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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2012)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 리뷰 - (3)

by 테리

친밀함 (2012) -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 Like Nothing Happened 리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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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아트하우스에서 진행되는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 Like Nothing Happened'는 데뷔작 <아무렇지 않은 얼굴>부터 국내에 정식 개봉되지 않았던 초기작 5편을 상영합니다. 본래 8월 6일부터 19일까지로 예정되었던 상영 기간이 연장되어, 적어도 며칠 더 극장에서 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획전의 타이틀 'Like Nothing Happened'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의 영문 타이틀입니다.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 속 등장인물은 모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아사코가 과거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와 교제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체했던 료헤이, 오토의 불륜을 눈치챘음에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가후쿠, 자신이 과거에 카즈키와 교제했다는 사실을 친구 츠구미에게 밝히지 않고 자신의 상상 속에 숨겼던 메이코, 엔딩 직전까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분노와 공격성을 감췄던 타쿠미까지. 우리가 하마구치의 최근작에서 보아왔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장하며 진실을 은폐합니다.


이러한 공통점은 감독의 초기작부터 반복되어 온 연출 스타일입니다. 아카데미 수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 수상 등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름을 수식하는 화려한 수상 경력이 생기기 전부터, 그의 작품 세계는 착실하게 축조되어 왔습니다. 저 또한 이번 특별전 덕분에 하마구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지탱하는 정신적 뿌리와 같은 다섯 편의 초기작을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이번 기회에 관람하길 바라고, 영화를 본 분들에게는 저의 부족한 글이 영화 속 특별한 순간을 기억에 오래 남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 상영작 목록

1. <아무렇지 않은 얼굴> (2003) | 43분

2.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2009) | 58분

3. <친밀함> (2012) | 4시간 25분

4.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 (2013) | 54분

5. <천국은 아직 멀어> (2016) | 38분



o1080153215056001195.jpg 친밀함 (親密さ, 2012 | 4시간 25분)
연극 연출가인 레이코와 료헤이는 '친밀함'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공통으로 연출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들이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보여주고, 후반부는 이들이 실제로 펼치는 연극 무대를 보여준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물론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에 가깝다. 자기 생각을 말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할 때 생기는 손실은 생각보다 크다. 언어를 전달하기 위해 눈빛과 몸짓, 뉘앙스와 맥락 등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이 동원되는 이유도 전달 과정에서의 손실을 우려한 인간의 본능에 기인한다. 우리의 생각은 복잡하고 다층적인데, 이를 글이나 말로 옮기는 언어는 제한적이고 단순해서 그렇다. 언어를 아무리 잘 활용한들 상대와 주고받으면서 필연적인 오해와 오역이 일어난다. 심지어, 이 언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윤색되고 유실될 것이다. 전해지지 못한 나머지 언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료헤이는 자신의 글을 창작이 아닌 '바닥 어딘가에서 주워 온 것'이라 설명하며 말 같은 건 어디에나 널려있다고 주장한다. 하마구치 감독이 말하는 언어는, 현실을 가장하는 영화와 연극처럼 가짜에 더 근접한 무언가다. 언어는 줄기를 꿰뚫지 못하고 그 주변을 끝없이 둘러싸기만 하는 무수한 잎사귀로 보인다. 언어의 확장이 연극이고, 연극은 극중극으로서 영화와 겹치는데, 가짜로 가짜를 꾸미고 가짜를 진짜인 듯 연희하는 불확실한 행위는 하마구치 감독의 작품 세게를 구축하는 탄탄한 층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영화들은 필모그래피 내내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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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려고 해도 전해지지 않는 마음, 의도치 않은 오해를 경유하는 순간들, 언어를 초월하는 특별함이 피어나는 기적의 찰나. <친밀함>의 달콤쌉싸름한 장면들은 '가짜로 만든 가짜'를 뛰어넘는 무언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하마구치의 영화는 언어 만능주의 같은 게 아니다.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에서 불륜의 진실은 에이코의 내레이션으로 사전에 박제되며,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오토의 음성은 가후쿠를 통제하는 명령어가 되어 인트로 이후 영화 내내 그의 심리를 지배한다. 오히려 언어의 한계가 영화 초반부터 친절하게 명시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떠나는 간고한 모험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 된다.


