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며 '내가 본 가장 큰 하늘'
분명 큰 강이 아닐지라도
그보다 더 큰 것을 못 본 자에게는
크게 보인다(주1).
시골에 온 1년간 내가 그랬다.
분명,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이 느낌은 처음이다.
시골에서 내게 닿은 '하늘'은
난생 '처음 본 큰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눈이 '보는 기능'을 시작했을 때부터
분명 나는 하늘을 봐왔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하늘을 바라본 날들도 여럿이었고
여행하며 별이 가득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골에 살.면.서. 바라본,
특히, 하늘은 달랐다.
아는 것, 본 것과
느낀 것, 담은 것은 다르다. 달랐다.
어떤 의식도 없이 그저 달랐다.
같은 하늘인데 다른 하늘이다.
눈닿는 어디라도 하늘은 있다.
위, 앞, 옆.
굳이 고개 들지 않아도
하늘은
늘 동그랗게, 커다란 품으로 나를 품고 있다.
도시의 하늘이
건물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여러 도형으로 잘려졌다면
여기 하늘은
둥그렇게 하나로 이어져
모든 생명체를 싸안는다.
그 품에
산도 나무도 새도 동물도, 그리고 나도 둥지를 틀었다.
포근하다,
따뜻하고...
그냥 안심, 안도, 안정... 암튼 그냥 평안하다.
하늘에 이런 내 마음을 살짝 들킨 것 같기도 하다.
솜털같이 많은 구름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포시 가린 듯하다가,
구름 한점 허락치 않으며
자신의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내가 살짝 시선을 내리기도 한다.
프로스트(주2)처럼
하늘은 나뭇가지를 타고 자꾸 오르고 싶게 날 충동질한다.
내 소원의 반만 들어주고 날 데려가지 않길 바라며 나는 하늘에 준 눈길을 땅으로 떨군 적이 여러번이다.
한발 내딛으며 하늘에게 말한다. 나 지금 여기 있지만 나중에... 나중에... 너에게로 갈 때 활짝 웃을거라고.
그러니, 나 여기서 조금 더 내걷게 해달라고...
책읽고 글쓰는 것외에 아무 관심도, 취미도 없는 내가
유독 천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하늘과 늘 대화를 나눠서인가보다.
어딜 가다 천사가 눈에 띄면 그냥 하나씩 사게 되고
독일에 있는 딸도 어디라도 가면 엄마인 날 위해 천사를 고르며 내게만큼은 이 땅 위의 천사가 되어
날 환하게 한다.
여기서는 눈만 뜨고 있으면
하늘로부터 신호를 받는다.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땐 검은 목탄으로 줄을 그어 결단을 종용하기도 하고
마음이 흔들릴 땐 내가 어지럽지 않게 자신도 같이 흔들리며 다양한 색을 뿜기도 하고
내 심정이 뜨거울 땐 피를 쏟아내라며 심장에서 피가 솟구치듯 붉게 자신을 물들인다.
적적한 외로움에 홀로 방황할 때엔 환한 빛을 내려주며
'나 여기서 널 비추고 있다'는 듯
내 마음의 그림자를 거둬줄 찬란한 빛을 보내며
날 위해 주먹쥐고 뽜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궤도를
위로부터 하나로 품은 하늘.
하지만,
어떨 땐 하늘도
자신이 그리운지,
혼자라 외로운지,
다 품은 품이 버거운지
강위로 내려 앉아 쉰다.
물 속 깊이까지 숨어들 기세로 자신을 감추지만
이내 물놀이하는 아이들과 함께 외로움을 달래려는지
수면위로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하늘, 땅, 물, 산, 사람.
세상 모든 것에 이면이 있다지만
이 고유한 자연의 이름들은
단 하나, 유일한 하나로 외로이, 하지만 꼿꼿하게 존재한다.
하늘은 땅과 맞닿아 전체를 이루고
물은 산과 어우러져 생명을 키우고
딸과 아들은 각자의 영토(주3)에서 꿈을 일군다.
자신의 세계에서
자기안의 다양한 존재들을 드러낼 뿐
어떤 도움도, 필요도 구하지 않고
'하나'로서 당당하다.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며 자기 책무에만 여념없다.
바로 서지 못하는 존재만이 떼를 지어 어울려 다니지,
자체로 온전한 자연 속 '하나'들은 그저 자신으로서 당당하다.
요즘엔 여기 하늘이 내게 자주 특별한 선물을 한다.
온 마을이, 비탈위의 우리집은 더더욱
구름에 감싸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구름 속에 있으니
저 산에서 보면
나는 안개가 아닌
구름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구름냄새.
몽환의 향.
이를 어휘로 표현할 재주는 없다.
꽃도 풀도 숲도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그 어떤 어휘에도 담기지 못하고
그 어떤 설명조차 거부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온몸으로 스며드는
구름이 내뿜는 몽환의 향...
새벽, 컴컴해서 보이지도 않지만
구름냄새가 살짝 느낌으로라도 전해진 날이면
독서를 마치자마자 나는 서둘러 책상에서 일어난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코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은 이 향에 취한다.
말도, 눈도, 그 무엇도 소용없는,
그저 하늘아래 유일하게 허락된
'구름향으로 숨쉬는 존재'.
이 황홀한 사치가
온전한 내 몫으로 허락되었다.
이 위대한 하늘에게
보호받고 관심받고 안겨 사는 느낌이란...
애써 살지 않고 그저 흘러가줘서 고맙다는 화답같기도,
무겁게 느껴지는 삶일지라도 소중히 안을 수 있는 용기일지도,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일지도,
잠시도 삶에서 밀려나지 않고 숨쉴 수 있다는 안도일지도...
뭔지 모르지만 그저 편안하고 감사하다...
아주 잠깐 따뜻한 햇살아래,
벗나무들 사이에 걸어놓은 해먹에 누우면
그야말로 내 눈엔 하늘만 담긴다.
나는 살.아.있.다.
땅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 있는 몸은
내 모든 무게를 덜어내고
흔들리는 삶일지라도
아무 것도 붙잡을 것이 없어도
결코 떨어질 염려가 없다며,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된다며,
땅과 하늘 사이
나라는 존재는
하늘이, 대지가 온전히 품어주는
완벽한 사랑에 푹 젖어든다.
분명 큰 강이 아닐지라도
그보다 더 큰 것을 못 본 자에게는 크게 보인다.
한 나무와 한 인간을 두고도 그러하니, 모든 종류에게
각자가 본 가장 큰 것은 거대하게 보인다.(주1).
시골에 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나는 거대한 하늘품에 산다.
하늘은 유일하니까 하늘이 보는 나도 그러하겠지.
나로써, 나여야, 나니까
마땅히 쓰여야 할 곳으로...
나는 가고 있으니까...
자연 속에서,
하늘 아래서,
땅 위에서.
주1> 나는 무엇을 아는가(몽테뉴, 동서문화사)에서 루크레티우스를 인용한 문구.
주2> 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Birches) 가운데
운명이 나를 일부러 오해하여 소원 반만 들어주고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주3> 필자의 딸은 독일에서, 아들은 미국에서 각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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