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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3. 2024

지금부터 4년만 더...
새벽독서 10년을 채운다면.

감정에 취약해서 정신의 각도가 흔들렸던 나

정신이 경직되서 감정의 온도가 들끓었던 나

근육이 흐물거려 관계의 습도에 절여졌던 나

이런 나를 지금의 나는 얕보고 있다.


성장이란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한지 이제 두어달 후면 6년이 된다. 매일매일의 변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몇개월이 지나 뒤돌아보면 나는 어떤 감정에 무뎌져 있고 어떤 정신에 단단해져 있고 어떤 걸음으로 한번 더 내딛고 있었다. 


그렇게 또 몇개월, 또 몇개월... 

그렇게 6년째... 

지금의 나는 

흔들렸고, 들끓었고, 흐물거렸던 나를 

얕잡아보는 내가 됐다.


인간의 성장이란

알아채고 이겨내고 극복해서 과거의 보기싫고 밉고 못마땅했던 나를 가볍게 얕볼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성공이란

그렇게 얕잡아볼만한 과거의 나로 결코 돌아가지 않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나도 미래의 언젠가 얕잡아볼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점진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아닐까.


2024.12.12. 새벽 5시경.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키에르케고르 / 얼마전 출간한 엄마의 유산



얼마나 더디고 부족하고 둔하면 

6년여를 보내도 겨우 이 자리냐고 스스로를 비판, 한탄, 자책, 칭찬, 위로, 좌절, 용기...

순간순간 여기저기서 다양한 감정들이 올라오지만.

그러면 어떠리.


책을 읽지 않았으면 여전히 난 정신의 각도와 감정의 온도와 관계의 습도에 휘청이며

오락가락, 좌충우돌, 왈가왈부, 횡설수설, 막무가내, 오리무중, 갈팡질팡, 갑론을박, 경거망동, 거두절미, 헐레벌떡, 불평불만, 반신반의... 블라블라~~~~~~

아무튼 이것보다 훨씬 많은 단어들을 죄다 내 하루에 덕지덕지 붙이고 살았을 지 모른다.

그러니, 6년여란 시간이 지났지만 매일 새벽 2~4시간의 투자로 만들어진 나의 변화는 놀랍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6년간 평균 3시간씩, 

6500여시간을 책과 보낸 셈이다.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루평균 3시간이 매일 쌓여 6500이라는 숫자가 된 이 더 중요하다.

몇권을 읽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책을 읽었느냐, 그리고 얼마나 실천했느냐가 중요하다. 

'읽고 싶은'보다 '읽어내야 할' 책을 우선했고 '순종'하며 따르는 자세로 읽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오늘 새벽.

눈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4년 더... 

새벽독서 10년을 채운다면!"...


아, 그렇다면... 

말로만 듣던 1만시간이 넘는데...

아, 그렇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겠다...!

아, 그렇다면...

이미 습관된 걸 굳이 안할 이유없고 안하면 손해고

아, 그렇다면...

그냥 하면 되잖아! 뭘 생각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떤 종류의 선천적인 구체적 원칙이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원칙은 인간의 모든 사고, 감정, 의욕의 총결산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피와 체액 속에 잠겨 있다. 


이 원칙을 추상적인 형태로 알 수는 없다. 일생을 되돌아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시종일관 이 원칙을 지켜왔다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이 이 원칙에 이끌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주1).' 


정말이지... 

6년여를 시종일관 지켜왔다... 

정말이지... 

어떤 실에 이끌리듯 여기까지 왔다.


자조(自助)의 과정에서 

자찬(自讚)도, 자부(自負)도, 자성(自省)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自起), 자정(自淨)이 일어나며 

자애(自愛)를 공고히 구축해 왔다고 여긴다. 


아직 미흡하지만 분명 

새벽+독서+글쓰기에 오롯이 바친 6천여 시간의 누적은 

단단한 응집을 거쳐 

촘촘한 밀도로 

강력히 압축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바래본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오직 홀로 생식하고 있다.(중략)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력에 이끌리듯이 서로 모여든다비슷한 마음과 마음은 멀리서부터 인사를 교환하는 법이다(주2).'의 경험이 내게 오길... 

누구라도 책과 글에 이끌린다면 '뜻'이 '길'을 내어준다는 사실이 증명되길...

그 증명이 나만큼 못난 누구라도 포기를 용기로, 단념을 결단으로,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는 믿음의 계기가 되길...



아직 가보지 않은 길...

새벽독서 10년...의 길...


그때가 되면 독수리의 눈으로 내 깊은 심연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독수리의 발톱으로 내 깊은 심연을 꽉 움켜쥘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독수리의 날개가 공기를 예상했듯 나의 치열했던 시간도 나의 미래를 예상했음이 드러날까.

그때가 되면 독수리처럼 장엄한 날개짓하며 오리처럼 헤엄치는 짓은 멈출 수 있을까(주3).

그때가 되면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서 홀로 생식하며 멀리 서 있는 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처음 새벽독서를 결단했던 2019년 2월 19일. 

딱 3년만 지독하게 해보자. 했는데 3년 뒤 별로 신통치 않았다.

3년간 해보니 3년을 1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쉬지 않고 계속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3년간 2번을 했다면 뭐, 1번 더 하는 건 전혀 어렵거나 낯설거나 힘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멈추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고 낯선 지금의 나에게

'나는 나를 얕잡아볼 기회를 마음껏 제공해야겠다!'



주1,2> 쇼펜하우어, 인생론, 나래북

주3> 독수리의 눈, 독수리의 발톱으로 심연을 바라본다는 글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리처럼 헤엄치다'는 해브에커의 '백만장자시크릿', '날개가 공기를 예상했다'는 에머슨의 '수상록'에서 내용을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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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감정의 반전]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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