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몽테뉴편
앎이 삶의 매흙질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공부가 주는 이익은,
그것으로 자기가 더 나아지고 더 현명해졌다는 일입니다.
보고 듣는 것은 오성(悟性)의 일이고,
모든 것을 이용하고 모든 것을 처리하고 행동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도 오성의 일이며,
그 외 다른 모든 일들은 맹목적이고 몽매하고 혼백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성에게 제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비굴하고 겁많게 만듭니다.
외워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남이 주는 것을 기억 속에 보관해 두는 수작입니다.
똑바로 아는 것은 그 스승을 쳐다볼 것 없이,
책을 들여다볼 것 없이 자기가 처리합니다.
순수하게 책에 의한 역량은 비참한 역량이지요!
나는 그런 것은 장식으로나 쓰지, 기본으로 삼지 말기를 바랍니다.
플라톤이 말하듯,
확고성과 신념과 성실성이 진실한 철학이고,
모든 다른 학문, 또는 다른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은 매흙질에 지나지 않습니다(주).
오성(悟性).
감성이나 지성과 구분되는 지력.
진정 아는 힘이란 오성에 의해 빚어진다.
물론 오성은 기본적인 지식부터 인지까지의 지성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진정한 앎을 위해 첨부되어야 마땅한 힘은 오성.
오성이 빠진 앎은 흙과 진흙을 섞어바르는 매흙질에 지나지 않는다.
온전한 앎은
외부로부터 흡수한 지성에
감각으로부터 내면에서 솟아난 오성이 결합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력에 완성이 어찌 있겠냐마는
지금의 배움에 오성이 첨부되어야
내 지성은 비로소 힘을 갖는다.
내면의 순수한 영혼,
두 발의 거친 탐험.
지성의 치열한 실험이어야
비로소 '나의 탐구'는
구상의 모방에서 벗어나
언어가 사물을 이끄는 것이 아닌,
사물이 언어를 창출시키는,
나만의 언어를 갖게 된다.
나는 오성과 결합된 앎을 추구한다.
지금 나의 존재를 갱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나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맑게 깨어있는 사람,
더 깊이 파고드는 사람,
더 삶을 진솔하게 이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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