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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민감하렴.
그래야 깊이 팔 수 있단다.

by 지담

왜 우리는 많이 배웠는데 사는 게 힘들까?

왜 너희는 계속 배우는데 여전히 배울 게 많을까?

왜 엄마는 여태 배웠는데 더 배우고만 싶을까?


엄마가 40대 후반에, 그러니까 2019년, 지적허영과 지적고갈, 양극단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지적갈등에 몹시 힘들었었어. 박사까지 하고 사회적으로도 꽤 인정받으며 일했었지만 뭔가 빠뜨리고 사는 느낌? 젋은 너야 아직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엄마 나이정도 되는 많은 중년들이 이런 공허에 시달리곤 한단다.


여하튼 제대로 인생과 삶에 대해 알고 싶어 작정을 해야 했었어.

그 때 결심, 아니 결단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시작했지.

벌써 7년째네...


그렇게 책공부를 시작하고 읽고 싶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을 먼저 읽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말 그대로 '지식이 아니라 지식 너머의 무언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아니 이는 단순히 '즐거움'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더 깊이에서 느껴지는 쾌락에 중독되어 갔지. 우리는 이 쾌락을 '에피파니'라고 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삶의 찰나들의 이유가 해석되면서 통쾌하게 알게 되는, 그렇게 온몸이 떨리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들을 더더욱 알고 싶어지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삶의 진리, 이치'라 불리는 귀한 '초월된 지식'들을 온몸으로 알게 되는 그런 배움이 엄마의 삶을 너무나 변화시키고 있단다. 사회적으로 유리한 명함들을 얻기 위해 보내왔던 시간에 비하면 7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명함 한장도 만들 수 없는', '보여지지도 않지만' 내면에 쌓이는 이 깊은 배움이 엄마의 삶의 질을 바꿨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란다.


그래서 알게 됐어.

많이 아는 것보다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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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의 생태학'이란 말을 최초로 쓴 것은 노르웨이의 철학자 '아르네네이쓰'야. 생태학이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학문이지만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자연의 경제적인 측면을 인간과 인간의 삶인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 거론하고 있어. '깊이'있는 탐구는 개개인의 몫일 수도 있지만 인류, 자연 전체와 연결되어 있기에 사람은 세계의 주인이기도, 자연에 순종하는 하인이기도 하지.


바탕의 문제가 실용성을 떠나 있으면서 실용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중략)

위는 이 바탕을 돌아보게 하고

그것에 힘입어 주의를 깊이 하는 관조가 삶의 중요한 계기임을 확인한다(주).


주의를 깊게 하는 관조.

관조라면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잖아. 높이 멀리에서 바라보며 깊게 주의(主意), 그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계기가 된단다. 가장 바닥까지 파고 들어 깊이있게 무언가를, 어딘가를 탐구하고 사유하는 행위는 실용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나아가 실체로써 네 삶을 돕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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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모두는, 특히 엄마세대, 그러니까 산업화가 보편화되고부터 교육열이 높아지고 대졸자도 증가하고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까지만 바라봐도 '교육의 양적 충만'의 사회는 된 것 같아. 그런데 왜 예전보다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사는 능력도 저하되었는지... '행복'으로 대변되는 비물질적인 조건과 '생존능력'으로 대변되는 물질적인 조건이 모두 저하되었다면 이는 뭔가를 빠뜨리고서 '교육'의 양적 풍요, 수직상승만을 일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너희세대에게 -아니 엄마가 세대까지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저 너희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바가 엄마도 모르게 엄마 가슴속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어. '배움'의 양은 이미 사회적으로, 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충분한 것 같아. 이제는 너희라도, '배움의 질'을 함께 일궈가길 바래.


'문화'라는 것 말야...

가랑비에 옷젖듯이 그냥 자신도 모르게 젖게 된단다.

유행에 민감하지?

문화가 된다는 건 유행으로부터 시작돼

안 따르면 나만 이상한 듯한,

따르지 않기를 어렵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지.

유행이 되면 문화가 될 확률이 높고

문화가 되면 그냥 습관, 관성처럼 자기 삶에 그 유행을 들여.


'배움'의 지배적인 문화에서 너희들만이라도

양적충족, 위로만 오르려는 수직적 욕구로 인해

삶의 중반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서 뒤돌아 안타까워하지 않길 바래.


너희들이 그렇게

'배움의 질'적인 성장을 이룬다면,

또 '배움이 삶과 연결'을 이룬다면

너희가 문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단다.


아까 말했잖아. 유행이 되면 안 따르기 힘들어. 저 사람처럼 입으면, 저 사람이 먹으면, 저 사람처럼 읽으면, 저 사람처럼 가보면 나도 그렇게 될 것 같거든. 그러면 따라하게 되어 있어. 따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유행이 되고 유행은 곧 문화로 전파되니까. 너희들이 판단할 때, 유행이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너희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시도한다면 너희로부터 유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야. 그렇게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너희의 시작이 문화가 태동되는 시작의 시점이겠지.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되길 바래.

