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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an 05. 2025

겨울, 어둠, 서리, 그리고 나.

겨울시골의 새벽은 색이 없다.

있다면 어둠의 색뿐이다.

하지만

색이 없다고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07시 30분이 지나면서 서서히.. 세상이 밝아지면 밤새 어둠속에서 세상이 얼마나 어둠을 조롱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는지 매일 아침 놀랍다. 


나약한 나는 해가 지면 하루를 잘 보낸 만족감에 그저 늘어지고 또 늘어지고 놀고 또 놀고 게으르고 또 게으른데... 휴식도 사치라 여기는 세상은 딱 그 시간에 해야만 할, 딱 그 일을 여전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가 사라진 딱 그 시간.

땅이 더 차가워지기 시작한 딱 그 때.

어둠은 공기중의 모든 수증기를 호출한다.


출동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루종일 공기층을 부유하며 충분히 자신을 포화시킨 수증기들은 서로 엉겨붙어 가공할 힘으로 서로를 증폭시키고 곧 대적할 이슬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확신한다. 차가운 기운으로 꽉 찬 어둠이 이들의 홈그라운드인지라 사실 제 아무리 긴 계절 새벽을 점령했던 이슬이라 할지라도 이들을 이길 재간이 없다. 일치감치 항복을 선언한 이슬이 자기자리를 고스란히 내어주고 떠난 땅은 이제 서리차지다.


매일 아침 서리로 뒤덮인 세상.


요즘은 매일 아침 불투명한 땅을 마주하며

세상이 어둠을,

서리가 이슬을 조롱하듯

나는 표면으로부터 희롱당한다.


본질은 '물'인데...


물은 수증기가. 수증기는 얼음이, 얼음은 서리가... 여기는 이렇다.

물은 내를, 내는 강을, 강은 바다를... 저기는 저렇다.


나도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나도 그렇다...


모양이 바꼈다고,

여건이 달라졌다고,

환경이 날 압박한다고,

나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저 물이 이슬로 존재하더니 이제 서리로 존재해야할 때인 것이다.

그저 여기는 서리로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저기는 강으로 내달리는 무리를 따라야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 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다.

거기선 그래야 했고 여기선 이래야 한다.


나도... 그렇다...



며칠전부터 나는 같은 노래를 계속 흥얼거린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싶어 바다로 간다

주원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이 노래는 산보하는 내 발길이 마을정류장 옆 흑천가에 닿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새어나온다.

늘... 부르지만...

아직도 가사를 완성하지 못했다.


자신의 온몸이 서리에 점령당했을지라도 땅은 온기와 기운을 잃지 않는다.

자기를 키워내줄 땅이 서리에 묻혀버렸다고 해서 따뜻한 봄 새롭게 돋울 싹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리덮고 서리입은 이 가냘픈 생명은

거죽과는 상관없이 이 차디찬 시간...

자신만의 화학변화로 비옥한 양분을 비축하며 어김없이 찾아올 봄이 자신을 세상으로 드러내줄 것을 믿는다. 


내 머리에도 하얀 서리가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 속의 정신이 온도과 각도를 잃지 않는다.

내 온몸은 차가운 기온에 저항하며 두툼한 옷으로 휘감고 있다.

그렇다고 옷 속의 내 감각이 감도와 순도를 잃지는 않는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내 속이 화학적인 활발한 연동을 일으켜

따뜻한 봄...이... 손내밀 때...

저... 노래의 뒷소절을

내게서 드러내리라.


때가 되면

서리는 주인인 이슬에게 자리를 물리겠지.

때가 되면

나의 상념도 스스로 자리를 물리고

'왜 그리 했어야만 했는지'

이유로서 날 설득해주겠지...


한겨울의 서리가 타당이듯 한계절의 상념도 마땅인가보지...

물이 투명하지도 하얗지도 않은 허여멀거면서 불투명한 서리로 이 계절 머물다 가야하듯

나도 어중간한 불투명한 이 모습으로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하나보지.

한겨울의 새벽이 어둠에 시간을 양보하듯 지금 나도 이 시간에 파묻혀 불투명함 속의 투명을 위해 양보해야 마땅한 시간인가보지...



극히 사소한 행동도 한번 하고 나면 어린 참게처럼 인과의 바다를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그리고 영원의 바다에 이르러 한 방울의 물이 된다.

만일 이웃이 당신을 반기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묻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명확하고 진실되게 대답을 해주어야 할 어려운 처지에 놓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상대방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개의치 말고

엄격하고 주의 깊은 공평함으로 발을 굳게 땅에 디디고서 응답해야 한다(주).



# [엄마의 유산]

    => https://guhnyulwon.com/

# 1/18, 위대한 시간에 초대합니다!

==>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1269

   => https://guhnyulwon.com/invite-20250118


주>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도솔


[지담연재]

* 2025년 시작, 연재요일이 아래와 같이 변경됩니다.

월 5:00a.m. [감정의 반전]

 5:00a.m. [엄마의 유산]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금 5:00a.m. [엄마의 유산]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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