추행 고발 사건이 방송에 보도되었다.
피의자로 지목된 남자 모델이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화가 나서 여자 모델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지하철 5호선 여자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두 사건들 때문에 진오의 사업체를 인수하기로 했던 사람이 머뭇거렸다. 그는 계약을 세 차례 연기했다. 그러다 결국 진오와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알려왔다.
진오는 15년 이상 [청춘]과 인연을 맺어 왔다. 진오는 어려움에 빠진 [청춘] 관련 사업체를 큰 손실을 감수하며 청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약은 없지만 [청춘]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했었다.
사진계의 큰 별, 장재혁 작가 사망
2022년 8월 15일, 뉴욕 미드타운 7번가 54 빌딩 옥상에서 비상 착륙 후 발생한 화재로 헬리콥터 조종사와 장재혁 작가가 사망했다. 맨해튼 34가의 헬리포트에서 이륙한 후 11분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뉴욕 하늘은 굵은 빗줄기와 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사고 헬기는 아슬아슬하게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가 안갯속으로 사라졌다고 목격자는 전한다.
화재는 신속하게 진압되었고, 빌딩 내부의 추가적인 인명 피해는 없었다. 뉴욕시민들은 순간 굉음을 듣고 9.11 사태의 악몽을 떠올려야 했다. 그러나 정확한 사고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테러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고 장소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맨해튼 중심 "타임스퀘어"와 불과 몇 블록 떨어져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진오는 이 사건을 뉴스로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믿기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같은 사람이 어이없는 사고로 죽다니.”
진오는 삶의 허무함을 다시 느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르면서 눈물이 고였다. 재혁의 죽음은 한동안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재혁의 아내 정숙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청춘 ] 사진 그룹을 해체했다.
정숙은 재혁을 추모하기 위한 사업만 진행하기로 했다. 정숙은 재혁이 유언장에 제시한 모든 의견을 고문 변호사와 회사 실무진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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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혁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다가 뉴욕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운동을 참 좋아했다.
삼사십 대에는 골프, 사이클, 테니스를 자주 했다. 하지만 사이클 외에 골프와 테니스는 그룹으로 하는 운동이라 시간을 지나치게 뺏겼다. 여러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것도 번거로웠다.
재혁은 골프와 테니스 치는 횟수를 한 달에 두세 번으로 줄였다. 대신 매일 2시간 정도 피트니스 클럽에서 기구를 사용한 근력 운동과 트레이드 밀에서 걷기 운동을 했다.
재혁은 체력이 필요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난도가 높은 자세로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근력을 유지해야만 사진 작업들이 가능했다. 모델들도 무척 힘들어했고, 재혁도 고생이었다.
자연과 벌거벗은 완벽한 몸을 가진 젊은이들의 조화 혹은 부조화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했다.
나무 위에 걸려 있는 모델을 가까이 찍기 위해서 재혁도 위태롭게 높은 나무에 매달려 사진을 찍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물론 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사다리형 촬영 의자가 있기는 했지만, 대자연 속에서 그 정도 기구들은 보조적인 수단이었다.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날, 재혁은 운동을 해도 괴로운 마음이 떨쳐지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머릿속에 팽팽한 줄들이 끓어지기 직전까지 당겨져 있었다.
당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은 재혁에게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
부질없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소멸,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환성이 재혁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재혁은 엔트로피를 다루는 < 열역학 제2법칙>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재혁은 고등학교 때 물리공부에 푹 빠졌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서 원리를 발견하는 과정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재혁은 자연에서 관찰되는 단순한 과일의 떨어짐, 꽃잎을 날리는 바람에도 엄청난 과학적 법칙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재혁은 자연현상의 물질 상태 또는 에너지 변화의 방향을 설명해 주는 물리학의 열역학 제0~3법칙에 매료되었다.
재혁은 대학을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자연계의 다양한 현상들을 간결한 법칙들로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리학을 공부할수록 수식으로 설명하는데 높은 수학적 지식들이 필요했다. 재혁은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흥미를 잃었다.
대신 재혁은 자신이 인식한 것을 수식이 아닌 예술적으로 세상에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혁은 3학년 때 사진학과로 편입했다.
재혁은 물리학의 법칙을 예술에 적용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우주의 엔트로피는 자발적인 과정에서는 항상 증가하고, 가역적인 과정에서는 변하지 않는다.'는 원리가 재혁의 예술에서 흐르고 있었다.
전체 시스템의 완벽한 상태에서 무질서, 쓸모 없어지는 무언가가 발견되고 정의된 게 엔트로피다.
세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언젠가는 소멸하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 끝에는 소멸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재혁에게 자연의 순환성은 소멸과 반대되는 부활의 계념이었고, 청춘의 몸을 가진 모델들은 완벽하기에 부서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제기랄, 내가 뭘 한 거지? 내 작업에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시작한 건가? 제길, 제길, 제길"
재혁은 수십 년을 모델들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며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이주일 전에 모델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버렸다. 스물 한 살인 남자 미대생이었다. 죽은 모델이 우울증 병력이 있다는 것은 자살 사건이 일어난 후 파악되었다.
재혁의 작업 방식에 대해 최근의 사건들 전에도 비판 여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혁의 사진 작품에 대해서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논란은 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속되어 왔다.
재혁은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논쟁 자체에 대답할 필요조차 못 느꼈다. 비평가들은 말만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것도 못한다. 잘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물어뜯는 것이다.