지금의 유행에 민감하여 수용할 것과 거부할 것을 판단하고

앞으로의 유행에 민감하여 필요한 것을 너희로부터 시작하고

유행은 아니지만 이롭다고 판단되는 것은 함께 뭉쳐서 유행을 시켜 버리라구.


이야기가 옆으로 좀 많이 샌 것 같은데.ㅎㅎㅎ

하려던 얘기를 계속 해볼께.


우리 바닷가에 자주 놀러다녔지?

네가 아기때 사진을 보면 바다 모래사장에서 할머니 팔베개하고 코~ 자는 모습,

모래범벅이 되서 모래성을 쌓는 모습,

튜브위에서 바닷물이 입에 들어갔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퇴퇴거리는 모습,

너무 귀여운 모습들이 많아.

그렇게 어린 너희로 다시 돌아가 줘!!!!!!!!!!!!

너~~ 무 귀여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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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네 기억속에 있을지 모르지만 외할머니댁이 부산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바다에서 아주 많이 놀았고 바다에서 모래성을 만들 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이 있어.

"넓게 파! 넓게 펼쳐!

그래야 깊이 팔 수 있어!

그래야 네가 만들 것들이 안 무너져!"


당시의 놀이가 기억나지 않더라고 머리 속에, 아니 그냥 엄마가 지금 하는 말을 잘 들어 봐. 너희는 어른이니까 충분히 알거야. 모래를 넓게 파면 당연히 역원뿔의 윗면의 지름이 넓으니까 그만큼 깊게 팔 수 있겠지? 그렇게 넓게 파면 깊게 팔 수 있단다. 아니, 넓게 파야 깊게 파내려갈 수 있단다. 그리고 나서 너희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나무막대, 조개껍데기, 기타 등등으로 건축했었어. 말 그대로 성(城)을 만들었었지.


자, 깊게 파고 쌓아올린 성의 무너질 확률은?

무조건 적어.

혹여 파도가 휙~~~~~ 휩쓸더라도

표면의 것은 쓸려 가겠지만

흙이 파놓은 구덩이를 일부 덮겠지만

그래도 파내려간 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고

또 어느 정도의 깊이도 보존되어 있어.


깊이 판다는 것은

언제 불어닥칠 지 모를 경우에도

든든한 바탕이 되어 재건에 무조건 유리하고

언제든 다시 재견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준단다.


또 있다!

깊이 깊이 파면서 너희들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한 것이 있어!!

깊이 내려가면, 모래사장인데도 밑에서 물이 점점점점 올라와.ㅎㅎㅎ

엄청 신기해 했었지?

그렇게 물이 조금씩 올라오니까 파는 재미가 더 커졌고.


그러다가 뭔지는 모르지만 새우 비스무리한 것들이, 눈에 보일까 말까 하는 녀석들이 물에서 움직이는 것도 발견했었어. 너무 신기했었지. 모래밑이 바다야? 하면서 너희들이 창의적인 대화를 마구 나누던 모습이 엄마는 기억에 생생해.


깊이 판다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이미 존재했던 본연의 것을 드러낸단다.

인식에 없기에 미지였던, 그러나 닿고자 했던 본질의 존재를 보여준단다.

기적과도 같이 신비로운 현상을 무조건 창출한단다.

따라서, 창조와 창의가 창발하는 순간을 맞이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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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상상해 보자.

넓게 파고 점점점점 안으로 파갈수록 어때?

좁아지지?

그렇게 깊숙이 파게 되면 단면은 아주 좁아.

그런데 날카롭지.


이제, 날카로운 그 깊이에서 위를 바라보렴.

네가 파놓은 모래들이 보일거야.

그것들은 버려진 것들이야.

하지만 '깊이'를 위해 꼭 필요했던 것들이지.


누구나 모래놀이를 하지만 너희들처럼 그렇게 깊이 파서 미지의 생명체를 만난 경우는 드물거야.

적당히.가 좋을 수도 있지만 적당히보다 한번 더 내려가면 신비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무언가를 깊이 탐구하여 네 것이 되어 너의 보물을 찾거나 숨기려면

넓고 많은 것들이 우선 선제될 필요가 있어.


스크린샷 2025-10-05 131626.png 며칠 전 아들이 보내온 카톡


네가 다양하고 많은 책들을 읽더구나.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단 읽어도 괜찮아.


20대는

모든 시간을 바쳐서라도 평생 네가 깊이 파고들 탐구주제를 찾아내고 삶의 깊은 바탕을 이뤄줄 진리를 만날 길을 트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아니 너무너무 괜찮은 시절이라고 생각해. 너희들은 무조건 100세 이상을 사는데 10년을 다소 얕지만 넓게 넓게 경험하고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삶에서 실현해 나갈 것들이 마구마구 탄생되길 바래.


