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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l 03. 2024

삶의 결을 함께 하는
동반자이자 정신의 동거인

'소로우'와 '나'

수년전 읽은 월든을 원서로 읽어야겠다는, 그러다가 번역해야겠다는, 말 그대로 '미친, 어리석은 짓'은 강렬하게 찾아온 느낌! 그 느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날부터 바로 시작한 소로우 책의 번역이 벌써 6개월째. 


한국에 번역된 소로우의 책가운데 내가 아는 책은 다 읽은데다 '소로우의 책들은 이미 너무 많은데 왜?'라는 숱한 질문을 받았지만. 번역서를 보면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내가 직접 소로우가 되어 그를 세상에 다시 내놓고 싶은, 


'그냥! 

내가 아는 소로우를 더 제대로 세상에 보내고 싶어서'...

때문이다.


세상이 어리석다, 비효율적이다, 뜬금없다, 반푼이같다고 평가하는 그 짓을 나는 '그냥' 하고 있다. 그렇게 6개월전 뜬금없는 나만의 느낌, 나만의 바람(wish)으로 시작했던 월든번역을 위해 매일 몇장씩, 1~2시간을 보내왔고 오늘 내일중으로 끝날 것 같다.  


나는 또 느낀다. 

소로우는 참 나와 비슷하다. 

아니, 내가 소로우와 거의 닮았다.


그가 쓰는 글은 전부 나를 위한 글처럼 읽히고

그가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 전부 날 얘기하는 것 같고 

그가 추구하는 것이 나의 추구와 상당히 비슷해서 

나는 그의 글이 마치 내가 쓴(쓸) 글같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그가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를 그저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이해되는 단어로 번역하기보다는 '소로우라면 이 단어에 이런 의미를 담아서 썼을거야, 그런 생각때문에 이 단어를 굳이 쓴 것이야...'라고 집요하게 단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탐구했다. 


그런데, 그러면서 나도 탐구되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6개월간, 아니 '시민불복종'과 그의 책들을 다 번역할 요량이니 앞으로도 죽 동거하며 서로를 탐구해나갈 것이다.


영혼의 소로우가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 한 아마도 난 계속 그의 정신을 나의 정신과 혼합시킬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극한 공감을, 또 어떤 부분에선 이렇게 하라는 가르침을, 또 어떤 부분에선 자신의 경험으로 내 앞의 돌덩이를 치워주는 그에게 삶의 결을 함께 하는 동반자이자 정신의 동거인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한때 소로우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내게, 그러니까 거의 모든 일상을 멈추고 오로지 책과 글속에 스스로를 매몰시킨 나에게


'나는 돌다리를 수선하고 있는 저 사람들 옆을 지나가기를 꺼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시(詩)는 없는지, 또 나의 반성의 재료는 없는지 알아볼 것이다. 숲과 들 등 자연의 광대한 모습만을 보려는 것도 일종의 편협함이다. 위대한 지혜는 사람들의 일상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주1). 라고 알려주어 날 다시 사람들과 만나게 했다. 


사실 번역이 6개월씩이나 길어진 것은 그의 문장에서 나의 뛰는 심장을 멈춰야 하는 시간이 잦았기 때문이다. 때론 너무 벅차서 때론 소화시키느라 그렇게 책을 덮고 작업을 멈췄던 시간들이 아주 잦았고 그럴 때마다 길게 호흡하며 깊에 글을 삼켰다.


여하튼 번역하는 내내 '그는 '시간'과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은 멀리 떨어져 정복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한숨만 지을 뿐(주2)'이라는 문장은 릴케가 모든 영감을 동원하여 작업에 집중하는 로뎅을 보며 '영감은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그리하여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이 자라날수록 그분에게 미치는 방해물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분을 에워싸고 있는 현실로부터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기 때문입니다(주3).'와 겹쳐지면서 


시간에 지배되지 않고 시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지배하고 사는 내게 하는 말 같아서, 

또한 이걸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너무 반갑고 신기해서, 

무엇보다 지금 내가 매일 반복하며 몰두하는 일에 대한 집요함이 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 같아서, 