재혁은 작품 속 모델들이 지나치게 완벽한 신체비율과 피부를 지녔다는 비판부터 젊음을 소비하기로 작정한 양아치라는 비난까지 무시하고 있었다.
비평가들은 재능 없는 시비꾼에 불과했다. 본인들은 재혁처럼 완벽하게 미학적으로 완성된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지도 못할 게 뻔했다.
비평가들은 그럴 만한 재능이 있다면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비난할 때에는 재혁의 멋진 사진들을 예술적인 관점이 아닌 도덕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려고 한다.
"아, 이 상황, 끔찍한 상황이 뭐지?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뭘 한 거야?"
재혁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남녀 청년들의 발가벗고 숲으로, 바다로, 절벽에 있다. 청년들은 위태롭게 도발하고 공존한다. 그들은 달리고 공중을 향해 뛰어오르고 껴안고 있다.
불꽃이 튀는 폭죽 속에 발가벗고 웅크리고 있는 제인(Jane)은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촬영을 끝냈을까?
재혁은 몇 년 전, 아니 적어도 7~8년 전쯤 자신이 시도하려다 실패했던 프로젝트도 떠올렸다.
에어로 버블 프로젝트는 위험했지만 인명 사고는 나지 않았다.
구름 때문에 촬영에는 실패했고 멋진 실버라이닝 사진들만 얻었다.
커다란 투명 아크릴 볼 속에 모델을 투명 안전벨트로 고정한 후 경비행기에 강한 쇠줄로 매달아 하늘 높이 올렸다.
비행기 안에서 아크릴 볼 속 모델을 찍는 계획이었다. 하늘에 뜬 둥근 볼이 햇빛을 반사할 때 모델의 아름다운 몸을 클로즈업할 계획이었다.
에어로 버블 프로젝트는 야심 찬 기획과는 달리 실패로 끝났다.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을 때는 그럴듯했지만,
실행했을 때는 구름 때문에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그 당시 119 전화가 폭주했다. 서울 하늘 한가운데 UFO가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어디로 신고해야 할지를 몰랐다.
112도 사람들이 기억이 나서 눌렀다가 112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묻는 경우도 속출했었다.
재혁은 에어로 버블 프로젝트 때문에 [청춘] 내부에서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별다른 소득이 없는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재혁이 사진을 합성하거나 포토샵을 사용하면 될 일을 뭐 하러 비싼 비용을 들여 실제로 찍느냐고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재혁은 눈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재혁은 이제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은 어떤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얻어내길 원했다.
그런데 이번 사고들은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 깊은 성찰에 빠지게 됐다.
‘나는 청춘 포르노를 찍어온 걸까? 젊은이의 목숨값으로 이것을 유지해야 하나?’
재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난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죽은 두 모델들을 담은 작품들을 볼 때 특히 마음이 불편했지만 작품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작품도 생명을 가진 존재였다. 작품들은 만들어진 순간 존엄성을 부여받아 재혁과 무관하게 존재했다.
자신이 만들어냈다는 이유만으로 작품들을 훼손할 수 없었다.
재혁은 자신의 작품 속의 죽은 젊은이들을 수도 없이 보고 또 보았다. 죽은 희준과 지수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인 것 같아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왔다.
벼랑에서 자살한 희준의 사건이 있은 후 일주일 뒤 다른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는 18세 소녀 지수였다.
19세 성인이 되기에 3주가 모자랐다. 스태프들이 안일하게 고용했다.
재혁은 자신이 실무적인 것을 꼼꼼히 챙기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후회가 밀려왔다.
재혁은 인생에서 25년을 무사히 작업했다고 해서 다음 1년이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긴 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죽은 지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쌍꺼풀 없이 매우 길고 큰 눈은 동양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눈을 내려 뜰 때는 반가사유상의 얼굴 같이 보였다. 관조적이고 차분하며 고귀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지수는 회원 추천으로 모델로 발탁되었는데, 본인이 제출한 서류에는 19살로 적혀 있었다.
지수는 같이 작업을 한 남자 모델과 사귀었다.
사건은 남자 모델이 지수에게 결별을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지수는 연인관계를 지속하길 원했다. 그러나 지수는 뜻대로 되지 않자 전 남자친구인 모델을 성폭행범으로 신고했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 큰 문제로 다루어졌다. 전 남자친구 모델은 무고하게 고소된 것에 억울해하다가, 사건이 언론을 통해 왜곡되게 알려질수록 격분하였다.
결국 전 남자친구는 지하철 여자 화장실에서 지수를 살해했다.
[청춘]은 지수가 고용 당시 미성년자였고 최근에 사망사고가 일어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는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재혁은 기자회견을 열어 머리 숙여 사과했다.
희준의 경우는 교수 부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 상태라 방황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새 애인이 변호사라서 아버지와 법률적으로 금전적인 보상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었다.
희준의 친어머니는 냉정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는 어떤 보상으로도 희준은 돌아올 수 없다며, [청춘] 대표의 구속을 원했다.
"나는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 끝에 재혁은 마음이 가는 대로 일단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도덕적 비난은 심했고, 재혁은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과 동굴이 필요했다.
운동을 마친 후, 재혁은 뉴욕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정숙에게 이해를 구해야 했다.
재혁은 정숙이 허락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