그 바탕으로 인해 네 삶의 길이 확장되고 가치가 더해지고 의미가 깊어지고,

그렇게 너라는 한 사람의 길이 우주로 향하는 길임을 깨달아 가길 바래.

그래서

네 삶이 온전히 너의 삶이지만 모두에게 이로운,

아까 말했듯이 작든 크든, 좁든 넓든 이로운 문화로 이어진다면

그 이상 값진 삶이 어디 있겠니?

이를 위해 온전히 20대를 다 바쳐도 충분히 괜찮아...


아까 했던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

네가 깊게 파기 위해 파낸 모래들 있잖아.

그 중 대부분은 필요없는 것들이야. 그냥 파기 위해 던져진 모래들이지. 밑으로 파서 내려가면 뭐가 나올지 알 수도 없었고 뭐가 나온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지. 일단 넌 모래성을 높게 쌓기 위해서 파내려간 것 뿐이야. 그런데 새로운 생태를 만났고 그 때문에 너희들의 정신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그렇게 기존에 만들려던 것은 더 기발하게 창작되었지.


너의 20대.

마치 소용없어 보이고 필요치 않은 것들의 투성일 지 몰라.

그래도...

그래도...

나중에 어떤 정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용없고 필요없고 계산기 두드려 효율에서 떨어지는 그 더디고 하찮게 느껴지는 시간들.

그 시간을 묵직하고 묵묵하게 보내보렴.


그 묵묵했던 시간없이는 결코 깊이 파내려갈 수 없어.

날카로운 그 지점을 만날 수, 만들 수 없어.

네 인생의 솟구치는, 높이 쌓아 올려질 그 건축을 이룰 수 없단다.

이 시간들을 보내보지 않은 사람은 '소용없는', '하잘 것 없는' 것들의 고귀한 가치를 알 리가 없어.


다른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아가고 있을 때 너흰 여전히 버려질 모래들을 파냈었지.

그래서 파도가 왔다 간 후에

너희의 성만 잔재가 남았고 다시 만들 때 너희는 더 높게 쌓았었어.

돋보기로 종이를 태울 때도 다리가 저리고 손이 떨려 코에 침을 발라가면서도 기다린

그 친구에게 해는 불을 쏴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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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놓은 깊이에서 위를 보면 다 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이 파는 행위들을 방해하고 도움을 줬는지.

위에서 아래를 봐. 그래도 다 보여.

깊게 파기 위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넓게 파고 깊게 파내려 간다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바라볼 다차원적인 시선을 얻게 되고

날카롭게 하나의 지점에서 전체를 바라볼 힘을 얻고

전체에서 날카로운 하나를 포착할 예리함도 얻게 된단다.


위에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관조라 하고

멀리서 날카롭게 하나를 잡아내는 포착을 통찰이라고 하고

아래에서 전체를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먼 시선까지 알게 되는 것을 안목이라 하고

이렇게 하나를 위해 전체가, 전체를 위해 하나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지성을 지혜라 하지.


깊게 파는 것,

즉,

깊게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해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깊게 파야할 지 모를 때는

다양한 책들로 많은 간접경험을 해나가면 돼.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지금 읽어내려가는 책, 만나는 사람들, 하찮아 보이는 아르바이트까지 그저 다양하게 경험을 쌓아. 지금처럼 읽고 싶은 책 맘껏 읽어. 네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어 넓게 넓게 경험한 명시적 지식들, 거기에 모래의 깊이에서 만난 미지의 생태, 즉 직접 경험으로 알게 된 실천적 지식, 그것으로 느껴진 암묵적 지식이 함께 보태지면서 배양되는 지식이 지혜란다.


지혜롭다는 것은 관조, 통찰, 안목이 있다는 것이지.

아래에서 위든, 위에서 아래든.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는 지성의 소유자란 의미지.


아이야...

20대는 그래도 돼.

마구마구 놀고 마구마구 덤비고 마구마구 뒤집어.

눈치보지 말고 돈걱정도 하지 말고 너무 예의도 차리지 말구.

물론, 네 맘대로 아무렇게나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나이니까 엄마 말도 이해할거야.


그렇게

많이 알고 깊이 파라

넓게 펼치고 깊이 찾아라

다양하게 움직여서 깊게 느껴라

20대는 그래도 된단다...


세상을 보고 사회를 보고 주변을 보고 너를 봐.

유행을 따르거나 거부하거나

너 자체가 유행이 될 만한 습관을 만들어라.

그러기 위해...

많이 넓게 다양하게 움직여

깊게깊게.... 날카로울 때까지 묵묵히 파내려 가렴...


인생에서 20대는

모래성을 쌓기 위해

막 삽을 든 시점이니까.


# 이제 성인이 된 2아이를 위해 2년간 쓴 30통의 편지를 담은 책입니다.

https://guhnyulwon.com/

KakaoTalk_20241204_201601559.jpg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짧은 깊이]

금 5:00a.m. [나는 시골에 삽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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