미흡할지는 모르겠지만 

몰두가 모든 방해물들을 사라지게 하고, 

모든 환경을 오로지 글만 쓸 수 있게끔 변화시켰던 나의 경험이 

우연이 아니라 원리라는 사실을 믿게 해줘서 든든했다


그리고 그는 또 나를 거론했다. '나는 막 깨어나는 순간에 있는 사람이 역시 막 깨어나는 순간의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무 제약없이 이야기하고 싶다(주4).'라는 말에서 대화의 극한 갈증을 그도 느꼈겠구나.. 나도 그런데... 싶었고


'감자썩음병의 치료법을 알아내려 애쓰고 있는데 그보다 훨씬 널리 퍼져 있고 훨씬 더 치명적으로 만연된 머리썩음병의 치료법을 알아내려 애쓰는 사람은 없는걸까?(주5)'라는 한탄에서 몽테뉴의 '골통의 설사제(주6)'까지 떠올라 속이 시원했고


'가장 일반적인 상식이라 불리는 것은 코고는 소리나 마찬가지. 때로 우리는 보통사람들보다 1.5배정도 똑똑한 사람을 반푼이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이 가진 재능을 1/3밖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주7).'이라는 말에서는 감히 내가 보는 헛똑똑이들, 엉터리 박사들이 떠올라서, 그들이 내가 세상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에 반푼이취급했던 기억이 떠올라 엄청난 위안을 받았고

'인간벌레인 나를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더 위대한 은인이자 위대한 지적 존재를 깨닫게 된다(주8).'에서 나도나도요!! 하며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특히, '낡고 오래된 법칙은 보다 고양된 진보적인 의미에서 해석될 것이며(중략)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다 하더라도 그 일이 결코 헛수고로 끝나지 않는다. 원래 누각은 공중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다. 이제 토대를 쌓으면 된다(주9)'라는 말에서는 '아.. 내가 지난 5년, 책과 글에 매달린 이 시간이 공중누각에 가까이 가는 시간들이었구나... 혹여 지금 그 언저리 어딘가에 내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싶어 얼마나 서럽고 고마운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나는 소로우와 같은 

정신적, 정서적 동거인

이 있어 참 든든하다.


내게서 휘리릭 정신의 총기가 바람빠지듯 사라지더라도 든든한 그가 나의 빈틈을 채워줄 것이고

내게서 우뢰같은 감정이 몰아쳐도 든든한 그는 더 거대한 시선을 바라보도록 내 고개를 돌려줄 것이며

내게로 소나기퍼붓듯 사태가 들이쳐도 현명한 그는 사태의 진입에 대해 명철한 해석을 들려줄 것이며

내게서 오랜 시간 억눌렸던 나태와 태만과 자만이 고개를 쳐들더라도 깨어나는 순간의 대화를 시도하려 내 눈을 책으로 옮겨줄 것이다.


책은, 글은... 그렇게 날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내가 공중에 세운 누각이길 바란다.

내가 바라는 그 소망이 자리한 곳의 토대가 지나온 시간, 앞으로의 시간이길 믿는다.

이 길에, 책속의 성현들이, 또 책속 성현들의 성현들이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니

군중들의 박수나 내 안에 여전히 꿈틀대는 세속적 욕심의 갈증과 갈등은 내게 어떠한 요동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기꺼이 가면, 마땅히 당도해야만 할 곳에 

내가 서 있으리라는 확신도 든다.


나는 나의 길이 있고

나의 글은 또 글만의 길이 있고

그렇게 나의 일도 자체가 가야할 길로 나를, 나의 글을 데려갈 것이니.... 


이렇게 나도 그처럼

'하루종일 방구석에 거미처럼 쳐박혀 있어도 내 사고가 나에게서 머무니 내 세상은 넓은 것이다(주10).'


주1>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도솔

주2,4,5,7~10> 월든, 헨리데이빗소로우, 원서번역중.

주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릴케, 태동 

주6>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


[건율원 ]

삶의 가치실현을 위한 어른의 학교, 앎을 삶으로 연결짓는 학교, 나로써, 나답게, 내가 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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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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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수/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부모정신'이 곧 '시대정신']

금 5:00a.m. [나는 나부터 키웁니다!]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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