<친밀함>이 감지하는 불통 또한 언어의 한계와 그로 인한 오해에 연유한다. 그런데, <친밀함>은 영화 속 현실에 해당하는 1부와 극중극(픽션)에 해당하는 2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 오해만이 비로소 참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카메라는 그렇게 발생한 우연들을 부단히 관측한다. 1부에서 발생한 여러 갈래의 오해와 불통은 1부의 엔딩인 17분 길이의 다리 롱테이크 장면에서 일시적으로 봉합된다. 말투부터 제스쳐까지 개과천선을 이룬 2부 엔딩의 타입-투 료헤이와 비교하면, 꽉 막힌 1부 료헤이와의 화해는 레이코 입장에서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연속되는 불통 내에서 한시적이나마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전하는, 지극히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레이코는 료헤이와 함께 걸어가며 소중한 것이 전달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소중한 것에는 료헤이가 없었던 시간, 다시 말해 열차를 탄 료헤이에게 저 멀리 다리 위에서 손을 흔들고 키스를 보낸 시간이 포함된다. 료헤이는 "혹시 나 보였어?"라는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고, 다리 위에서도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지만, 그 소중한 시간이 전해진 것 같다던 레이코의 예감은 2부 엔딩에서 정말 현실이 된다.


"뭔가... 소중한 게 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중한 게... 무엇인가요?"


"시간. 너랑 같이 한 시간, 네가 없었던 시간."

"전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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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드라마, 후반부는 극중극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친밀함>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초기 형태로 보이기도 한다. 먼저, 연극 연출자 겸 배우인 가후쿠, 시나리오 작가인 오토의 직업은 각각 료헤이와 레이코의 설정으로부터 그대로 전승되었다. 연극 속 역할을 남주가 이어받게 되는 점 또한 흡사하다. 직접 무대에 서는 것만큼은 끝까지 고사하고자 했던 가후쿠는 결국 료헤이처럼 자신(과 오토)의 연극 속 바냐 아저씨를 연기하게 된다. 원래 역할을 맡았던 다카츠키가 연극 시작 전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었기 때문인데, <친밀함>에서 연극의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인물(타야마 미키오)가 전시 상황의 한국으로 떠난 것과 겹친다. 다카츠키는 자기 세계를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인물, 타야마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폭력의 온상 안으로 뛰어든 인물이다. 료헤이는 연극이 끝나고 자신도 민간 경비대에 지원해 타야마의 뒤를 따라간다. 이웃 나라의 전시 상황보다 앞으로 있을 연극과 아르바이트 일정이 더 중요해 잠을 청하던 료헤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세계를 외부와 연결하려는 결심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가후쿠는 어떤 방식으로 다카츠키가 앞서 걸었던 길을 쫓았는가? 다카츠키는 가후쿠의 차 안에서 오토의 상상 속 소녀 이야기를 전한 뒤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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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를 마친 다카츠키는 차에서 내리고, 차는 그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홀로 서 있는 다카츠키를 응시하며 멀어지는 시점 쇼트는 <아사코>에서 유사하게 사용되었었고, 몇년 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시점의 주인을 더 적극적으로 흐리는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라는 마사키의 대사 이후 바냐 역의 다카츠키가 쏜 총성이 먼저 울리고, 이어서 화면도 연극 리허설로 전환된다. 이때, 마사키는 영화 시간으로 10분이 넘는 긴 대화 중 어느 부분에서 거짓말 여부를 판별했을까? 바로 오토의 소녀 이야기다. 본래 소녀의 대사였던 "내가 죽였어"는 다카츠키 자신의 범죄 행각에 대한 자백이다. 다카츠키는 잠깐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자는 경찰에게 "여기서 해 주세요"라며 경찰이 제시하는 혐의 사항을 무대 위 동료 배우들과 함께 듣는다. 그는 모든 혐의를 즉시 인정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되냐고 물은 뒤 가후쿠에게 다가가 90도로 인사하고 무대 밖으로 당당히 퇴장한다.


