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을 끄는 시간.
여기 시골에 와서 새롭게 생긴 나만의 의식...
그냥 마냥 좋아서 감정이 최고조로 살아 숨쉬는 시간...
하루의 에너지 총량을 죄다 쏟아낸 태양이 벌겋게 손짓하며 안녕을 고하는 석양을 마중하는 시간.
어김없이 내일 아침에도 등장할 태양이지만
오늘같이 흐린 날, 구름과 싸워가며 내게, 나의 마당에, 마당에 찾아오는 새들에게, 그리고 모든 나무에게 어떻게든 자신의 열기를 비춰주고 내어주고 보여준 후 2024년 11월 21일을 역사에 남기고 퇴장하는 시간.
이 곳의 석양은 말 그대로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아니, 말로는 표현불가하다!'
태양의 장엄한 퇴청은 통창으로도 전부 내다보이지만 집안에서 맞이하기에는 왠지 건방진 것도, 허영을 떠는 것도, 게다가 태양의 신 아폴론이 마지막까지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그 벌건 혀를 길게 내밀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각인시키려는 몸짓과도 같아서 깊고 긴 들숨으로 내 안에 그 벌건 기운을 다 빨아들이고픈 심정에 나는 서둘러 시간맞춰 마당으로 나간다.
석양과 함께 나의 오늘도 나, 세상, 인류의 역사속으로 함께 퇴장하는 시간.
역사속 진입을 앞두고 점검과 검열, 자격이 질적증명을 강제하는 시간.
나의 이성, 시간, 행위의 역사가 하나로 기록으로 응집되어 남게 될 잔인한 시간.
그렇게 '하루'라, '오늘'이라 이름붙여진 어떤 날이 얼룩일지 흔적일지 계승일지 결정되는 긴장된 시간.
이 시간,
지구 반대편에선 태양을 마중나온 이들이 있겠지
내가 이리 감격으로 배웅하니 저편에선 감격으로 마중하겠지.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지
인간이 신을 만들었는지
과학적으로 어떤지 영원히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적인 어떤 존재를 믿는다.
이유를 드는 것조차 구구절절이니 그저 믿는다는 세글자로만 내 믿음을 전하며
태양은 하루종일 꿈쩍않고 나를 바라본 후 넘어가는 그 곳, 나를 지켜보는 존재에게 나의 하루를 세세히, 낱낱이 고할텐데 이 하루하루의 장부가 먼 훗날 '존재'앞에서 내가 당당할 수 있기를 이 장엄함앞에 내 가슴은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차오른다.
무슨 커다란 잘못을 한 것은 없지만 내 하루의 시간과 정성이 허투루 쓰이지는 않았는지,
철철 남도록 쓰지 않은 것은 아닌지
나는 이 시간이 성찰일지 자성일지 반성일지 자각일지 모르는
나만이 느끼는 미세한 경계에서 날 질타하기도 다독이기도 칭찬하기도 한다.
태양이 마지막 남은 열기와 붉은 빛의 자투리까지 모두 넘겨버린 바로 그 순간,
숙연하게 하루를 온전히 태양에 의지한 모든 자연은 검은색으로 둔갑한다.
아직 노랗던 낙엽송도, 아직 붉은 단풍나무도, 한겨울에도 푸른 소나무마저 모두 검어진다.
같은 순간, 한낮동안 태양을 받아낸 태양열 전구들이 순식같에 동시에 불을 밝힌다.
마치, 태양이...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를 지키라, 온 생명을 지키라 명한 충복처럼.
이렇게 석양이 퇴청하며 자신의 임무를 충복에게 명한 그 시간
나는 나의 지구를 켠다.
연구실로 사용하는 층고높은 공간과 작은 거실에 크기가 다른 쌍둥이 조명이 그것이다.
연구실겸 서재에는 커다란 지구를,
티테이블이 놓인 창으로 마당을 훤히 볼 수 있는 중정의 작은 거실에는 작은 지구를,
그리고...
'나'라는 지구까지.
구(球)의 원리, 자연에 따른 순환의 삶.
궤도, 둥근고리, 점선면원구, 나만의 코칭이론이 모두 담긴 듯해 즉석에서 구입한 두 전구의 별을 밝힌다.
