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여행을 하고 있나요?

- 사고여행 번외 편 / 여행에 대한 단상

by 준 원 규 수

연재글을 닫을지, 조금 더 이어갈지 고민을 하다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번외로 여행에 대한 짧은 생각으로 '사고 여행'을 갈음할까 합니다.




여행,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관광,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내게 관광이란 시각적 요소가, 여행이란 체험적 요소가 더 크게 느껴졌다. 가급적이면 관광보다는 여행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 장소에 느긋하게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물론 한 장소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 오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 단체여행보다는 숙소만 예약해 두고 움직이는 여행을 많이 했고,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친구와 둘이 가거나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처음 갔던 유럽여행이 생각날 때마다 런던은 대영박물관 외부에서 맞이하던 저녁 무렵이, 네덜란드에서는 밤 10시가 다 되어 저물던 하늘과 숙소 부근의 말이, 파리에서는 센 강가에서 앉아 먹던 체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요즘은 여행을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 만큼 많은 여행 콘텐츠들이 있다. 여행 전문 유튜브들도 많고, 좀 더 색다른 콘셉트로 이름도 낯선 곳으로 갑자기 날아가 온몸으로 부딪히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지상파에서 방영된다.

그곳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전부를 보는 것 같다. 가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보기에 좋은 모습만 담아 편집한다는, 방송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직접 간다 해도 그 이상의 풍광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

여행 콘텐츠는 SNS에도 넘쳐난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 봄이면, 여름이면, 가을이면, 겨울이면 가봐야 할 곳들이 국내에도 넘쳐난다. 그들의 안내를 따라 그곳에 가서, 그들이 올렸던 사진과 똑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룰(?)이 있다고 하니 그 세계 안에서의 영향력이 엄청난 것 같다.

그래서일까. 국내 여행지들을 보면 사진 찍기 좋은 요소들로 가꿔진 곳이 많다. 여행지 평가 요소에 사진 찍기 좋아요 항목이 따로 있으니 더 할 말이 있을까.



당일치기 짧은 일정일지라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내게 백 여장의 사진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진들은 시간이 지난 후, 잊고 있던 여행기를 떠올리는 매개가 되어 준다. 흔히들 사진밖에 남는 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닐 때 '남은 것'이 된다.

- 맞아, 여기 갔었지.

- 기억나? 그때 우리 거기에서 이런 일이 있었잖아?

표정 봐라. 하하하, 우리 그때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이 '남아' 있는 거다.



'남은' 게 없는 사진들에는 이야기가 없다. ‘보러’ 가서, 사진을 찍고 다 ‘봤다’라면서 돌아선 곳들. 그곳들을 담은 사진들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 사진들은 관광의 기념품이지 여행의 이야기는 되지 못한 것이다.

좀 더 머물면서 바람을 느끼거나 그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그곳에서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공기나 냄새를 겪지 못했던 곳들의 사진에는 늘 시선이 짧게 머무르게 된다.

요 몇 년 동안 생긴 버릇인데 여행지에서 같은 사진만 여러 장을 찍는 경우가 있다.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봤던 멋진 사진을 떠올리며 내가 찍은 사진이 그와 비슷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다시 찍는 것이다. 나만의 여행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정말 ‘보기’만 하는 관광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걸 깨달으면 그 순간 나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마음에 먼저 담으며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그곳의 모습을 기록해 두자,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정리하다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내가 본 많은 여행 콘텐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일 게다. 사진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는 내내 마음에 기준점이 되어버린 콘텐츠들과 계속 비교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다시 내게 물어본다.

내게 여행은 무엇인가?

그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가. 보는 것 이외에 어떤 기억을 갖고 싶은가.

‘남’들이 ‘보고’ 온 무엇을 ‘따라’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여행 준비에서 꼭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 눈앞의 풍경에 나는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가.

여행 틈틈이 나를 깨울 커피 같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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