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는 분들은 그냥 현관비밀번호를 알아서 열고 들어와 알아서 챙겨 먹고 마시고 우리집 고양이 개리, 새나와도 친숙하다.
하지만 처음
"죄송하지만, 우리 집으로 오시겠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다들 거의 똑같이 되묻는다.
"집으로요???"
"네. 혹 불편하시면 제가 집 밑에 카페로 나가구요."
관계의 거리정도에 따라 흔쾌히 오겠다는 분도 계시고
근처 카페로 굳이 나의 걸음을 옮겨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다지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나라서 집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집으로 오겠다는 분들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늘 김칫국멘트를 먼저 날리는데
"우리집에 올 땐 아무 것도 사오지 마세요, 사 올거면 1글자로 된 것만 사오세요"
명령인지 부탁인지 제안인지 뭐가 됐든 단호한 내 말에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그럼 뭐 사가요?"한다.
"음.... 집, 금, 땅, 차, 돈. 뭐 이런 거 알죠? 그런 거 사오기 버거우면 암것도 사오지 마세요"
내 단골멘트에 상대는 첨엔 의아, 나중엔 웃음, 다음엔 다들 각자의 스타일로 한마디씩 한다.
"비싼 케익 사오라는 거죠?" - 고급진 걸로 날 꼬드기려나?
"장난치지 말고 말해요. 뭐 사갈까요?" - 내가 아직 신뢰를 못 줬나보다.
"아! 뭐라도 사오라는 말 같이 들리는데?" - 음. 자기맘대로 생각하다니!!!
"알았어요. 그 중에 하나 사갈께요." - 진짜? 내심 기대되는데!
(실제 어떤 분은 진짜로 차를 사오셨다. 차(car)말고 차(tea).)
"알았어요! 암것도 못사가니 맘만 갖고 갑니다." - 쿨내 진동이다!
여하튼 내가 던진 멘트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덕에 자꾸만 기대되고 재미나진다.
아무 것도 사오지 말고 그냥 편하게 빈 손으로 오라는 의미인데도
간혹 재치있는 몇은 귤, 김, 떡, 빵 같은 걸 사오기도 해 한바탕 웃었던 적도 있고
누군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가슴에 손을 넣다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맘! 입니다'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 사왔어요.'라며 자신을 선물로 내밀기도 하고
악수를 청하며 '손! 은 괜찮죠?'라며 센스있는 예의로 날 깜놀시킨다!
아!
진짜 웃겼던 것은 한 여성지인이 헤어지면서 '신! 그냥 두고 갈께요. 교수님 이런 신발없잖아.' 라며
자신은 차안에 예비용신발이 있다며 그냥 가기도 했다.
이 쯤하면 1글자 집놀이는 꽤 재미나게 만남을 성사시키는 훌륭한 소스다.
내가 1글자에 의미를 두는 이유
생활 곳곳에서 발견하는 1글자의 재미 덕에 나는 2020년 내 책,' 리얼라이즈'에 '성공'을 위한 1글자로 된 10가지를 나열하기도 했다.
뜻/꿈/책/땀/벗/촉/틀/돈/격/운 이 그것이다.
내가 1글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언어의 본성은 분명 그 의미를 담고 있고 언어의 탄생은 또 하나의 시선을 집약시켜 표현한 것인데
얼마나 압축시켜 강하게 심어놨으면 단 1개의 글자 안에 그 엄청난 뜻이 담겨 있을까? 에 대한 감탄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현상 모두는 광활한 우주의 조화를 위한 것인데 어떻게 이 광활한 우주의 한 조각을 단 1개의 글자에 담았을까.
놀랍다.
이 참에 나는 1글자로 나를 드러내볼까 싶다.
율곡서원에서 찍은 사진
내 생활을 이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다니
나의 자세의 기준을 삼게 하는 1글자는 격, 결, 곁.
나는 '격'있게 나이드는 '결'이 고운, 그래서 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
나에겐 잘못 굴렸다가는 엄청난 화를 입을 지 몰라 몸사리는 몇가지가 있는데 눈, 말, 손, 혀, 위, 발, 뇌이다.
말이 많고 다소 감정적이어서 '혀'를 조심하고 '눈'과 '말'은 내 모든 걸 담고 있기 때문이며 습진과 위염은 내가 달고 사는 고질병이라 '손'과 '위'에 각별하다. 1일 만보가 완전 습관이 되어 버렸으니 '발'은 그 어떤 것보다 감사한 보물이며 지금 나는 공부중이고 절대 결코, 네버! 치매는 피하고 싶기에 '뇌'는 특별관리 대상이다.
내가 누구에게든 주고 또 받고 싶은 1글자는 정, 책, 글인데
나는 그저.. 정있는 사람이 참 좋다. '정'이 많은 사람은 늘 '책'과 '글'을 함께 하는 성향이 있으니 이 셋은 참으로 위대한 조합이라 여긴다.
내가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찾아가고 또 찾아가는 1글자는 해, 달, 별, 강, 꽃이다.
새벽독서 수년째인 나는 늘 '해'보다 먼저 일어나 해를 맞이하는데 가끔 깜빡 귀가시간을 놓친 '달'을 만나면 참 반갑다! 오그만디노의 아카바의 별을 알게 된 이후로 나의 '별'을 찾아 나누는 대화의 기쁨은 진짜 나만이 아는 오롯한 나의 시간이며 '강'이 내려다보이는 마당넓은 집에 '꽃'을 잔뜩 키우고 살고픈 바람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곳도 양평이다.)
내가 좋아하는 설악초(세종문화회관에서 찍은 사진)
1글자에 마냥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지만 이 녀석이 있어야 내가 사람이기에
평생 내 안에 끼고 살아야 하는 1글자는 똥, 균, 악이며
내게 습관처럼 붙어 있는 말은 자.., 뭐?, 뚝!이다.
무슨 말을 하든 꼭 '자... 그럼', '자!! 그래서?' 이런다.
귀가 어두운지 꼭 '뭐?'라고 되묻고
늘 울컥거리는 나는 속으로 나한테 잘도 소리지른다! 뚝!
이렇게 사는 것이 나의 '꿈'.
'어떻게 살다 갈거냐?' 라고 내게 물을 때 나는 어떤 길이든 돌아돌아 자기 갈길가는 '물'처럼 살고 싶다고..
나의 삶이 모두를 위한 '빛'이 되면 죽음으로 가는 것도 행복할 거라 말하며
'어떻게 살고 있니?' 라고 묻는다면
'앎'과 '삶'이 연결된 '길'을 찾아 다닌다 말할 것이며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니?'고 묻는다면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 아니겠냐 답할 것이다.
지금 나의 생활을 한글자로 표현하라 하면
'책'과 '글'을 놀이삼아 '나'를 표현하며 '앎'을 '삶'으로 연결짓자고,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자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글쓰고 있다고 말할 것이며
'왜 그렇게 지독하게 사니?'라고 묻는다면
이리 사는 것이야말로, '운'이 '별'처럼 쏟아져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인생 참으로 제대로 살고 있다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며 우주의 조화에 한몫을 담당하라 나를 보낸 '신'께 대한 보답이라는 야무진 믿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