다카츠키가 가후쿠에게 전했던 자신을 응시하라는 충고는, 스스로에게 했던 직언이었다. 바냐 역을 맡은 다카츠키는 또 다른 바냐로 공명하는 가후쿠를 들여다보며 자기 자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플롯은 가후쿠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마주 보아야 함을 깨달아가는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후쿠가 다카츠키가 선행한 길을 밟은 것은 료헤이가 타야마를 따라 민간 경비대에 자원한 일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2년 후로 점프한 이후 재회한 료헤이의 태도 변화에서 관객이 큰 괴리감을 느끼는 까닭은, 가후쿠와 달리 료헤이의 내면은 거의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남주 시점으로 다시 보는 <친밀함>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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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사이 가장 비슷한 지점은 상기한 플롯의 구조보다 언어의 시차에 있다. 오토가 사망하기 전 녹음한 대사는 가후쿠의 자동차 안에 울려 퍼지고, 가후쿠는 강박적으로 아내의 음성을 들으며 끊임없이 대사를 되뇐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마침내 아내의 언어가 남긴 진의를 이해한다. 언어는 이미 존재하지만, 발화자인 오토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2년 후 가후쿠가 그녀의 부재를 극복하는 시점에 이루어진다. <친밀함>의 시차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연극은 러브레터를 낭독하면서 끝나는데, 영화는 이 간접적인 러브레터가 료헤이에게 전달되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레이코와 료헤이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 사이 둘은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레이코의 진심이 료헤이에게 전달되는 2년의 시차 동안 레이코는 오토처럼 내내 부재했던 것이다.


료헤이는 민간 경비대원이 되었고, 레이코는 잡지사에 취업했으나 연극을 포기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1부에서 내내 닫혀있던 료헤이의 세계는 자발적으로 외부에 연결되었고, 레이코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에도 둘 사이 유대감의 전부와 같았던 연극을 놓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짧은 재회 끝에 번호조차 교환하지 않고 각자 다른 열차에 탑승한다. 열차가 교차하며 멀어지는 순간, 료헤이는 레이코가 그랬듯 열심히 손을 흔들며 키스를 보낸다. 열차가 서로 멀어지는 와중에도 그녀를 쫓아가며 레이코의 러브레터에 2년 만의 답장을 보낸다. 레이코는 연극을 며칠 앞두고 "때려죽여도 좋아"라는 각오로 료헤이의 대본을 멋대로 수정했다. 대본에 새롭게 넣은 요소 중 핵심은 보나 마나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한 러브레터일 것이다. 당신을 좋아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의 세계와 연결되고 싶다는 고백이 무참히 짓밟히자, 레이코는 마지막 선택으로 연극 속에 러브레터를 남겨 두었다. 2년 전 오토의 음성이 2년 후 연극에서 가후쿠에게 전달되었듯, 레이코의 러브레터는 2년이 지나 마침내 료헤이에게 가닿는다. 다리 위에서 맺었던 일시적인 화해는 이로써 영구적인 화해가 되었다. 그들의 미래는 하마구치 감독의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희망적이다. 조르주 프랑주의 <첫날 밤(La première nuit)> 속 어느 장면을 닮은 아릿하고도 로맨틱한 이 엔딩은 구조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친밀함>이 <드라이브 마이 카>의 습작 따위가 아님을 호연히 증명한다.



한편, 리허설과 연극으로 같은 장면이 두 번 반복되는 특성은 <아사코>의 반복 쇼트도 연상케 합니다. 남주 이름이 료헤이로 같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아사코가 바쿠와 헤어진 후 료헤이를 만나게 되는 시점도 <친밀함>, <드라이브 마이 카>와 마찬가지로 2년 후네요. 이처럼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에서 시간의 비가역성은 내러티브의 도구로 빈번히 활용됩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만든 영화도 쭉 그래왔으니, 단순히 지진 발생 이전/이후를 구분하는 시간 점프는 아닌 것이죠. 한 번쯤은 가역적인 시간을 다루는 영화도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그건 그것대로 잘 만들 것 같아요.


4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부담인 것을 알지만, 이번에 보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하기가 정말 어려운 영화입니다. OTT에 올라올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 보이거든요. 여의도, 압구정, 명동 등 소수 아트하우스 상영관에 아직 걸려있으니, 주말을 활용해 감상하시는 건 어떨까요. <드라이브 마이 카>의 묵직한 감동과는 또 다른 맛의 여운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제 별점은 네 개 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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