(나는 하루를 2등분, 3등분하여 나눠 사용한다. 이런 일상을 브런치에 공개한 적이 몇 번 있다.)
나의 첫번째 하루는 태양마중이다.
새벽 4시경 독서를 시작한지 6여년, 그렇게 태양의 모든 기운을 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생리적인 현상을 제외하곤 12시까지는 책상에 몸을 붙이고 있다. 그래야만 당당하고 뿌듯하게 '위대한 정오'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날 제대로 지켜주는 정오, 눈 똑바로 뜨고도 당당할 수 있기를. 대략 7시간 이상을 새벽부터 책상에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이 다소 힘들 때도 있지만 '위대한 정오'를 맞이하는 뿌듯함은 이 힘겨움이 몇배가 되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날 충분히 만족시킨다.
나의 두번째 하루는 점심을 거하게 먹고 나선 바깥놀이다.
여기 와서는 주로 마당에서 장작을 만들거나 나무를 다듬고 씨를 뿌리거나 산책을 나간다. 사실 베어낸 나무를 자르고 치우는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더 추워지기 전까지는 끝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꽤 쌀쌀해지긴 했지만 태양을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인지 낮은 아직도 꽤 따뜻하여 겉옷을 입지 않고도 충분히 거닐 수 있을 뿐더러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땀이 흥건하다. 그렇게 두어시간 바깥에서의 노동이 끝나면 내 몸의 열기도 빼낼 겸 해먹에 눕든, 테라스에 앉든, 실내 책상에 앉든 책을 읽거나 다시 글을 쓰거나 가공하거나 집중이 가능해진다.
새벽부터 아침까지는 정신이 역동하고
정오부터 오후까지는 신체가 역동하여
석양을 맞이하며 시작될 나의 3번째 하루를 더 단단해져 만나는 것.
나의 3번째 하루는 석양마중이다.
오후 5시경 난 채비를 서두른다.
서둘러 씻고 태양의 장엄한 퇴청시간, 석양의 등장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 광경에 익숙해지면 무덤덤해지려나... 싶지만 여하튼 아직은 가슴이 설렌다.
얼른 장작으로 화덕에 불을 피우고 내일 아침 태울 장작까지 이슬을 피해 집안으로 들인 후 세상에 검은 빛이 돌기 시작하는 6시경이면 마당으로 나가 장엄한 태양의 퇴청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나는 태양에게 묻는다.
나의 하루가... 당신의 의도에 맞게 쓰였습니까?
나의 시간이... 당신의 의지대로 흘러갔습니까?
나의 정신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합한 질료로 빚어지고 있습니까?
나의 이상이... 허영이나 오류로 순도를 잃지 않게끔 내 행동은 뜻이 가는 길로 움직였습니까?
태양마중,
위대한 정오, 그리고
석양마중까지.
정신도 신체도 잘 소진한 충만함으로 맞이하는 3번째 하루는 아무런 에너지가 필요없는, 보탤 것도, 애쓸 것도, 비울 것도 없는 일상이다. 이렇게 일상을 누려도 된다는 '자유'와 '감사'만이 존재할 뿐...
아직 서툴지만 가끔 환호성도 지르게 만드는 화덕의 불꽃, 칠흙같은 어둠 속 나는 하루 중 가장 순도높은 나의 본성과 잠깐이라도 대화를 시도한다.
오늘 하루, 전쟁같은 세상에서 이렇게 따뜻한 화덕 앞에서 여유로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을 향해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감에 감사하며,
글을 위해 소진시킬 여전히 멀쩡한 육신과 정신에 감사하며...
내가 아직도 꿈꿀 수 있음에...
내가 여전히 꿈을 향해 걸을 수 있음에...
내가 기꺼이 내 꿈을 위해 전진할 여력이 있음에...
내가 마땅히 내게서 창조될 꿈을 위해 인생을 내걸 정신이 있음에...
그리고
지금처럼...
제 아무리 세상이 시끄럽고 들끓어도 오로지 나의 꿈을 향해 묵묵히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2023년 11월, 새벽 5시의 장엄함에 대해 쓴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처럼 1년 뒤, 지금 여기서 오후 5시의 장엄한 석양마중을 쓰게 되었네요.
어쩜 같은 11월이었는지. 미리 알았다면 날짜까지 맞춰서 쓸걸 그랬습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